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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나이트 체험기
게시물ID : humordata_17443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박준준준
추천 : 18
조회수 : 4052회
댓글수 : 27개
등록시간 : 2018/03/20 13: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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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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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노스트라다무스의 구라 속에 긴장 가득했던 1999년.
 
 
친구의 생일잔치를 위해 모인 충북 제천은 황량했고 추웠다.
그래도 꾸역꾸역 일곱 명이나 모인 이유는 생일잔치를 무려 ‘나이트’에서 한다고 했기 때문이었고 대부분 나이트 경험이 없던 우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당시 제천에는 유일하게 나이트가 두 군데 있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 한군데가 망하고 한군데만 영업 중이었기에 선택의 여지없이 일단 그곳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이 텅 빈 홀에 남자 일곱 명이 테이블을 잡고 침묵 속에 가만히 앉아서는‘주문 안 받나...’하는데 무대 옆쪽으로 사각빤쓰에 난닝구 입은 대머리 아저씨가 슥 나타났다가 우리보고 화들짝 도로 들어간다.
 
몇 분 지나자 급하게 셔츠에 바지를 갖춰 입은 아저씨가 다가와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묻기에 속으로 ‘손님이 왔는데 뭘 어떻게 와 묻는 의도가 뭐지?’하고 있는데, 우리 중 좀 놀던 친구가 “여기 기본으로 주세요!”하니까 아저씨가 황당한 표정으로 “네”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침묵 속에 가만히 있다가 한 놈이 아저씨 부를 라니까 친구가 쪽팔린 짓 하지 말라며 테이블에 호롱불 같은걸 치켜들었고 한참이 지났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당연하지... 한 명 있던 직원이 술 가지러 갔으니까...
 
쪽팔린 짓 하지 말라던 녀석이 참다못해 “아저씨!!! 여기요!!!” 여러 번 소리치니까 그제서야 아저씨 뛰어오고 
너무 조용하니까 음악 좀 틀어달라고 주문했더니 대머리 아저씨가 무대 옆 쪽방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한참을 당황해 하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어디론가 전화하는 것 같더니 그제야 쿵짝 쿵짝 하면서 귀청 찢어질 듯한 음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이트 처음 와본 나는 음악 좀 틀어달라고 귀찮게 해서 화난 아저씨가 일부러 볼륨 최고로 올려놓은 건 줄 알고 소심하게 의자 발로 차면서 불만 표출하기 시작했는데, 이내 한 놈이 손뼉 치면서 어깨 들썩이기 시작하는걸 보고 그제야 원래 이정도 볼륨인걸 인지하고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태어나서 처음 나이트 왔는데 테레비에서 보던 것과 달리 깜깜한 서커스장 같은 분위기에 귀만 아프고 실망스런 느낌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하던 그 때, 갑자기 불이 ‘딱!’꺼지더니 막 번쩍번쩍한 조명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그제야 좀 분위기가 녹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맥주 7병이랑 김이랑 땅콩은 나온지 3분 만에 사라졌고, 쿵짝 쿵짝 하는 텅 빈 홀에 남자 7명이서 가만히 앉아서 줄담배만 피워 올리는 상황이었다.
 
 
 
“여자 많대매?”
  
“주말엔 많어”
 
“오늘 토요일인데?”
 
“아홉시쯤 되면 많어”
 
“근데 왜 우리 다섯 시에 왔어?”
 
“할 것도 없잖아. 밖에 춥고...”
 
 
그래서 우린 여자 기다리기 시작함.
 
한시간정도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다가 춤이라도 추자며 제일 잘 노는 놈이 무대에 올라가서 몸을 흔들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호응하지 않으니까 혼자 5분정도 추다가 내려오더니 “야 씨발 원래 이런데 오면 다 나가서 춤추고 그러는 거야 가자!” 하며 선동해 너른 홀에 남자 7명이 손잡고 무대에 올랐다.
 
‘아 이런 게 무대구나...’
 
뭔가 가슴 뿌듯함을 느끼는 가운데 한 놈만 미친 듯이 춤추기 시작하고 나머지 6명은 그를 둥글게 에워싼 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다시금 생각해봐도 흉흉하기 그지없는 장면이었다. 
 
한참 솔로잉을 하던 친구가 참다못해 어차피 아무도 없으니까 막춤이라도 추라고 강요하자 두 놈은 로보트 춤을, 세 놈은 되도 않는 서태지의 컴백홈 춤을 나는 덩실덩실 탈춤을 추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그 텅 빈 홀에서...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대머리 아저씨를 유일한 관객으로 둔 채. 
 
아, 진짜 지금도 기괴하기 그지없던 그 장면을 떠올리면 등줄기에 오한이 스친다. 
그렇게 10분 댄스 10분 휴식을 반복한지 두 시간 정도 지나니까 다들 힘이 빠져서 흐느적대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드디어! 문이 열리며 여자 둘이서 들어왔다. 
 
순간 다들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격렬하게 파워댄스를 추기 시작했고, 텅 빈 나이트 무대 위에서 일곱 명의 남자들이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대는걸 멍하니 바라보던 여자 둘은 그대로 뒤돌아 나가버렸다.
 
닫힌 문 뒤로 “못된 년들! 비치! 비치!” 합창을 했지만 그 후로 한 시간 동안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어느덧 반쯤 귀가 안 들리고 온몸이 땀에 절은 우리는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의 표정으로 의미 없는 춤사위를 추어대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덧 시간이 8시가 넘자 손님이 하나 둘씩 들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9시쯤 되니 이십 명이 넘는 손님들이 테이블을 하나씩 차고 앉아 춤도 추고 드디어 테레비에서 보던 나이트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
 
‘아아 이것이 나이트구나!’ 
 
뭔가 귀 따가운 음악과 정신없는 싸이킥 조명 속에 눈을 감고 가만히 ‘나도 이제 유흥을 즐길 줄 아는 청년이다!’라고 생각하며 비트 속에 목을 주억거렸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홀 안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몸을 흔들고 여기저기에서 고함치며 말싸움까지 벌어지는 것이 진짜 유흥의 냄새, 밤의 문화였다. 우리는 그렇게 나이트 문화에 익숙해졌고 더 이상 촌놈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흥겨운 비트 속에 목석처럼 가만있지도 않았다.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만족스러운 유흥체험이었던 것 같다.
 
 
그 나이트 안 수십 명 전원이 남자였다는 사소한 문제만 빼고 말이다.
 
 
이미 너댓 시간 전부터 텅 비어있던 맥주병을 앞에 놓고 가만히 앉아있던 우리는 열시 정각이 되자 아무런 커뮤니케이션 없이 자연스레 일렬로 줄을 서 그 지옥 같은 곳을 빠져 나왔고, 시장골목 통닭집에서 음울하게 소주잔을 기울이며 맥아리 없는 중저음의 ‘해피버스데이 투유’를 합창하는 것으로 생일잔치를 마무리 했던 그런 기억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나이트 체험은 남자 일곱 명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덩실 덩실 춤추는 모습으로 가끔 꿈에 투영되곤 한다.
 
 

 

시간이 지나 이제 훌쩍 커버린 우리들은 알고 있다. 
아마 그곳에 여자가 넘쳐났어도 우리의 마지막은 변함없었으리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 무대는 그 날 우리의 것이었음을,
그리고 우리의 심장은 그 순간 누구보다 뜨거웠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뜨거울 날이 언젠가 반드시 다시 올 거라 믿으며,
오늘도 출근 버스에 무거워진 몸을 실은 채 흐뭇하게 그 날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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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과거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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