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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 박근혜에 직격탄 ‘서구에선 대통령직 무사하기 힘들어
게시물ID : sewol_142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데이바이데이
추천 : 26
조회수 : 1061회
댓글수 : 52개
등록시간 : 2014/04/23 10:52:57

http://thenewspro.org/?p=3314

가디언, 박근혜에 직격탄 ‘서구에선 대통령직 무사하기 힘들어’

-어느 나라의 수장이라도 이런 국가적 참사, 지연된 발표에 무사하지 못해
-박근혜, 누군가를 살인자로 낙인찍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가디언이 박근혜에게 지격탄을 날렸다. 가디언은 박근혜에게 ‘서방 세계에선 어쩌면 그 어느 나라의 수장이라도 이런 의심의 여지없는 국가적 참사에 대해 이렇게 지연된 입장 발표라면 직위 자체도 무사하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말해 이번 참사가 서구에서라면 대통령직 자체가 날아갔을 만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이에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가 박근혜가 승무원들의 행동이 ‘살인과 같은 행태’라고 비난한 것에 대해 ‘살인’이라는 단어가 두드러진다며 ‘부주의 혹은 공포의 결과로 죽음이 발생했을 때 누군가를 살인자로 낙인찍는 게 정당한 일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가디언뿐만 아니라 21일 뉴스프로가 번역 보도한 것과 같이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유수의 언론들은 박근혜의 살인 발언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미리 단죄하는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어 박근혜는 아버지인 박정희에 이어 살인이라는 단어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가디언은 21일 ‘The South Korea ferry disaster is truly awful, but it is not murder -한국 여객선 참사는 정말 참담한 일이지만 살인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경과를 전하며 이제 생존자를 찾아낼 확률은 희박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기다언은 ‘침몰 6일째인 오늘 이 나라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은 마침내 입장 발표를 하며, 승무원들 일부의 행동을 “살인과도 같은 행태”라고 비난했다’고 전하고 ‘“책임 있는 사람들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 이라고, 직접적으로 실종자 부모들이나 국민에게가 아니라, 그곳에 모인 관료들에게 말했다’고 꼬집었다.

가디언은 이어 ‘서방 세계에선 어쩌면 그 어느 나라의 수장이라도 이런 의심의 여지없는 국가적 참사에 대해 이렇게 지연된 입장 발표를 한 후 지지율이나 심지어 직위 자체도 무사하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지적한 뒤 ‘그녀의 성명은 시기적 적절함이 모자랐지만 단호함으로 그 모자람을 채웠고 번역이 난이했을 가능성과 문화적 차이를 염두에 두고서도, ‘살인’ 이라는 단어는 두드러진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많은 어린이들의 죽음이 연관된 재해가 벌어진 어느 곳이든지 강한 분노와 비통함이 나타나는 것은 흔한 일이라며 산사태로 1백여 명의 어린이가 사망한 영국의 애버팬, 2백여 명의 아이들이 체첸 인질범에게서 구출 중 사망한 러시아의 베슬란, 그리고 중국의 사천성의 예를 들며 이곳에서 아무도 살인죄로 기소되지 않았다며 심지어 지난 193명이 목숨을 잃은 헤럴드 오브리 엔터프라이즈 여객선 침몰사태에서도 회사대표가 사임을 했을지언정 선원에게 모든 비난을 퍼붓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디언은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와는 다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징벌을 바라는 부모들과 대중의 바람은 거부하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부주의 혹은 공포의 결과로 죽음이 발생했을 때 누군가를 살인자로 낙인찍는 게 정당한 일인가라고 의문을 던졌다. 가디언은 마지막에 문화적 차이에 다소 다를지라도 박근혜가 ‘살인’이라는 말로 명확한 선을 그은 것과는 달리 세상 어디에서도 이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려 박근혜의 선원들을 살인자로 규정한 발언이 부적절한 것임을 암시했다. 지도자로서의 품성과 자질조차 갖추지 못한 박근혜의 발언에 많은 국민들은 기대하는 바가 없지만 국민감정에 편승한 이번 ‘살인’ 발언은 국제사회에 일파만파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박근혜는 역시 전지전능한 능력을 갖춘 세계적인 인물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가디언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4/apr/21/president-park-ferry-disaster-murder-south-korea

The South Korea ferry disaster is truly awful, but it is not murder | Mary Dejevsky

한국 여객선 참사는 정말 참담한 일이지만 살인은 아니다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looks around the site where the Sewol ferry sank



guardian.jpg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현장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Almost everything about the aftermath of the South Korean ferry disaster – except, tragically, the initial response – has seemed heightened, intense, on the very edge. And how could it not be? Of the 476 people on board, only 174 were rescued. Of the more than 300 remaining, most were children, many from the same school near Seoul; they were trapped inside the ship as it first listed and then tipped over. The odds on finding many, if any, alive, were always slim.

한국의 여객선 침몰 참사 이후에 일어난 모든 상황들은 – 안타깝게도 초기 대응을 제외하고 – 더욱 더 고조되고 강렬해지며 긴박해져왔다.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겠나? 승객 총 476명중에 오직 174명만 구조됐다. 실종된 300명 이상의 승객들 중 대부분이 아이들이었고 다수가 서울 인근에 있는 같은 학교 재학생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배가 처음 기울기 시작해 뒤집히는 동안 배 안에 갇혀 있었다. 많은 생존자를 찾아낼, 혹은 생존자 자체를 찾아낼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

Today, day six, the country’s head of state, President Park Geun-hye, finally issued her own statement, in which she condemned the conduct of some of the ferry’s crew as “akin to murder”. Those found to blame would, she told assembled officials – but not, it seems, the parents directly or the South Korean public at large – have to take “criminal and civil” responsibility for their actions. It is perhaps doubtful whether, in the western world, any national leader would have survived such a delay in responding to what is undoubtedly a national tragedy, with their ratings, perhaps even their position, intact.

침몰 6일째인 오늘 이 나라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은 마침내 입장 발표를 하며, 승무원들 일부의 행동을 “살인과도 같은 행태”라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은 “책임 있는 사람들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 이라고, 직접적으로 실종자 부모들이나 국민에게가 아니라, 그곳에 모인 관료들에게 말했다. 서방 세계에선 어쩌면 그 어느 나라의 수장이라도 이런 의심의 여지 없는 국가적 참사에 대해 이렇게 지연된 입장 발표를 한 후 지지율이나 심지어 직위 자체도 무사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But what her statement lacked in timeliness it made up for in force. Even granting the possible complexities of translation and cultural difference, that word “murder” stands out. In one way, it is of a piece with the highly emotive nature of this disaster. There were the last texted messages from teenagers to their parents, showing an awareness of mortality that seemed far beyond their years. There were – and are – the desperate parents gathered on the quayside, grieving, angry, at their wits’ end, still not fully accepting that their children are lost. There was the assistant school principal who killed himself, and who said in a note that he could not live with his survival after so many of his charges had died.

그녀의 성명은 시기적 적절함이 모자랐지만 단호함으로 그 모자람을 채웠다. 번역이 난이했을 가능성과 문화적 차이를 염두에 두고서도, ‘살인’ 이라는 단어는 두드러진다. 이 재해가 상당히 감정적인 본질의 것이라는 면에서 이 단어가 어울린다. 학생들이 부모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들은 오랜 세월 후에나 맞이해야했을 죽음을 자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절망적인 부모들은 부둣가에 모여 속수무책으로 비통해하며 분노하고, 아직도 그들의 자녀들을 잃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으며 현재도 그런 상태이다. 그 학교의 교감은 자신의 책임하에 있었던 너무나 많은 이들이 죽은 다음 본인은 생존한 것이 견딜 수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자살했다.

The potent mix of anger and grief is common to disasters everywhere, especially those where many children have perished. In the UK, you have only to think back to the tragedy at Aberfan, the Welsh mining village where more than 100 children died when a landslip engulfed their school. That was in 1966; the emotional scars remain to this day. The same raw grief still suffuses Beslan, the town in southern Russia where nearly 200 children died 10 years ago either at the hands of their Chechen hostage-takers or in a bungled rescue. Think, too, of the anger – in defiance of all political constraints – that gripped the parents of children who died in the 2008 Sichuan earthquake, where it transpired that school buildings were substandard because of local corruption.

어느 재해이든지, 특히 많은 어린이들의 죽음이 연관된 재해가 벌어진 어느 곳에든지 강한 분노와 비통함이 섞여 나타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영국에서는 산사태가 학교를 덮쳐 100명 이상의 어린이가 사망했던 웨일즈 탄광 마을 애버팬의 비극을 돌이켜 보면 된다. 이 사건은 1966년에 일어났지만 마음의 상처는 현재까지 남아있다. 이같은 아물지 않은 비통함은 10년전 거의 200명의 아이들이 체첸 인질범들의 손에 혹은 미숙한 구출 중에 사망한 러시아의 남단 마을 베슬란에 아직도 가득하다. 또한, 지난 2008년 사천성 지진으로 자녀들을 잃었던 부모들이 지역 비리로 인해 학교 건물들이 기준이하로 지어졌다는 것이 밝혀지며 모든 정치적 제약에 대항해 분노했음을 기억하라.

But, to return to President Park’s accusation of “murder”. How many of these children were murdered?  Those who died at Beslan were indisputably killed as a result, directly or indirectly, of a terrorist act. In the UK, no one was prosecuted for the negligence that was found to have led directly to  the landslide at Aberfan. In 1987, after the Herald of Free Enterprise  ferry sank at Zeebrugge, with the loss of 193 lives, the head of the company was eventually shamed into resigning, but there was a reluctance to pin all the blame directly on the crew member who failed to close the ship’s bow door. There was a preference for blaming processes rather than people.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살인” 비난으로 돌아가보자. 이 아이들 중 얼마나 많은 수가 살해되었는가? 베슬란에서 사망한 이들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테러 행위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영국에서 애버팬 산사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업무태만에 대해서 기소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87년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 여객선이 제브뤼헤에서 침몰해 193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회사 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임했을지언정 선수문을 닫지 않은 선원에게 모든 비난을 퍼붓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사람을 비난하기 보다는 과정을 비난했다.

This, it appears, will not be the course that events take in South Korea, even though the trans of communications that have so far been made public suggest panic, incompetence and fear dictated the response of the captain and senior crew. The desire of parents and public for retribution will be hard to resist, yet it will raise yet again the universal question about responsibility and intent. Is it just to label someone a killer if a death occurs as the result of an oversight, or of fear? Cultural difference may determine, in part, where that line is drawn, but it is nowhere as clear – not in the east, still less in the west – as where President Park seemed to place it when she spoke of “murder”.

하지만 지금까지 대중에 공개된 통신기록에서 선장과 선임 선원의 응답에 나타난 혼란상태, 무능력, 공포를 짐작할 수 있긴 해도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은 이와는 다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징벌을 바라는 부모들과 대중의 바람은 거부하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책임과 고의적 의도에 관한 보편적 질문 또한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부주의 혹은 공포의 결과로 죽음이 발생했을 때 누군가를 살인자로 낙인 찍는 게 정당한 일인가? 어디에 선을 그을지는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소 다를 수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살인”이라는 말을 했을 때 명확히 선을 그은 것과 달리 세상 어디에서도 – 동양에서는 물론이고, 좀 덜 하긴 하지만 서양에서도 – 이 경계는 분명치 않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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