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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더 많이 그리워한 쪽이 이길 거다
게시물ID : lovestory_848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닥터블랑
추천 : 1
조회수 : 34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3/07 17: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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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고딩때 생각하면서 쓴 거예요


ㅡㅡㅡ



더 많이 그리워한 쪽이 이길 거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내내 같은 반이었던 녀석이 있다. 아침마다 수영을 해서 몸이 다부졌고, 공부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아 하루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면서 어떻게 저렇게 평온한 표정을 유지할 수 있는지 늘 궁금한 애였다. 그를 표현하기에는 순수하다, 말수가 적고 허당 기질이 있다, 허우대가 멀쩡하다는 말로는 한참 부족하다. 청량감이 있다, 공유를 닮았다는 표현은 조금 참신하긴 하나 역시 본질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는 3년 내내 폴스미스 나일론 백팩을 메고 다녔고, 오니츠카 타이거를 신고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찼으며, 교실에 돌아와서는 무슨 3000원 짜리 슬리퍼처럼 그대로 신발장에 처박아 두곤 했다. 수업 시간에 몰래 방귀를 뀌다 들키는 사람도 유일하게 그 혼자였다. 무엇보다 반 친구들 사이에서 마치 유일한 중립국 같은 존재였다. 어찌 됐든 3년이라는 시간을 겪으며 3년 연속으로 같은 반에 배정받은 것은 꽤 특별한 인연이라는 것을 그와 나는 3학년 무렵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 취미도, 성격도, 어울리는 친구도 달랐던 우리가 별 이유도 없이 1,2학년 때보다 훨씬 더 친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우리는 밤이면 학교 운동장에서 농구를 했다. 1:1을 하다가 내가 이기면 투바운드로 게임의 룰을 바꾸는 식이었다. 그가 약속한 시간보다 늦을 때면 십 분이고 삼십 분이고 나는 그를 기다렸다. 한 시간이 넘어갈 때도 가끔 있었지만 늦더라도 그는 꼭 왔다. 나는 그를 기다리면서 자유투 연습을 했다. 늦은 날이면 어김없이 그는 포카리스웨트를 한 병 들고 와서 내게 내밀었다. 우리는 1:1을 했고, 이어서 투바운드로 게임의 룰을 바꾸었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슛을 연습한 덕인지 늘 내가 이겼다.

방학이 되면 우리는 만나지 않았다. 둘 다 게을렀기 때문이다. 다른 방학과 마찬가지로 3학년 겨울방학도 그렇게 보냈고, 우리는 문자를 주고 받는 일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어차피 옆 동네에 살고 있으니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겠거니하는 마음이었다. 아마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모처럼 연락을 해보니 그는 유학을 갈 거라고 했다. 자세한 계획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실없는 소리를 잘 하는 녀석이었으니까. 다만 토플 점수가 급격하게 올랐다는 얘기가 약간 걸릴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갑작스럽게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친구들에게 물어물어 그의 연락처를 저장하고 연락을 해보았더니 이미 번호의 주인은 바뀐 뒤였다. 나는 그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보았지만 그는 이사를 가고 그곳에 없었다. 그는 SNS 아이디도 없었다. 바뀐 그의 연락처를 아는 친구도 없었다. 정말이지 중립국가 같은 녀석이었다. 그게 그와의 마지막이었고, 그 후로 10년이 지났다. 

어떤 인연은 너무 방심한 탓에 너무 허망하게 놓쳐버리기도 한다. 버스를 타고 오고 가는 어느 날 밤, 바닥에서 거듭 저무는 버스의 안전바 그림자를 바라보면 문득 그가 떠오르곤 한다. 당혹스럽지만 어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우리는 3년 연속으로 같은 반이 되었던 것처럼,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 가서 우리는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하게 될까. 그가 할 말을 고르느라 한참을 서먹하게 군다 해도 별로 상관없다. 그를 다시 만난다면 발목을 하도 접질려서 진작에 때려치운 농구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나는 그와 마주서서 1:1을 할 것이고, 누가 이기든 우리는 게임의 룰을 투바운드로 바꿀 것이다. 그리고 항상 그래왔듯 더 많은 연습을 한 쪽이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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