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범인
여직원 2명에 남직원 5명이 전부이던 작은 사무실에서 너를 처음 만났었다
처음 본 너는 키가 매우 작고 여리여리하고 소심하고 거의 말이 없는 아이였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입사한 풋풋한 20살짜리 신입직원' 딱 그랬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7살이라는 나이 차이에 딱히 여자로 보이지는 않았고
그냥 병아리같은 귀여운 신입이었을 터이다
스타트업의 창업맴버라서 회사에서 꽤나 높은 직급이었던 나는
사무실 잘 돌아가게 하고 직원들 잘 챙기고, 그게 하는 일의 전부였다
신입사원이던 너에게 상냥하게 대한 것은 정말 1%의 사심도 없었다고
지금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저 사회 초년생이라서 잘 모를테니까 친절하게 알려주고
사무실의 책임자로서 직원선에서 처리가 안되는 일을 해결해주고 그랬을 뿐
어느 날 출근하니 책상 위에 초코우유가 놓여져 있었는데
무심한 나는 그냥 누가 줬겠거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마시고 잊어버렸다
몇일 뒤 출근하니 책상 위에 또 초코우유가 있는게 아닌가!?
뭔가 싶어서 사무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네 책상 위에 같은 초코우유가 있는걸 발견했다
누가 단체로 돌린건지 네가 개인적으로 나한테만 준건지 알 수 없어서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갔다
다시 몇일 뒤
또 내 책상 위에 초코우유가 놓여져 있었고
네 쪽을 보니 네가 초코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그 시간 사무실에 출근한 인원은 우리 둘 뿐.....
'역시 범인은 너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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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코우유의 위력
분명 사심이 1도 없었는데 갑자기 없던 사심이 생기려고 한다
'와~ 이걸 왜 나한테만 다른 사람 몰래 주나? 뭐지?'
'20살이라니.....7살 차이면 내가 대학교 입학 했을 때 중학생...'
'내가 20살 때 27살을 보는 이미지는 어땠지?'
'완전 아저씨로 보이는 나이차이가 아닌가!?'
나름 계산적인 생각 끝에 딱히 관심이 있던것도 아니라서
그냥 생각을 접기로 하고 내색하지 않았다
다시 몇일 뒤
책상위에 여기가 제 자리라는 듯 놓여져 있는
매우 낮익은 초코우유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나 좋아하나? 이걸 왜 계속 주나? 20살 어린애가? 설마 아니겠지...'
'괜히 물어봤다가 아니면 얼마나 개망신인가'
'전화할 때 보니까 남자친구가 있는 것 같던데...아니었나?'
'남자친구 없고 나 좋다고 하면 사귈건가?'
'특별한 마음도 없는데 쉽게 사귀는건 예의가 아니지'
별의 별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다 하며 머릿속이 복잡했다
결국 참을성이 부족했던 나는 적당히 사람들 없는 틈을 타서
넌지시 물어보려고 조용히 네 옆으로 갔다
'ㅇㅇ씨 초코우유 잘 마셨어. 근데 갑자기 왠 초코우유야?'
'그냥 초코우유 좋아해서요. 제꺼 사는 김에 하나 더 샀어요
저한테 친절하게 잘 해주시니까 드리고 싶어서요'
아하! 사는 김에 하나 더 사서 날 줬구나! 그냥 친절함에 대한 보답이구나
뭐야 별일 아닌데 쓸데없이 고민했네
당시 난 전 애인에게 너무 큰 상처를 입었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날 생각이 전혀 없던 나였기에
연애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더군다나 7살 차이는 상당히 많은 차이라고,
도둑놈도 아니고, 가능성도 없는 생각은 접자고 스스로 합리화를 마쳤다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편안하게 마무리가 될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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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눈에서 가까워지면 마음에서도 가까워진다
또 다시 몇일 뒤
넌 점심시간에 나갔다 오면서 비닐봉투를 들고 와서는
나에게 초코우유 하나를 꺼내 불쑥 내밀었다.
"드세요"
직접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분명히 관심이 없었을터다.
초코우유 때문인가?
이상하다.
자꾸 신경이 쓰인다.
일하다가도 네가 신경쓰여 한번씩 네 자리 쪽을 쳐다보게 되었다
계속 눈길이 가니 마음도 같이 가는가 싶다
이제 보니 외모도 꽤나 귀여워 보인다.
너의 좋은 점이 더 많이 보인다.
키가 엄청 작고 귀여운 스타일에 얼굴이 눈에 띄게 작아서
언뜻 보면 긴생머리에 얼굴이 폭 파묻힌 것 처럼 보인다.
속눈썹이 매우 긴 큰 눈으로 올려다 보는 것이 귀엽다.
일도 잘 해내고 다른 직원에 비해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
책임감이 강해서 어려운 일도 끝까지 매달려서 해낸다
직원들 사이에서 평판도 좋다
반면에 난....
나이가 훨씬 많고, 키가 훤칠하게 크거나 스타일이 좋은 편도 아니고, 잘생긴 얼굴도 아니고
돈벌이는 나쁘지 않지만 회사가 안정적인게 아니고, 집이 부자도 아니고
뭐가 좋은점이 있을까 싶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난 점점 네가 마음에 들었고
나도 모르게 행동에 마음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너에게만 주면 티가 날 까봐 간식을 사다가 다른 여직원이랑 먹으라고 나눠주기도 하고
저녁에 적당한 핑계를 만들고 다른 여직원을 끼워서 떡볶이 같은걸 먹으러 가기도 했다
그렇게 너와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면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혹시라도 관심 있어서 초코우유로 돌려서 표현한 것인지
차마 물어볼 수가 없어서 자꾸 너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사무실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 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꽤나 불편한 일이었다
하지만 대중교통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차를 놓고 출근하면
퇴근할 땐 너와 지하철역 까지는 함께 버스를 타고 갈 수가 있었다.
난 기꺼이 차를 버렸다.
버스를 타는 시간은 10분 내외로 상당히 짧았지만 잠시나마 네 옆에 설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나란히 앉을 수도 있었으며
사람이 많을 때는 키가 작아서 손잡이를 잡기 힘든 너를 위해
여기저기 밀리지 않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수도 있었다.
팔이 너무 가늘다며 신기하다고 팔힘이 궁금하다는 유치한 핑계로
팔씨름 한번 해보자며 너의 손도 한번 잡아보고,
놀리는 척 슬쩍 가까이 가서 '와~ 진짜 작다 내 어깨밖에 안오네~' 하며
키를 재는 시늉을 하며 너와의 거리를 좁혀보기도 했다
초코우유를 받기만 하다가 거꾸로 내가 슬쩍 사다가 책상에 놔주기도 하는 등등
너와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기 위해서
지금은 일일히 다 기억 못하는 다른 많은 노력도 해봤을 것이다
그렇게 지내오며 너와 친하게 지낼 기회는 늘어났고
나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퇴근 후에도 저녁을 같이 먹거나
네이트온 메신저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하는 등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점점 더 네가 좋아졌다
하지만 27살의 난 20살을 마냥 어린애로 보고 있었고
사귀자고 말 하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일인 것 마냥 느껴졌다
그냥 포기할까 싶다가도 가끔씩 책상위에 올라오는 초코우유에 자꾸만 마음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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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눈치게임식 대화하기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너와 나는 메신저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있으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데이트 약속이 있겠다 싶어서
남자친구가 있는지 확인해볼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다
"24일에 뭐해? 데이트 약속이라도 있어?"
"아뇨 집에 있을것 같아요."
집에 있는다니 이건 남자친구가 없다는 말이다
한번만 더 확실히 물어보자
"남자친구도 없어? 크리스마스를 쓸쓸히 보내겠네"
"그러게요. 집에서 나홀로집에나 봐야죠."
"6달 정도 공을 들이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이제는 포기하려구요"
남자친구가 없긴 한데...역시 난 아니었나. 6개월이나 공을 들인 사람이 있다니.....
혹시!? 초코우유를 주고 그랬던게 공을 들인건가? 나를 말하는건가?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싶지만 어린애한테 쓸데없는 얘기 했다가
퇴사한다거나 혹은 퇴사를 안한다고 해도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매일 쳐다보면....
잘못 말해서 내가 아닌거라면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있어나기에
그게 나인지 아닌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알고싶다면 최대한 돌려서 캐내야한다.
"6달이나 공을 들였는데 고백같은건 해보고 정리하는거야?"
"아뇨."
"상대에게 전하지도 않고 포기하다니 그러면 6달의 시간이 아깝잖아"
"그냥 저를 안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포기하려구요."
6개월간 공을 들인 사람이 나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만약 나라면....정말 그게 나라면
지금 상황은 그녀가 나를 포기하려는 상황인거다
빠르게 머리를 굴려라
그게 누군지 직접 물어봤을 경우와
물어보기를 포기할 경우, 둘 중 어떤게 나은 상황이 만들어질 것인가
손에 땀이나고 머릿속은 너무 복잡하고 심장이 마구 두근거린다.
이렇게까지 긴장되고 진정이 안되는 상황을 살면서 몇번이나 겪었을까
"나도...이번에 몇달간 공들인 사람이 있는데 말을 못했어"
"왜요?"
"남자친구도 있는 것 같았고,
너무 어려서 나이차가 좀 많이 나고, 아저씨로 볼 것 같아서."
말 하고 곧 바로 후회했다.
너무 대놓고 딱 너라고 말하는 것 같았나 싶어서
"아저씨라고 생각해본적 없어요. 옷도 아저씨처럼 안입고...."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나
이정도면 난 상당히 노골적으로 말한 것 같은데 알아 듣고 오케이 하는 말인가?
너도 나와 같은 입장이겠지
명확하게 말해버렸다가 혹시라도 아니면
적당이 얼버무리며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면 이대로 퇴사밖에 답이 없겠지
그래서 이렇게 애매하게 말하며 서로 눈치만 보는거겠지
자꾸 도망가지 말자 느낌상 확실히 내가 맞다.
확실히 나야! 쐐기를 박자. 성공 확률은 상당히 높아보인다
"설마....6달이나 공들였다는 사람이 나였어? 그런거야?"
내 패는 간접적이나마 다 보여줬다.
그렇기에 고백 대신 질문으로 바톤을 네게 넘긴다.
상당히 찌질한 방법이지만 지금 나에겐 이게 최선이다
"맞을껄요"
어?....이거 진짜 뭐지? 나라고? 진짜 나라고?
우린 여태 둘이 뭐한거야 진짜
누구라도 먼저 말했으면 된거였는데 지금까지....
기쁘다
꽁꽁 싸매고 있던 마음이 터져나가서 한없이 퍼져나간다
"초코우유도 그래서 준거였어?"
"나한테 잘해주니까 준거죠"
"아닌데 초코우유줘서 잘해주게 된건데"
"아니거든요~ 잘해줘서 초코우유 준거라구요"
"쪼끄만게 어른을 초코우유로 꼬시다니"
"진짜진짜 나한테 잘해줘서 초코우유 준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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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저와 와이프의 첫 만남 이야기 입니다
큰 아이가 중3이 되었으니 꽤나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죠.
코로나로 자가격리중이라 시간이 남아돌아 한번 써보았습니다.
처음이었던 그 때를 가끔 떠올려 보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죠^^
제목은 좋아하는 가수 이승환님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이 후의 이야기도 써두었으니 나중에 기회되면 올려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결혼이라는 것이 참 행복한 일인데
결혼 게시판의 글들을 보고
"결혼하면 안되겠구나"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생기면 안돼요!!
문제점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게시판만 보면 결혼의 문제적인 요소가 많이 부각되어 보이지만
사실은!!! 행복하게 사는 부부들이 대부분입니다~
이건 진짜라구요~~
결혼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더 보고싶으시면~ 이전에 제가 썼던 글들을 보고
다들 더욱 달달하게 사세요~
1. 나의 행복은 너의 웃음으로부터 나온다
http://todayhumor.com/?wedlock_13394
2. 돈관리 남편이 하는 집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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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천사같은 내 와이프님(feat.주차장에서 잠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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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결혼 12년차에도 여전히 와이프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http://todayhumor.com/?wedlock_3522
5. 결혼 12년차 드디어 집을 샀습니다
http://todayhumor.com/?wedlock_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