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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중장기병대에 대처하는 자세 - 下
게시물ID : history_142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별짓을다하네
추천 : 14
조회수 : 1747회
댓글수 : 19개
등록시간 : 2014/02/27 21:18:41
2.JPG

위 사진은 그냥 허전해서 올려본 사진이니 신경쓰지 맙시다. 근데 같은 중국 기병대긴 합니다.


기병을 주력으로 하는 이민족들이 활동하던 시기인 5호 16국시대로 접어들면서 전쟁의 구도가 주로 기병 vs 기병으로 전환되었음은 앞서 上편에서 밝혔지요. 그리고 그 이 구도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여 대기병전술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어떠한 변화였는가 하니, 바로 말에게도 마갑(馬甲)을 입혀주었다라는 것이었죠. 이는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답은 절로 나옵니다. 예전 삼국시대 마냥 위(魏)나라의 중장기병대가 촉(蜀)이나 오(吳)의 보병대를 상대하는 기병 vs 보병식의 구도가 아닌 이제는 개나소나 죄다 기병을 운용하여 기병전을 벌이게 되었으니 기병의 고유장기이자 특히 보병을 상대로 하였을 때 위력을 발휘하는 특유의 위력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을겁니다. (물론 그렇다고이 5호 16국 시대에 죄다 마(馬)장 뜨고 다닌 것만은 아닙니다. 엄연히 보병도 존재했겠지요. 다만 주력이 기병이었다라는 겁니다.) 

s_aa2_20_i3.jpg

보병 vs 기병


더이상 기병만이 지닌 이점을 바라기 힘들고 모두(여기서 모두란 당시 우후죽순 생겨나던 이민족들의 16국을 의미합니다)가 동일한 조건 상에 놓이게 되었으니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방1업을 찍은겁니다. 스타에서도 동일한 조건 상의 유닛들이 맞부닥치면 조금이라도 업그레이드 된 쪽이 이기는 거랑 똑같은 이치입죠. 다만 주의할 점은 각국의 국력은 논외로 두고 말이지요.


이러한 배경요인도 있고 마갑을 입힌 이유는 또 있었습니다. 앞서 上편에서 언급했듯 삼국시대 촉의 제갈량이 연노를 이용하여 고안한 대기병전술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는 사진(射陳)의 발달도 그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사진이란 말그대로 활이나 쇠뇌롤 쏘기 위해 자리잡은 진용을 말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원거리 무기 사용할 때에 진용을 꾸리듯 말이죠. 학익진이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


사진을 짜서 그저 돌격해오는 기병대를 쏘아 맞춰 죽이기만 하면 되었으니 제아무리 보병이라 한들 기병대에겐 나름 위협적이었을겁니다. 여기서 말을 탄 기수를 쏘아 맞춰서 죽이는 것이 제일 좋고 확실하긴 하지만 굳이 기수만을 노려서 저격할 필요없이 말에다가도 쏴 죽이면 말잃고 홀로 남은 기수는 아무것도 아니었겠죠. 즉, 말을 쏘아 죽이는 것도 기병의 전력을 깎는데에는 아주 효과적이었다라는 겁니다. 그러니 말에게도 갑옷을 입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요.


이러한 배경과 이유로 5호 16국 시대를 시작으로 이후 남북조 시재에도 마갑이 비로소 등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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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16국 시대~남북조 시대의 병사들 복식.

기병의 말에게도 마갑을 입힌 모습이 보입니다.


바로 이때부터 '중장기병'이라 부를 만한 기병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중장기병도 그에 걸맞는 방호구와 무기를 사용하게 되고 또한 이 중장기병 체제를 보조하기 위해 다른 병종도 개편하여 이용합니다. 


 이 시대의 군제가 중장기병 체제였다고는 하나 당연히 그 밖의 병종인 보병이나 경기병과 같은 다른 병종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엄연히 존재했고 다만 그 역할이 중장기병의 등장으로 줄었다 뿐이지 갑옷이랑 말이 땅파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순전 중장기병으로 군제를 편성하기엔 상당한 비용이 들었겠죠. 다만 여기서의 보병이나 경기병의 주된 역할은 중장기병의 보조였습니다. 


경기병은 가끔 활이나 노로 무장하여 중장기병을 엄호하는 식으로 궁기병 역할을 하기도 했고 창보다는 주로 칼을 들곤 했습니다. 여기서 창은 주로 중장기병들의 주무기였기에 굳이 경기병에게까지 쥐어주지는 않았던 듯 합니다. 그리고 보병 역시 어디까지나 중장기병의 보조역할로서 아주 오랜세월 동안 국민병기로 애용되어 오던 '극' 이란 무기를 버리고 역시 경기병처럼 칼이나 활, 노, 방패 등으로 무장하여 백병전을 담당했습니다. (뭐 가끔 '모' ,장팔사모할 때 그 모도 들었다고는 하는데 큰 효과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중장기병이 최종 결전병기였기에 이들의 역할이나 전장에서의 활약은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중장기병 상대로 개겼다간 썰려나가기 십상이었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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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그림.

상나라 때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국민병기로 쓰여오던 
극은 이 무렵 등장한 중무장한 기병, 즉 중장기병에게는 그닥 효용이 없어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예 의식용 무기로 바뀌어 버리고요.


그럼 중장기병은 뭘로 무장했느냐 하니.. 이때 중장기병들이 입던 방어구는 '양당개' 라 불리우는 갑주였는데요, 삼국시대에 등장하여 통일 진(晉)나라는 물론 이후 5호 16국, 남북조 시대에 널리 유행하던 갑주였습니다.  


양당개.jpg

양당개 사진.

삼국시대 무렵 나온 갑주로 이후 5호 16국 시대를 거쳐 남북조 시대까지 쓰였습니다.


양당개를 보면 중장갑이라 부르기엔 양 팔이 허전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 양당개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온 '명광개' 라는 갑주도 혼용하여 쓰곤 했는데 아래 명광개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온 몸을 둘러 감싸서 그런지 이 양당개에 비해 방어력 하나는 튼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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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광개 사진.

역시 남북조 시대 등장한 갑주입니다.


그리고 중장기병들이 주로 사용한 무기는 '삭' 이란 무기로 이는 순전 기병전용의 장창이었습니다. 말탄 높이를 고려하여 이 무기를 휘두를(휘두른다기 보다는 찌를 때라는 표현이 맞겠네요)때의 길이를 계산하여 만든 이 삭의 길이는 얼추 4m~6m정도로 말그대로 기병전용 무기였지요. 

삭.jpg

삭.

기병 결전병기?


아무튼, 5호 16국 시대부터 남북조 시대 요 시기는 중장기병의 무대였고 이 당시 가장 강력한 중장기병대를 구축한 나라는 북위(北魏)였습니다.  
 
Southern_and_Northern_Dynasties_440_CE.png

푸른색으로 표시된 영역의 국가가 북위. 빨간색은 송(宋)나라 입니다.

참고로 북위는 선비족의 나라고 송나라는 한족의 나라입니다.


윗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각기 북위와 송은 5호 16국 시대를 마무리짓고 화북과 화남을 지배하여 남북조 시대를 연 왕조들이었습니다. 특히 북위는 이 중장기병대의 힘을 바탕으로 화북에서의 혼란을 잠재웠지요. 기본적으로 기마민족 선비족의 전통 덕도 좀 봤겠지만.. 기록에도 보면 각국의 여러 중장기병대들 중에서 이 북위의 중장갑이 유난히 무겁고 그 무장이 화려했다고 합니다. 물론 갑옷의 무게가 무거울 수록 좋은건 아닐테지만 말입니다. 특히나 기동력을 장기로 하는 기병에게 있어서는.. 하지만 그만큼 북위가 중장기병대에게 유난히 투자를 많이 했다는 뜻일거고 그 군사력을 바탕으로 화북을 통일할 수 있었지 않나 싶네요.
 

아무튼, 이렇게 남북조 시대에 유행하던 중장기병도 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수(隨)나라 이후 당(唐)나라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합니다. 수나라 때까지는 그 전통이 남아있었던 듯 합니다만 당대에 이르러서는 아예 없어졌던건 아니고 드물게 운용되며 오히려 경기병을 주로 기병의 주력으로 사용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s_aa2_20_i4.jpg

당나라 시기 기병과 보병의 모습.

마갑이 사라진 것이 보입니다. 다만 갑옷은 여전히 남북조 시대 유행한 명광개나 양당개를 입었습니다.



주된 이유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갑옷의 무게때문에 전쟁에서의 기동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나 당대에 한창 창궐한 돌궐이나 토번을 상대로 싸우다보니 그들의 경기병에게서 영향을 받아 다시 경기병 체제로 전환했던 요인이 컸습니다. 이걸 다 설명하자면 또 한 게시글을 할애해서 적어야 하니 그냥 이 정도로 줄이겠습니다;;;


근데 다 쓰고보니 중국이 아니라 위진 남북조 시대 대기병전술 스토리라는게 함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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