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은메달3개 동메달 2개를 땄죠. 금이 없어서 살짝 아쉽긴 하지만 우리 스피드 스케이팅의 역사를 생각했을 때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스피드 강국은 아니었습니다. 변방 중의 변방이었죠.
70년대에 이영하라는 거물이 등장하여 주니어 무대에서 에릭 하이든(전설의 80올림픽 5관왕)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기대를 주었지만
성인 무대에 접어들자 격차가 크게 벌어졌고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최초의 메달 기대주는 배기태였는데 88년 캘거리 올림픽 천미터에서 5위를 차지합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습니다. 우리나라 동계올림픽 사상 최고의 순위였죠.
<1988 캘거리 올림픽 남자 천미터 풀영상>
그리고 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쇼트트랙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사실 첫 메달은 쇼트트랙에서 나올 것이라 봤습니다. 그런데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이변이 일어납니다. 유망주 김윤만이 천미터에서 은메달을 따낸 것이죠. 100분의 1초차 은메달이었기에 아쉽기도 했지만 첫 메달이었기에 모든 동계스포츠 인들이 감격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쇼트트랙 최강으로 군림해왔던 반면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는 번번히 고배를 마십니다. 여자 단거리 스타 유선희가 강력한 메달 후보였음에도 94 릴레함메르에서 메달획득에 실패했으며, 김윤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는 일본의 시미즈가 500미터에서 금, 1000미터에서 은메달을 따는 장면을 부러운 눈빛으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이규혁은 당시 천미터 세계신기록 보유자였는데 아쉽게도 메달권에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92년 이후 스피드에서 첫 메달이 나오기까지 14년이 걸렸습니다. 바로 2006년 토리노 올림픽 500미터에서 이강석이 동메달을 따낸 것이죠. 우리나라 역사상 두 번째 스피드 메달이었습니다. 쾌거였죠.
그렇게 메달 하나가 소중하던 시기에 깜짝스타 3인방이 등장합니다.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황금세대인 이들로 인해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이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2010 벤쿠버에서 무려 3개의 금메달과 2개의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합니다.
2014년 소치에서도 이상화가 금메달을 이승훈이 팀추월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죠. 그리고 이번 2018평창에서도 벌써 5개의 메달이 나왔습니다.
어느덧 우리나라도 스피드 강국으로 진입한 것이죠. 메달 하나에 그렇게 기뻐하고 소중하게 여긴 시절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