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안중근 의사가 일제에 의해 돌아가신 기일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등 뒤에는 일곱 개의 북두칠성 점이 있어서, 어릴 때 이름이 응칠이었다고 합니다
또 안중근 의사 부친 안태훈은 관군에 쫒기던 동학군 지도자 김 구 선생을 보호했답니다
어머니부터 친척 지인까지 모두 독립운동을 했고,
거사 당일 우덕순, 유동하, 조도선 등과 같이 각 정류장을 맡아 대기했지만,
안중근 의사가 대기하던 하얼빈에 이토 히로부미가 내립니다
거사 후 여순 감옥에서 수감 중,
수시로 권총을 꺼내 겨냥하며 분노하고 위협하던 헌병 간수 치바 도시치(千葉十七) 는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게 되고
제대 후 평생 안의사의 유묵「爲國獻身軍人本分」과 위패를 모시며 명복을 빌고 49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면서 부인에게 자신의 위패와 함께 안의사를 조석으로 공양하라는 유언을 남기죠
부인의 사후 양녀였던 조카가 이를 그대로 이행했고
이를 알게된 大林寺 주지 사이토는 매년 9월 지바 부부와 안 의사와 그의 조국에 참회하는 추모 법회를 한답니다
사이토 주지는
"불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인간이 저지른 죄악, 즉 가해자 일본의 죄에 대한 깊은 반성을 표시하기 위해 추모법회를 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일-한 역사인식을 널리 바로잡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大林寺(다이린지)에는 16년 전 중학교 1학년 여학생들이 여름방학 중 1주일간 사이토 주지와 함께 안 의사를 공부한 뒤 적어낸 “1909년 10월26일 일본의 조선침략에 항의해서 일본의 초대총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사살했다”는 내용의 공동 발표문이 전시돼 있답니다. 사이토 주지는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역사학습의 자료’로 삼고, 일본 각지의 학교나 시민단체에서 강연할 때 반드시 이들 학생들의 공동 발표문을 참고자료로 가지고 간다”고 합니다
"일본이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 은폐하려 밸런타인데이 (2월14일)만들었다"는 소문은 불분명하지만,
'국뽕'이라는 저속한 말은,
혐한극우들과 극우친일파들이 한국의 역사를 비하하고 모욕을 주기 위해 유포한 프레임이라니 사용을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안중근 의사 유가족을 방문한 뒤, 병들어도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어렵게 살고 계신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연세대 행정대학원생들은,
유가족에게 의료비와 생계비를 지원하기 위해 2017년 4월부터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답니다.
안 의사 순국 후, 어린 맏아들은 왜구 밀정이 길거리에서 독이 든 과자로 독살했고,
상해 일대를 떠돌며 비참한 밑바닥 삶의 고통속에서 청년이 된 둘째 안준생은,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에게 잡혀 "죽을래? 사과할래?" 양자택일하라는 협박에,
이토오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분기치에게 사죄를 하고 일본 전역을 끌려 다니며 사죄 행진을 합니다
일제 감시로 안 의자 식솔을 돌보지 못한 김구는 사정을 모르고,
변절자라며 분노하여 잡아 오지만 중국 관헌은 교수형 요구를 불허합니다
슬픈 이야기죠 ㅠㅠ
'독립운동 하면 3 대가 망한다'는 말이 종식되도록 국가 보훈처가 노력해야만 하고
해방 후 청산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부귀권세를 누리는 친일파 세력을 독일처럼 공소시효 없이 추적하여 처벌하는 나라가 되어
안중근 의사와 같은 독립 선혈들이, 치바 도시치와 사이토가 빌고 비는 명복대로 편안한 안식을 취하도록 해드리길 기원합니다
의정부시 안중근 의사 동상 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