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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년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정월 어느 날이었어.
고려 국경 너머 압록강변에서 몽골의 사신 저고여(著古與)가 살해된 채 발견됐어. 시체 주변에는 고려에서 공물로 받은 것으로 보이는 값비싼 비단이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산적의 소행으로는 보이지 않았어.
13세기 후반은 칭기즈칸이 한창 위세를 떨치던 시기야. 몽골의 사신으로 고려에 들렀다 귀국길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사신 저고여 살인 사건. 이 사건은 몽골이 30여 년에 걸쳐 6차례나 고려를 침범하는 발단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 되기도 해.
과연 범인은 누구였을까?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JYBC ‘그것도 알고 싶다’의 김하중입니다. 몽골은 말입니다. 왕이 보낸 사신을 해친 나라에 대하여는 무자비할 정도의 보복을 가하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이런 공격을 받은 도시에는 닭이나 소등 가축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고려 조정에서 저고여를 살해했을까요? 자신들의 나라에 다녀왔다 귀국길에 오르던 사신을 따라가 국경을 넘자마자 살해를 한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 고려가 세계 최강 부대 몽골과 일부러 전쟁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그래서 저희는 우선 이 당시 양국의 관계와 저고여 개인의 행적을 좀 더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 몇 해 전부터 몽골의 공격을 피해 고려까지 내려온 거란족 때문에 고려는 큰 골치를 앓고 있었어. 남의 전쟁에 휘말릴 필요는 없지만 우리 국경을 침범한 거란족을 그냥 둘 수도 없잖아.
이때 몽골과 고려는 위아래에서 거란을 압박해, 결국엔 격퇴를 하고 형제의 예를 맺었어.
몽골은 상대국을 정복하거나 지도상에서 아예 없애버리는 매우 호전적인 민족이잖아. 기록상으로도 형제의 예를 맺은 나라는 고려가 유일하다고 해. 여기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두 나라의 관계는 좋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전쟁 일보 직전의 상황도 절대 아니었어.
그런데 말은 형제의 예를 맺기는 했지만 몽골의 요구는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었어. 1년에 1회 10명의 사신만 파견하기로 한 처음 약속을 깨고 분기에 한 번씩 대규모 사신단이 찾아왔어. 이렇게 약속을 깨고, 잦은 파견과 무리한 공물을 요구하자 고려 조정은 몽골에게 강력한 항의의 메시지를 보냈지.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고, 이 당시 몽골에게 외교적 항의를 한다는 건 엄청난 용기였고, 주변국에서도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일이었어.
“처음 약속대로 사신은 1년에 1회 10명으로 제한함을 지켜라. 고려에서 나지 않는 공물은 요구하지 말라. 우리 땅에서 나지 않은 공물은 보내줄 수 없다. 고려의 왕이 몽골의 왕을 알현하라는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 고려 역사에 없는 외교 관례다.”
몽골은 고려의 이런 합리적인 요구에 전혀 반박을 하지 못했어. 그런데 고려에 대해 화가 났을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지. 자국의 힘을 믿고 몽골의 사신들은 무례하기가 짝이 없었어.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려 왕 앞에서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했고, 궁에서 화살을 쏘아 왕 주위에 있던 환관을 죽이기까지 했어.
이런 악명 높은 몽골 사신들 중에 최상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자가 바로 저고여였던 거야. 저고여로 대표되는 몽골 사신의 횡포를 보면 고려 조정의 살해 동기는 충분히 있어 보여. 그런데 옆집 아이와의 싸움도 아니고 나라간의 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왕의 사절을 그렇게 쉽게 살해했을까? 고려 조정에서도 몽골의 잔혹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몽골에서는 진상 조사단을 현장에 급파했어. 그런데 이때 고려 국경 수비대가 몽골 진상 조사단을 향해 화살을 쏘면서 군사 행동을 감행해서 조사단을 쫓아내버리는 일이 생겨. 어떻게 된 일일까? 당시 국경수비대에 근무하던 사람에게 당시 상황을 인터뷰로 들어보자고.
“많은 사람들이 고려 조정에서 저고여을 암살하고 몽골의 진상 조사단을 쫓아냈다고 생각하시는데, 그건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 상황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저고여를 죽인 것은 동진 조정입니다. 여진족이 세운 나라 동진이요. 그리고 우리는 몽골 진상 조사단이 여진족으로 변장하고 국경을 침범하는 걸로 알고 한 오인 사격이었습니다. 그때는 여진족들이 몽골 군 옷을 입고 우리 국경을 넘어오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몽골 군 옷을 입으면 우리 고려 군이 공격을 안 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네, 그럼 몽골의 진상 조사단 공격은 오해였다고 하고, 동진이 몽골 사신의 살인 배후라는 말씀의 근거는 뭔가요?”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동진은 몽골과 단교를 했습니다. 칭기즈칸이 유럽이나 서역 쪽 정복에 열을 올리고 있는 틈을 타 일을 치른 거죠. 그리고는 고려에게 손을 내밀었잖아요. 그런데 고려 쪽에서는 쉽게 그 손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동진 조정에서는 애가 타는 절박한 상황이었죠.”
어때, 동진 조정도 살해 동기가 있어 보이지? 그런데 다른 소문도 돌았어.
“저고여를 살해한 곳은 고려 조정도 그렇다고 동진 조정도 아닙니다. 둘 다 전쟁이 나면 몽골에게 백전백패가 뻔한데 두 조정에서 뭘 믿고 몽골의 사신을 죽이고 시체를 그대로 방치하겠습니까? 범인은 몽골 조정입니다. 한마디로 자작극이죠. 고려를 치기 위한 빌미를 마련하기 위한 몽골 조정의 치밀한 계획하에 발생한 자작극입니다. 결과가 말해주잖아요.”
과연 저고여 살해범은 어느 조정이라고 생각해?
무리한 요구와 무례한 행동을 일삼는 사신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고려 조정에서 실행한 일일까? 아니면 몽골과 단교 후 고려의 미온한 반응에 불안감을 느낀 동진 조정이 고려와 몽골의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저지른 일일까? 이도 아니면 또박또박 말대꾸하는 고려 조정을 공격하기 위한 몽골 조정의 자작극이었을까?
PS : 2016년 1월 첫 출근 날 퇴사 권유성 좌천을 통보 받았습니다. 40대 중반을 향햐 가던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 이었습니다.
공항장애 초기 증세를 겪으며 지옥 같은 회사 생활을 이어 가던 중, 아내의 권유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무턱대고 역사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름 모를 당신들이 달아준 댓글에..ㅜㅜ 힘을 얻어 출판사에 투고를 하였습니다.
그 동안 제 글을 읽어 주시고, 댓글을 달아 주신 여러분들이 함께 만들어 준 책입니다.
제 글이 책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기적같이 출판사와 계약도 하고 이렇게 제 인생 첫 책이 나와
소식을 전합니다.
직장과 가사, 삶에 지친 모든 분들이 저를 보금고 용기를 가졌으면 합니다.
저는 화려한 스펙도 금수저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한 가지 잘하는 것을 가지고 있으니 모두들 도전해 보는 2018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책 제목은 <찌라시 한국사>로 조금 자극적이지만, 내용 만큼은 충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