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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세월호 당일 행적. 적는 손이 떨리네요.
게시물ID : sisa_10367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작자
추천 : 65
조회수 : 3006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8/03/28 15:51:32
"대통령님이 전화를 안받으시는데 어떻게 하나!" 김장수는 박근혜한테 전화하기를 포기하고 안봉근에게 대면 보고를 부탁했다.
10시 12분에 본관 동관을 나선 이영선이 안봉근을 본 정문에서 태우고 관저를 향했다. 안봉근은 관저 내실을 지나 침실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수차례 불렀다. 그제서야 그는 모습을 보였다.
사건 발생 한 시간하고도 20분 만의 일이었다. 세월호는 이미 108.1도 기울어서 전복됐을 무렵이었다.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객실, 엔진실 등을 철저히 수색하여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하라.”
10시 22분에 김장수에게 전화한 박근혜가 한 말이었다. 선체가 침몰한 줄도 모르고 박근혜는 명령했고, 선체가 침몰한 줄도 모르고 김장수는 대답했다.
오후 2시 15분이 돼서야 최순실이 이영선 차타고 청와대 들어왔다. 박근혜, 최순실,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 회의를 한 후에야 중대본 방문을 결정했다.
오전 10시 30분에 세월호가 완전 침몰되고도 4시간이나 지나고 나서였다.
중대본 방문 결정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정호성이 윤전추에게 헤어와 메이크업 준비를 지시한 것이었다.
윤전추는 헤어와 메이크업을 맡았던 정자매에게 연락을 했다. 강남에서 샵을 하는 자매였다. 윤전추는 오후 2시 53분에 정자매에게 “출발하시면 전화부탁드립니다. 많이 급하십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많이 급했지. 머리가. 제기랄.
헤어 디자이너가 들어와 머리를 하고 박근혜는 오후 4시 33분에 중대본을 향했다. 30분 가량 중대본에서 서성이다 오후 6시에 청와대 관저로 복귀했다.
이것이 2014년 4월 16일 우리나라의 대통령 박근혜가 한 일이었다. 우리에게 나라는 있었지만, 정부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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