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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 여자 이야기(39).
게시물ID : love_416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26
조회수 : 1695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8/03/19 21:27:06
난 솔직히 결혼하거나 하면 (동거는 생각도 안해봤던 상태라) 아침에 밥먹다가 밥상 확 밀치고 막 그럴줄 알았다.

다음 날, 평소보다 더 경건한 분위기.
우리는 너무나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내가 그날 메뉴도 기억한다. 감자된장국에 참치김치볶음에 콩자반에 깻잎지에 시금치나물에 김치1, 김치2. 그리고 당시 내가 맛들렸던 누룽지.

나는 D의 미세한 변화라도 좀 있기를 바랬지만, D는 평소와 같이 일정한 리듬과 박자로 밥얌얌반찬쩝쩝을 할 뿐이었다.

"..."
"??? 왜 ???"
"어? 아...아니. 국 잘 끓였네."
"오빤 감자 들어가면 다 좋아하잖아."
"전생에 안데스 어디서 태어났었나봐. 낯설지않아. 이 맛."
"농담두^^"

그 생긋 웃는 모습에 또 두근.

아직도 위병조장하던 22살 가을. 
거 매일매일 보면서 가끔 꺄~군인아저씨다~하고 지나가던 근처부락의 10살 11살 애들 보고...
그저 애들이 오늘 좀 시끄럽네. 하고 말았는데...

내가 그때 그만큼 나이차이 나는 애한테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간다. 비와서 쌀쌀하니까, 옷 뜨십게 입고 나가."
"그냥 가?"
"아. 훌라댄스."
"뭐래?"
입술 내밀고 눈을 감는 D.
평소같음 굿모닝 굿바이 인사였는데, 진짜 한 0.3초간 고민했다.
혀넣어???




"야."
"아 네?"
"너 오늘 왜 이렇게 집중을 못해?"
"제가 언제 집중하고 그랬다고 그러세요;;;;"
"아냐아냐. 너 오늘 평소보다 더 부잡스러워. 오늘 빚쟁이라도 찾아온대?"
"저 은행에서 안 좋아하는 사람이예요. 돈만 넣고 빌려가지를 않는다고."
"잘났다 이놈아. 그래. 저번 평가자료 이따 내 책상위에 올라와 있겠지?"
"...팀장님."
"왜?"
"제가 그거 완성하는게 빠를까요. 시말서를 쓰는게 빠를까요?"




그렇게 와장창 깨지고, 휴게실에서 멍때리고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D한테 까똟이 왔다.

-오빠. 오늘도 열일 중이예요?
-매크로답변 안될까 이거? 내가 언제 열일하는거 봤어? 오늘도 정줄놓았다가 팀장님한테 혼남ㅋㅋㅋ
-팀장님은 맨날 오빠한테만 뭐래...
-내가 그거 잘하잖아. 내리갈굼. 말한적 있지? 내가 갈구는건 군대있을때 헌병대에서 진지하게 고민했어. 영창보내자니 애매하고 안보내자니 그것도 애매하다고. 내가 딱 그걸 잘해. 
-오빠만 욕먹잖아. 나 그거 싫어.
-욕 많이 먹음 오래 산대. 전대갈봐라. 아직도 골프치고 댕기잖아. 그 양반 친구는 욕 덜 먹어서 골골대고.
-대답은 참 잘해. 우리 오빠.
-너 수업 중 아냐?
-끝났어. 아르바이트 가는 중에 톡 보네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 
-오빠.
-ㅇㅇ
-아침에 나 왜 그렇게 빤히 봤어?
-...너가 밥먹을때 핸드폰 보지말래니까 눈 둘데가 너 밖에 없어서.
-오늘은 좀 더 뜨거우셨는걸?

어제 밤 일땜에 그런다 이것아...라고 쳐야되나 잠시 고민 중인데, 금방 톡이 왔다.
-아침에 오빠가 자꾸 나 쳐다보니까...긴장해서...국에 입천장 다 댔어.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어때? 후시딘인가? 그거 발러. 비싸다고 침만 바르지말고. 지금 바로 쏴줄께.
-그건 상처난데 바르는거...아침에 오빠가 계속 쳐다보니까 엄청 긴장했단말야.
-봐도 뭐래. 내일부터 눈가리개하고 밥상머리에 앉을테니까 니가 떠 맥여줘.
-귀여운 사람.
봐라. 나 11살 어린 애한테 귀엽단 말도 들어본 사람임.
-까불지마. 내가 너보다 10분의 1세기는 더 산 사람이여.
-부끄러워하긴...어젯 밤에는 안 그렇더니.
놀래라. 전화통화중도 아닌데, 주위에 누구없나 막 두리번거렸다.
-내가 그렇게 큰 일에는 더럽게 침착해. 
-나 아르바이트 갔다올께. 입 아파두 밥 다 먹구 그랬으니까 걱정마. 
-오냐. 무리하지말고 돈 받은 만큼만 일해라. 오빤 돈 준만큼은 일 좀 할께.
-ㅇㅇ. 사랑해♡

오늘 톡의 하트는 좀 특별하구만.




퇴근길.
있던지없던지 신경도 안 쓰던 꽃집 앞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어째 선물을 하나 해야할거 같은데...여자한테 꽃선물은 진짜 오랜만이었다.
전 여자친구도 연애 초기때나 꽃받고 좋아했지, 연차가 좀 지나니까 오빠. 이 돈 있음 맛있는거 먹재서 잘 안 샀고,
심지어 여자사촌동생들마저도 오마니가 졸업식때 꽃 좀 사다줘라.하고 돈 부쳐주시면,
야. 큰이모가 꽃사다주랬는데, 꽃들고 댕기기 귀찮아서 걍 돈으로 뽑아왔다. 받아라.하고 주면, 입이 귀까지 찢어지게 걸리는 여자애들만 주위에 있어놔서, 이걸 사 말아...하고, 진짜 고민하고 있었다.

"들어와서 보세요."
"예?"
"안사도 괜찮으니까 들어와서 한번 보기라도 하세요."
10분 넘게 가게 앞에서 서성이니, 사장님이 들어와서 보랜다. 여자사장님이었으면 그...그런거 아니예요.하고 줄행랑을 쳤을텐데, 다행히 남자사장님이더라.

"..."
"둘러보시고 말씀해주새요. 꼭 안사셔도 괜찮으니까 부담갖지마세요."

장사잘하시네 사장님.
남자들 일단 이렇게 발들이면 결국 사는데...이 장삿속을 알고도 나름 잘 안 속고 산다고 자부하는 나이지만, 그런 내가 발을 들일 정도면 정말 D한테 꽃선물하고 싶긴 했나보다.

"사장님!!!"
"네. 결정하셨어요?"
"자...장미꽃 백송이!!!"

한 10분 정도 설교를 들었다.
너무 많이 사면 들고가기도 힘들고, 받는 사람도 힘들고, 보관하기도 힘들다. 나도 꽃 많이 팔면 좋지만, 기왕 산 꽃 어디 꽂아보기라도 해야하지 않겠냐. 한 30송이 정도가 들고가기도 편하고 받는 사람도 딱 받는 느낌나고, 화병 좀 큰거 있음 며칠 두고 보기도 좋다.고.
그 집 믿을만 하더라.

"사모님 주는 거는 아닌데..."
"왜요?"
"결혼한 사람은 그렇게 백송이 씩 잘 안줘요. 여자친구구나?"
"...네...제가 꽃은 꿀따먹는 사루비아랑 군대있을때 지겹게 쓸어본 무궁화 밖에 모르니, 사장님께 맡기겠습니다."




원래는 어찌하면 오늘 일을 내일의 나에게 미룰까하고 고민하다가 진이 다 빠져서 일찍 들어가 쉬려했건만,
안하던 짓 했더니 너무나 흥분되서, 퍽 늦게 끝나는 D의 새 알바하는 가게가서 기다렸다. 
고정식카메라 있길래, 그 가게 앞에는 못대고, 잘 안보이는데서 시간 참 드럽게 안가네.하면서 기다렸다.
알람까지 맞춰놓고.

알람이 울리자마자 전화를 했다.
"..."
"아. 오빠. 나 이제 끝났어."
"어. 피곤한 몸 이끌고 뫼시러 왔으니, 어디 그 얼굴 한번 보자."
"...오빠. 술마시고 운전한건 아니지?"
"내가 온갖 나쁜짓은 다하고 다니지만, 음주운전이랑 환각성물질흡입 이런거는 안해. 뒤져도 교통사고로 죽고 싶진 않거든."
"아우. 예뻐. 우리 오빠. 착하네. 그럼 술 안 마시고 나 기다린거야?"
"어."
"...오늘 오빠 일찍 퇴근했다고 안했어?"
"...나왔냐?"
"ㅇㅇ. 지금 집 쪽으로 걸어가고 있어."
"큰길말고 편의점끼고 골목길로 들어오면 동전노래방있는데에 있거든? 그 쪽으로 천천히 걸어와. 그 쪽으로 나갈께."
"헤헤. 추웠는데 다행이다."



아. 저기 있네. 
D는 내 차를 보자, 까치발로 서서 막 손을 흔든다.
저 기세면 어디 무인도에 떨어져도 구조 못 되서 죽을 일은 없겠지. 싶을 정도로 씩씩하게 흔들더라.
"집에서 쉬지 왜...어?"
"돈이야기 하지말고 그냥 받아라."
D는 조수석에 놓인 꽃다발을 보고 얼어붙었다.
돈이야기하지말고 받으래도 기승전돈으로 빠지는 D인지라, 항상 그렇듯 주고도 욕먹을 각오하고 운전대 꽉 잡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오른쪽 3시방향이 너무나 조용하다.
"...어? 어? 어? 야야. 일단 타."
D가 우는거 참 여러번 봤는데, 그렇게 닭똥같은 눈물 흘리는건 처음 봤다.
내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 보면서 사람이 어떡게 저렇게 울어 만화지만 오바가 심하네ㅋㅋㅋ라고 했는데, 진짜 사람이 그렇게 울어지더라.

내가 어디 무슨 역린을 건드렸나 싶어서, 아파트 주차장에 차 댈때까지 암말도 못했다.




"저...저기..."
"미안해."
"어. 애가 이제 말을 하네. 좀 진정됐어?"
"미안해. 오빠. 나 꽃선물 받아본거 난생 처음이라..."
"...졸업식때는 받아봤을거 아냐?"
도리도리.
"어이쿠...이거 내가 센스가 없는 남정네였네..."
"고마워. 너무 예뻐."
"꽃집 사장님께 감사드리고...나 꽃 하나도 못 골랐어. 거기 사장님이 알아서 해줬어."

선물해주면 항상 기승전돈돈돈 하던 애가, 이렇게 액션심하게 좋아하니 내가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그렇게 고맙다고 말트고 차에서 내릴때까지 한 100번은 더 고맙다고 했다.

집에 와서 씻고 나오니, 애가 안보이길래 어디갔지?했는데, 현관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D의 손에는 작은 사이다병이 들려있었다.
"그거 뭔데? 냉장고에 탄산은 항상 있는데?"
"그...그게...꽃보관할때 사이다넣어주면 더 오래 간대."
"...화분갖다줄까? 접붙이기 한번 해?"

그 말같지도 않는 농에 D는 다시 활짝 웃었다. 




그 날 밤, 나를 꼭 안고 잠든 D를 보고 아차.했다.

꽃보다 니가 더 예뻐.라고 말해보려고 했는데, 못 했네. 참.
내가 그렇지 뭐-_-ㅋ
출처 내 가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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