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한국에선 극과 극의 평이 꽤 나오는데 사실 이정도 까지 갈릴거라고는 생각 못했네요.
어느정도 호불호는 있을거라 봤지만..
이 영화는 서구인, 특히 미국인에게는 기타 부연설명이 거의 필요없을만큼 잘 짜여진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고 그걸 훌륭하게 풀어갑니다.
단점은 영화 극 초반부가 약간 루즈하단것과 최종 액션 시퀀스가 좀 부실하단거 정도였는데
극 초반부의 루즈함은 결말로 향하면서 내러티브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거구나 라고 설득당해버렸고,
최종 액션 시퀀스는 중간의 부산 씬이 너무 잘 뽑혀서 기대를 가지게 한 반작용이 아닐까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이정도의 단점이라면 일반 관객들에겐 그닥 큰 무리 없이 다가갈것이고 그래서 거의 대부분이 호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정도까지 사람들 의견이 갈릴거라고는 생각 못했네요.
사실 이 영화에 필요한 배경지식은 비 서구인 이라도 대부분 어느정도 가지고 있는 필수 교양이 아닐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단순 사실만 인지한것과 직접 살아가며 체득한것의 문화적 괴리는 이 영화를 비 서구인이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나 봅니다.
뭐 저도 서구권에서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나름 역덕인지라 역사적 사실을 꽤 알고있었고 현대 서구권 흑인 또는 유색인종의 사회적 지위와 문화는 여러 영화 드라마 등을 접하며 간접체험하면서 그들의 시야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인지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는데 큰 무리가 없었고, 많은 논란이 되는 킬 몽거라는 빌런에 대해서도 쉽게 감정이입이 가능했죠.
빌런을 중심으로 굳이 설명하자면
영화 극 초반 트차카와 삼촌이 만나는 씬의 배경은 92년 la 입니다.
소품으로 등장한 소총들과 경찰을 경계하는 분위기 까지 이 장면이 굳이 필요한 이유는 시간과 장소, 소품이 설명해 주는 사건인
92년 LA 흑인폭동을 등장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한국인들과 서구인들이 가지는 이미지, 가치는 판이하게 다를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인들에겐 무질서한 사건 또는 한인들을 공격한 나쁜 폭도들 정도로 기억되지만
흑인들과 미국 사회, 그리고 유색인종 이민자가 많은 서구권 사회들에겐 큰 충격이 되었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출발점은 한 흑인 청년이 경찰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한 로드니 킹 사건입니다.
공권력에 의한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상징하는 이 사건은 구타, 불법 검문 같은 당시 흑인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를 상징하는 사건이었죠.
그리고 그 장소인 흑인빈민가. 플라스틱 박스를 잘라만든것 같은 농구대 림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이건 당시의 흑인 빈민가의 실상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도구이죠.
높은 영아 사망률, 높은 범죄율과 마약에 취햑한 환경,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환경.
그렇기에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나기 힘든 환경이지만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
이런 사회적 현실들이 그 장면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이런건 사실 비 서구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죠. 그런 현실을 접해볼 기회가 없으니까요.
저도 몇몇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그런 분위기를 여러번 접하지 못했다면 그렇게 까지 쉽게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이 장면은 영화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장치입니다.
이걸 이해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결말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장면은 굉장히 많은 사실들을 설명해 주는데
빌런인 킬 몽거의 성장 과정을 구구절절히 설명하지 않고도 한번에 이해시킵니다.
흑인 빈민가의 현실을 고려해 봤을때 아버지 없는 아이가 그곳에서 어떻게 성장하였을지는 너무나 뻔하죠.
또한 킬 몽거가 특수부대로서 아프간이나 이라크 같은곳에 갔었단 사실. 이거 또한 그 빌런을 쉽게 이해시키는 장치죠.
현재 미국에서 군인을 지원하는 대부분은 저소득층, 유색인종, 이민자2세와 같은 사회적 소수계층입니다.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그들이 주류 사회로 편입될 수 있는 몇안되는 길로서 군인을 지원하고 미국 정치권 또한 적극 활용하죠.
빈민가나 이민자가 많은 동네의 학교는 미군의 모병관들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장소로 유명하죠. 고등학교만 하는게 아니라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까지 팜플랫을 나눠주며 직업군인을 적극홍보하는 미군 모병관들의 활동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있습니다.
그렇게 사회적 소수계층을 모집하여 진짜 전쟁터, 아프간, 이라크 등지로 내모는것에 대해 미국내에서도 많은 비판이 있습니다.
그 진짜 전쟁터인 아프간, 이라크에 대해 미국인들이 가지는 이미지는 '트라우마'입니다.
이라크, 아프간전에 참전한 군인들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영화는 정말 많습니다. 오죽하면 미국의 보수 우파를 상징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도 참전군인의 트라우마를 심도있게 묘사하죠.
따라서 간단한 몇개의 설명만으로도 킬 몽거라는 캐릭터는 확실하게 설명이 가능하죠.
흑인 빈민가 출신의 아버지가 없는 참전군인.
이런 배경은 그가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고 어떤 정신적 상처를 입었을지 쉽게 추측이 가능하게 합니다.
다만 이건 그 배경을 아는 사람들, 미국관객들에게만 매우 쉬운 설명이지만요. 비 미국인일지라도 흑인이나 이민자가 많은 유럽권의 관객들은 흑인 빈민가 출신이고 아버지가 없다 라는 배경은 한국인들보다 훨씬 쉽게 캐릭터를 이해하게 합니다.
다시 첫장면으로 돌아가서 la 흑인폭동의 원인이된 로드니 킹 사건은 단순히 20몇년전의 옛날일이 아닙니다.
불과 몇년전 있었던 경찰의 흑인 소년 총격사건, 그 뒤로 이어진 수많은 시위들과 연이어서 벌어진 경찰의 과잉대응, 구타 사건등은 92년의 LA와 현재의 미국을 잇게 만들죠. 그건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것을 영화는 킬 몽거가 와칸다에 등장하는 순간 영화의 첫번째 메시지로 던집니다.
우리가 그들의 현실을 알지 못하기에 이 메시지를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죠.
또한 첫장면에 등장한 총기류와 과격행동을 준비하던 킬 몽거의 아버지, 그리고 이 영화가 "블랙팬서" 라는 점은
미국에 존재했던 정치단체 "흑표당(Black Panther Party)"을 필연적으로 떠올리게 합니다.(물론 평론가 누군가 말한 말콤 X를 떠올리게도 하고요)
폭력엔 폭력으로, 증오엔 증오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선 힘이 필요하다. 무장투쟁이 우리의 길이다.
라는 가치를 내세운 흑표당. 영화가 흑표당의 오마쥬로서 킬 몽거라는 빌런을 만든게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더군다나 킬 몽거가 블랙팬서 슈트를 입는다는건 심증을 넘어 확증에 가깝게 느껴지게 합니다.
이렇게 그들의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을 활용하여 빌런인 킬몽거를 영화는 매우 심도있게, 그러나 매우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사실과 그들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알지못하는 한국관객이 이 빌런을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이해하기는 사실 많이 어렵긴 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흑인 인권 관련 영화와 소설, 드라마 들이 나왔고 굳이 그런 인권 영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많은 문화작품들에서 그들의 삶의 현실을 그려내 왔기에 저는 사실 이정도 까지 한국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 생각보다 문화적 배경의 차이는 하나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더 크게 작용한다는걸 알게 됐네요..
단순히 평론가들이 정치적 올바름이나 인권이슈에 취약해서 호평을 쏟아내는게 아니라 영화가 여러 장치를 사용해서 영화의 메시지를 던지고 캐릭터를 설명하고 내러티브를 이끌어 나가는 방식이 위에 설명과 같이 너무나 효율적으로 하지만 너무나 강렬하게 보여주기에 그런 호평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사실 저는 평론가들이 단순한 정치적 올바름에 경도되어 영화가 더 심도있는 인권이슈는 못건드렸다는 점을 못봤단 점에서 그 호평들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무지막지하게 비판받을 정도는 아닌거 같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을 지나 블랙팬서의 첫 전투씬 또한 내러티브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으로 작용합니다.
처음엔 살짝 김빠지는 액션씬이라서 영화의 초반부의 몰입력을 약하게 만드는거 아닌가 하고 약간 실망했지만 사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던건 바로 그 다음장면과 트찰라가 트차카를 두번째 만나게 되는장면, 킬 몽거와의 논쟁까지 이어지며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영화의 큰 내러티브의 출발점을 세움니다.
뜬금없이 빌런도 아니고 왠 이상한 무장집단과 싸우고 너무 쉽게 바르는 장면은 긴장감을 빠지게 하고 김빠지는 액션씬으로 관객을 실망시키긴 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영화의 메시지와 내러티브를 위해 중요한 기능하기에 액션이 허술해지는 설정을 넣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인공과는 상대도 안되는 무장단체를 첫 액션씬의 상대로 설정한것은 그 '무장단체'가 의미하는 바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엔 '보코하람' 같은 아프리카의 무장조직, 또는 내전중인 아프리카의 수많은 국가의 수많은 반군을 의미하는것 같습니다.
그 장면에 등장하는 소년병의 존재, 잡혀있던 많은 여자들. 이건 현재의 아프리카의 현실을 의미합니다.
아프리카의 서구의 침탈과정과 독립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부족간 분쟁, 정치적 불안, 내전 등은 소년병문제, 인종청소, 집단 납치 강간 같은 문제를 만들었죠. 이건 역사적으로 봤을때 제국주의 열강의 책임이 확실한 부분인데 현재 그들은 손을 거의 놓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 기반한 이 장면에서 중요한건 트찰라와 여친(이름이 생각 안나네요 ㅠ)의 대화에서 이어집니다.
임무중이었다고 말하는 트찰라 여친. 그리고 이어진 장면에서 난민을 받고 적극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대화.
이건 선진국이고 강한 힘을 가진 와칸다라는 국가가 이런 동포들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입니다.
현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관망하는 실제 서구권 국가에 대해 던지는 메시지인 동시에 트럼프로 대표되는 현재 미국의 인종주의와 정치권에 대해 던지는 메시지 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경화 되는 많은 서구권 국가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고요)
뭐 이 부분이 아프리카 라는 대륙에 대해 이영화가 다루는 사실상 마지막 장면이기도 해서 그 지점에서 저는 좀 비판적이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러티브의 시작점으로서 기능하는 부분은 외면하는 닫힌국가 와칸다(선진국, 또는 힘있는 집단이나 정치권, 스스로의 결속등등을 의미하죠)와 고통받는 흑인이라는 지점으로 주인공에겐 내적갈등의 시작점을 부여하고 영화가 앞선 시작장면과 더불어서 무엇을 말할려고 하는가를 확실히 하는 역할을 하죠.
중간중간 영화는 여러 캐릭터와 장치를 통해 영리하게 이런 주제를 확대시키고 잘 전개해 나갑니다. 율리시스 클로라는 캐릭터를 통해선 침탈자로서의 서구, 또는 백인을 보여주기도 하고 아버지와의 두번째 대화를 통해선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 문제회피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하죠. 킬 몽거와 트찰라의 논쟁을 통해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도 하며 고릴라부족(?)을 통해 관망자까지 이제 우리는 "함께" 해야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죠.
또한 킬 몽거의 최후의 노예로 살바에는 자신들의 조상들처럼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며 수장시켜달라는 대사는 스필버그의 아미스타드를 생각나게 만들며 기존 체제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최후의 저항을 보여줍니다. 또한 트찰라와의 사실상의 화해처럼 보이는 장면을 연출하고선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은 트찰라가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과거의 잘못과의 확실한 결별을 선언하였듯 극단적인 저항을 상징하는 킬 몽거가 과거의 악습을 자신이 짊어지고 감과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인 트찰라에게 새로운 방향을 맡기는걸 상징합니다. 이를 통해 미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죠.
이렇게 다 설명하고 보면 사실상 이 영화의 중심은 블랙팬서 보다는 킬 몽거이죠. 여러 주체들의 연속된 과거의 잘못으로 태어난 악과의 결별과 새로운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영웅의 탄생. 이 안에 녹아들어간 흑인 인권 이야기.
그래서 사실상 주인공이 영화 내내 약해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새로 태어난 이후의 첫번째 쿠키에서의 연설장면에서 소위 말하는 간지가 느껴지는건 단순히 와칸다 킹왕짱이니깐이라기 보다는 내러티브를 통해 새로 태어난 트찰라의 본격적인 데뷔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여튼 배경지식이 상당히 필요한 영화이기에 어려울 수는 있습니다만.
그런 배경지식이 유독 비서구권 사람들에겐 훨씬 어렵고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서구권 관객 수준에선 이 영화는 오락영화로서 어려운 주제를 상당히 쉽고도 강렬하게 전달했다는 지점에서 충분히 좋게 평가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유독 평이 갈리는건 그런 차이가 있기때문인거 같습니다.
조금 어려운 배경지식이긴 하지만 좀 더 알아보시고 이 영화를 다시보신다면 내러티브 만큼은 상당한 수작이라고 느끼실 수 있을거 같습니다.
배경지식을 쌓기위해 추천드리는 드라마와 영화는
"아미스타드" "버틀러,대통령의 집사" "헬프" "루크 케이지" "말콤 x" "증오"
입니다.
몇개만 골라 보시고 다시 보시면 조금 다르게 보실 수 있을거 같습니다.
그냥 구린 영화다 하고 넘기기엔 내러티브 전개방식이 오락영화라기에 아까울 정도로 잘빠졌거든요 ㅠㅠ
물론 영화 전체로 보자면 전 왓챠에서 3.5점을 줬습니다.(3.8점정도 주고 싶은데 왓챠는 0.5점 단위라 ㅠ)
내러티브, 악역, 음악은 환상적이었지만
마지막 액션 시퀀스가 좀 힘이 빠졌고 이 영화가 미국 또는 서구권 흑인 인권 위주로 다루느라 놓친 "아프리카" 라는 대륙의 현실 문제 때문에 역대급이라고 말하기 까진 조금 무리인듯 보였습니다.(마지막요소가 저는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웠습니다. 배경은 아프리카인데 아프리카는 그냥 소품1 정도로 다뤄진듯 해서요..)
그래도 배경을 조금만 이해하시면 이렇게 매력적인 악역과 상업오락영화에서 이런 주제를 이렇게 매끄럽게 진행해 내다니 라는 지점에서 감탄하실 수 있기에 조금만 배경지식을 알고 보시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아 그리고 제가 음악하는 사람이라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 영화, 음악은 진짜 죽입니다. ㅋㅋ 단 한장면 정도에서만 살짝 걸리는 음악이 있었고 나머지는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흑인 유명 뮤지션들이 만든 음악들은 정말 역대급 영화음악입니다. 따로 ost로 들어보셔도 좋아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