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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네장편 서사시 시작합니다.
기대 많이 해 주세요.
아직 미완성
반응 좋으면 계속 쓰죠.
칼과 아무르 (1/15) / 라피네
칼
칼은 하늘을 봤다
아까부터 주목했던 저 해
계속 높은 자작나무 나뭇가지에 걸린 해
유독 붉었던 해가 빛을 절반 넘게 잃었으나
까마귀처럼 그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중천에서 빛을 잃고 흘러내릴 참인가.
오랜 시간 동안 내려올 줄 모르고
맴도는 저 바랜 해 덕분에 대지는 스산했고
음기가 온 천지가 덮고 있었다.
칼은 어둑한 저잣거리를 둘러보며
어슬렁거리는 취한 술꾼
긴 창 등 무기를 든 자를 보면서
그들로부터 살기를 느끼지 못했고
‘나쁘진 않아.’라고 중얼거렸다
상 칼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우는 칼도 이에 동의했다.
우는 칼은 그의 친구요 동지며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다.
사실 나쁘지 않다는 건 그에게
크게 위협이 되지 않은 한
굳이 경계심을 갖출 필요가 없다는 얘기
누구인들 기습하더라고 우는 칼이 있는 한
그는 무적이었다.
배를 뜨끈하게 채운 후 칼은 옷깃을 세우면서
우는 칼의 온기를 새삼 느꼈다
둘은 다정했고 사랑이 절절했다
서로는 느낌으로 알았고
온기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했다
헤어진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
서로는 지켜줬고 늘 함께 했다.
갑자기 찬바람이 둘에게 몰려왔으나
둘은 무심했고 단지
우는 칼은 칼의 관심을 받아 즐거웠다.
저잣거리를 벗어나니 다소 막혔던 가슴이 터였다
뭐든지 베고 단절할 정도의 기상은 항상 있다
‘와라. 누구든지 자르리라.’
칼은 성인이 될 때까지 줄곧 산에서만 살았기에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은 매우 불편했고
낯설기만 했다.
그러나
칼의 마음만은 늘 평온으로 유지됐다
눈빛은 늘 이글거렸으나 다른 사람이 보면 평범했다
할비로부터 물려받은 수련의 탓이다.
맹수들과 자랐기에 맹수의 눈을 가졌지만
수련 탓에 평온하게 보였다.
잠시 걷다 길가 나지막한 바위에 걸터앉아
지쳐가는 해로 기우는 풍경을
지그시 봤다.
붉은 노을에서 죽은 할비의 모습이 얼핏 스친다
할비는 왜 내게 여자를 얘기 안 했을까
나의 생명을 주신 어머니가 있다는 것도
인간계에는 또 다른 생명체가 있다는 것도
일절 얘기하지 않으셨다.
할비가 돌아가신 후 난
우연히 산 아랫마을 저잣거리에 들어섰을 때
같지만 다른 생물체
또 다른 생물체를 그는 매우 당황했었다
줄곧 깊은 산에서만 할비와 살았기에
그에겐 모든 게 낯설었지만 유독 그녀들이
신-기-했-다.
할비로부터 오로지 강인함과 날렵함과
신속한 판단을 줄기차게 전수받았기에
그는 매우 강했으나
낯선 생명체의 부드러움을 몰랐고
두렵기 조차했다.
그에게 매우 낯선 경험이었고 야릇했다.
노을이 유독 붉고
날이 찼다.
칼의 시선이 먼 들판 너머
작은 성에 머물렀다.
아무르
작은 성에 사는
아무르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줄곧 성내 깊숙한 공간에서 몇몇의 시녀들로부터
양육되었기에 그녀를 본 사람은 없었다.
매우 귀하게 성장하였고 아름답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했기에 눈부시게 아름다워졌다.
애초 유아 때부터 아름다운 가능성이 있는
여아를 수십 명 선택했고 성장하면서
결국 남은 두 명 중 최종으로 하나가 결정되었다
물론 탈락한 여아들은 모두 조용히 살해되었다.
이제 그녀는 왕국을 살리기 위한 재물이었고
왕국의 존망을 가르는 보물과 같은 존재였기에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졌다.
남자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존재
남자를 한 번도 보지 못하는 여자로 성장한
그녀는 언젠가 이 세계의 가장 강력한
군주에게 바쳐질 운명이었다.
공국의 나약한 왕이 이 장기적인 계획을 군주에게
얘기했었고 군주는 작은 공국의 정성을 눈여겨봤다.
그의 한 마디 명령으로 포개진 돌덩이도 존재하지 못할
강력함을 갖춘 군주였기에 공국은 항상 두려움에 살았고
정성을 다해 그녀를 양육했다.
군주는 성녀를 원했다
그 재물이 오로지 난생처음 남자의 존재를
자기를 통해 알기를 원했다.
만약 그녀가 남자라는 생물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걸 아는 이상
보스는 자신을 속인 것으로 간주하고
성내 모든 인간을 학살하라 명령을 내릴 게 뻔했다.
남자의 존재를 모르는 아무르는
아름답게 성장했고
이제는 백옥 같은 피부는 투명했고
여성의 미가 극에 달해
그 미의 향기가 성내를 진동시켰다.
알려져서는 안 될 존재가
굳기 닫힌 문틈으로 땅거미처럼 흘렀다.
맡아서는 안 될 향기를
막지 못한 운명이
성내를 누른다.
다음 편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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