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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다닐 때 아르바이트로 고모부가 운영하는 이불가게에서 일한 적이 있다. 고모부가 이른 아침 인천에 위치한 이불 공장에서 이불을 떼어오는 동안 나는 영등포 청과물시장 사거리에서 오전 내 가게를 맡아 지키며 손님을 상대했다. 손님들이 사가는 이불은 다양했다. 양단 이불, 혼수 이불, 공사장에서 쓰는 막이불. 이불 가게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불의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이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잘 팔리는 이불과 잘 안 팔리는 이불.
잘 팔리는 이불도 그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매우 잘 팔리는 이불은 매일같이 공장에서 떼어와도 모자라서 그 이불이 매장 매출 전체 중에서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 하면, 그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꽤 삼삼하게 나가서 이삼일에 한번 꼴로는 꼭 벌충해줘야 하는 이불이 있었다.
그런가하면 손님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는 바람에 매장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있긴 하지만, 워낙 안 팔려서 새로운 상품한테 자리를 내어주어 점점 더 구석으로 몰리는 이불이 있었고, 원래는 제값을 받으면 엄청 비싼 혼수용 이불인데, 좋은 가격에 포장도 없이 떼어온 물건이라 혼수용으로는 하자가 있는, 그러나 일반 이불로 쓰기에는 한참이나 비싸서 애매한 물건도 있었다.
고모부는 그런 물건을 몇 바퀴를 돌았는지로 구분했다. 한 바퀴 돈 이불이면 1년 전에도 있었다는 것이고, 두 바퀴 돌았으면 그 이불은 2년 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그러고 있었던 거다. 모든 이불이 드나들고 자리바꿈을 하는 동안에 말이다.
어느날은 한 손님이 “두 바퀴나 돈”이불을 가리키며 고모부에게 얼마인지 물었다. 포장되지만 않았을 뿐이지, 커버도 고급 재질인 데다가 수도 휘황찬란하게 놓여져 있었고, 차렵이불이 아니기 때문에 솜과 커버를 분리해서 세탁할 수도, 솜을 교체할 수도 있는 데다가 심지어 솜이 틀어지지 않도록 커버 안쪽에 솜을 고정시킬 수 있는 끈도 달린 거였다.
2년 동안 손님들의 외면을 받던 이불한테도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고모부가 가격을 부르자 손님은 머뭇거렸다. 역시 편안하게 덮는 용도로 쓰기에는 비싼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손님은 무슨 큰 근심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한참을 생각하더니 터무니없이 저렴한 가격을 제시했다. 고모부도 나도 너무나도 낮은 가격이기에 당황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고모부가 부른 가격의 절반밖에 안 되는 가격이었으니까 그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지 말고 임자 만났을 때 파세요.”
손님도 대강 이 이불의 처지를 짐작한 모양이었다. 이불가게 구석에서 이렇게 한심한 취급을 받을 레벨의 물건이 아니라는 것. 그러나 어떤 우여곡절을 만났는지, 지금 이렇게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 관심을 보이는 자신이 아니면 이 이불에 관심을 보일 사람이 또 나타나리라고는 누구도 쉽게 장담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에는 고모부의 수심이 깊어졌다. 손님은 고모부의 최종적인 판단을 기다리며 이불을 만지작거렸다. 고모부의 결론은 아무리 그래도 그 가격에는 팔 수 없다는 거였다. 손님은 마치 노련한 승부사처럼 아쉬워하는 기색도 없이 나갔고, 이불 자신은 정말이지 아쉽게 되었다.
시간이 지난 후 청소를 하던 고모부가 그때 손님이 골랐던 두 바퀴 돈 이불 밑을 빗자루로 훔치며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저 이불을 그 때 팔았어야하는 건데.”
고모부의 말을 들으니 나도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냥 사용하기에는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을 불렀던 고모부, 그걸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으로 후려쳤던 손님, 그 사이에서 말도 안 나왔던 이불. 그 이불은 실제로 그 후 어떤 손님의 지명도 받지 못한 채 세 바퀴 째 돌 운명에 처해 있었다. 어쩌면 세 바퀴에 진입했을 수도 있었겠고, 누군가에게 절반 가격에 팔렸을지도, 아니면 화려한 색상을 자랑하며 창가쪽에 진열되었다가 햇빛에 색이 완전히 바래 폐기되었을 수도 있다. 그 이불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참, 근데 그건 그렇고, 나는 지금 여태까지 몇 바퀴째 돌고 있는 거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