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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여몽연합군에 대한 가마쿠라 막부측 전과
게시물ID : history_142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emonade
추천 : 4/4
조회수 : 115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2/27 10:36:34
1차 여몽 연합군의 총 병력은 3만 3천여명, 함선은 9백여척이고 지휘관은 몽골측 지휘관은 도원수 흔도를 필두로 우부원수 홍다구 좌부원수 유복 등이 있으며 고려에서는 도독사 김방경과 박지량 김문등이 참여했습니다,
 
가마쿠라 막부는 일단 규슈의 각 지역의 영주들이 주축이 되었고 이후에 본격적인 사태가 알려지며 규슈 본토 결전을 벌이게 됩니다, 마치 2차세계 대전의 프리퀼을 보는 것 같네요, 아무튼 자세한 내용은 글을 진행하며 살펴보기로 하고 당시 진행 경로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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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는 동네북단체 관광에 필수 코스인 대마도입니다.
 
B 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멀티인 이키섬이지요
 
C 는 원피스해적들의 본거지로 알려진 다카시마
 
D 는 규슈에서 제일 중요한 지역인 하카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몽연합군은 이를 15여일만에 돌파했습니다, 그럼 가마쿠라 막부의 전과는 뭐냐고 하시면 아래와 같습니다.
 
출항한지 하루 혹은 이틀째인 10월 5일 대마도 남단에 상륙한 1천여명의 여몽 연합군들은 당시 정체불명의 세력을 확인 요격하기 위해 모여든 일본군을 2시간여만에 괴멸시켰으며 이에 맞서 대마도주 소오스케쿠니宗助國는 당시 6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80여기의 무사들을 이끌고 돌격을 하였으나 간달프가 아닌 이상 무리겠죠, 전사하셨습니다.
 
10일간 대마도에서 체류한 여몽연합군은 10월 14일 이키섬에 도착하였고 2척의 배에서 4백여명의 병력을 상륙시키는데 이에 맞서 다이라노 가게다카가 가신 100여명을 이끌고 출전했으나 패배하고 히츠메 성으로 후퇴 공성전을 벌이나 역시 무너져 내리는데, 규슈 본토 다자이후에 여몽 연합군의 진격 사실을 알리고 자결합니다.
 
10월 17일에 여몽연합군은 큐슈 서북쪽 다카시마에 도착하였고, 이에 다마시마에 산성을 구축 1백명으로 응전하나 패배합니다.
 
10월 19일 하카타 만에 상륙하는데 이 위치는 노르망디에 비견되는 요충지 중의 요충지이자 상륙이 가장 적절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대략 위치는 아래와 같은데, 여기가 뜷리면 규슈의 행정 문화 경제의 중심지 다자이후가 지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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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자이후를 지키던 쇼니 쓰네스케에게 몽골연합군에 대한 이키섬의 급보가 전해진것은 13일 무렵입니다, 이에 쇼니 쓰네스케는 규슈 내의 막부 측에서 파견한 지방관인 슈고와 지토 그리고 쇼군 직할의 무사들로 영지를 가지고 있던 고케닌들을 동원하게 되고 이때 모인 병력이 무사는 5375명, 병력은 대강 추산되는게 최소 1만에서 최대 1만 7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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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타 만의 지도와 상륙 경로입니다. 지도는 매립지가 많은 점을 감안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지점은 이마즈
B 지점은 모모치바라
C 지점은 이키노하마(현재의 메이노하마)
D 지점은 하코자키입니다.
 
동그라미 쳐진 곳이 소하라 산입니다, 하카타를 관망할수 있는 요충지이지요,
 
본격적인 상륙이 계시 되기 전날인 19일 소수의 몽골군이 먼저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이마즈 해안에 상륙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일본측 주둔병들을 괴멸시키고 그 기세를 살려 다시 일부 병력을 소하라산으로 보냅니다.
 
다음날인 20일 본격적으로 상륙이 시작되자 총사령관이던 쇼니 가케스케는 아카자카 지구의 수비병들에게 이키노하마에 상륙중인 고려군을 요격할것을 명합니다, 그러나 전날에 소하라 산을 점령하고 있던 몽골군과 협력한 고려군에게 전멸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본진이라 할수 있는 모모치바라에서 결전을 벌이나 패배하였고 하코자키에서는 시마즈 군과 하코자키 하치만쿠의 승병들이 분투를 벌였으나 결국 패퇴하여 사실상 하카타의 방위라인은 붕괴되고 맙니다.그리고 하카타는 야마토 정권을 세운 궁시와 무사의 수호신인 15대 오진 덴노를 모시는 신사인 하치만쿠 즉 팔번궁이 불타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하카타는 지워지게 되는데 유일한 전과라면 모모치바라에서는 쇼니 가게스케가 맞서 싸우다 무려 부원수 유복형을 활로 맞춰 낙마시키는 전과를 거둔것 정도를 들수 있겠네요.
 
아무튼 살아남은 병력들은 서쪽의 관문인 미즈성으로 집결하여 총 옥쇄를 결의합니다, 이 미즈성은 미즈水라는 말 그대로 일종의 제방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하카타에 수공을 가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하는데  말 그대로 자폭장치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여몽 연합군은 올 생각을 안합니다, 지휘부의 내분때문인데, 대충 상황은 고려군은 해볼만하다, 몽골군은 숨 좀 돌리자로 유복형이 활에 맞아 낙마를 할정도였으니 딱히 이해못할 상황은 아니었고 그럼 내일 다시 해보자 정도로 의견이 좁혀졌는데 그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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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몽 연합군을 카와이 하게 ☆로 잘라볼께요 ♡
 
 
'마침 그날 밤에 크게 바람불고 비가 와 바위와 벼랑에 전함이 부딪쳐 많이 부서지고 김신은 물에 빠져 죽었다.' - 고려사
 
 
태풍이 몰아쳤고 간신히 살아남은 이 들은 후퇴하게 됩니다. 1차 원정 이후의 생존자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이 때 돌아오지 않은 이가 전군에서 1만 3천 5백에 달한다고 하니 더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 하고 또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가마쿠라 막부는 여몽연합군이 하카타에 상륙하려 한다는 다자이후가 위험하다는 급보를 듣게 됩니다.(....)
 
사실 가마쿠라 막부라기 보다는 규슈의 전과인데 아무튼 놀라운 전과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D
 
천운도 전술이라니 그저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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