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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ds의 일생
게시물ID : humordata_17389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박준준준
추천 : 13
조회수 : 1984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8/02/12 12: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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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고 게임가게 진열장에 전시된 채 팔려나가기 만을 기다렸다.
 

 
주변 다른 중고 게임기들은 잘도 팔려나가는데 나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 한 때 휴대용 게임기의 최고봉이었다는 닌텐도ds였지만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잊혀진지 10년이 지난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릴없는 시간만 지나고 있었다. 

어느 날, 멀리서 들려온 소문에 저번 주에 팔려나간 흰색 ps비타란 게임기가 망치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선생님이 사오랬다며 학습용 휴대용 컴퓨터라고 속인 꼬마애가 엄마 손을 잡고 사간지 불과 3일 만에 게임기임이 들통 났고, 분노한 엄마가 휘두른 망치에 액정이 박살나 죽었다 그랬다.
 
제발 날 소중히 여기는 여고생이 나타나기만을 기도하고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진열장 유리 밖으로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꼬마를 만났다.
한참을 엄마와 티격태격하던 꼬마는 의기양양하게 날 품에 안았고 엄마는 한숨을 쉬며 지갑을 열었다. 흰색 ps비타를 떠올리며 몸부림 쳤지만 부질없는 허공의 용두질일 뿐이었다.
 
 
그날부터 나의 엉덩이에는 언제나 같은 팩이 꽂혀 있었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다행히도 그 아이의 엄마는 날 죽이지 않았지만 꼬마는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가볍게 터치만 해도 될 것을 스타일러스 펜으로 후벼 파고 온 힘을 다해 내리찍으며 날 멍들게 했다.
 
이 새끼야... 넌 나중에 행여라도, 혹시나, 만약에 여자 친구 생기면 ‘헤헤 옆집 만식이 형이 여자들 아프다면 좋다는 거랬어’ 하면서 빡빡한데 생짜로 하다가 여자 친구가 막 울면 ‘좋치? 좋지? 할 새끼야...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한 달간 나를 만신창이로 만든 그 애자식은 어느 날 버스정류장에서 다른 팩을 사달라며 한참을 엄마와 다투다 끝끝내 크게 울음을 터뜨리고는 엄마 손에 질질 이끌려 가버렸다.
 
 
 
벤치에 나를 놔둔 채…….
 
갑작스런 자유라는 생각도 잠시 앞으로의 내 미래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참으려 했지만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떨어진 구슬픈 빗방울이 액정에 떨어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꺽꺽 울음이 터졌다.
 
태어나 사랑도 못 받고 버림받은 나란 존재가 움직일 수도 없는 이 버스정류장 벤치에 놓여져 있다는 게 팩 꽂는 슬롯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누가 내 옆에 앉는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눈길에 슬픔 보다는 부끄러움이 솟기 시작했고 갑자기 그는 나긋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 나는 준준준이야 늦은 시간에 넌 여기서 뭘 하고 있니?” 
 
닌텐도ds에게 말 걸고 있는 미친남자에게 대답할 닌텐도ds가 세상에 있을 리 없었다. 
 
 
“난 버림받았어. 난 아직 누군가와 사랑할 자격이 없대... 난 이제 어쩌면 좋지...”
 
“그냥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서로 기댈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닐까?...“
 
“왜 그녀들은 나를 자기들의 이상형에 맞추려 할까?”
 
“난 그냥 준준준인데 말야....”
  
 
 
가뜩이나 기분도 좋지 않은데 옆에서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으니 짜증이 솟구쳤다.
더군다나 온갖 자잘한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더러운 가방에 나를 넣고 덜컹거리는 버스에 오른 이 새끼가 너무 싫다.
  
이젠 쉬고 싶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새 주인 녀석은 날 잘 닦아주고 액정에 필름도 씌워준데다가 부드러운 펜으로 조심스레 날 터치했고, 다양한 팩으로 날 심심치 않게 해주었다. 
 
‘날 이렇게 세심하게 터치하는 걸로 보아 넌 여자 친구가 생기면 세심하고 정성들여 봉사 하겠구나 아다들의 귀감이야...’
 
 
그러던 어느 날 주인 녀석은 운 좋게 여자 친구를 만들어냈고 데이트 시간에 밀려 내 휴식시간은 점점 길어졌지만 그가 행복해 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웃음 지을 수 있었다.
 
그 못된 년의 손에 나를 쥐어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뭔 놈의 힘이 그리 좋은지 펜으로 나를 뚫을 기세다.
보증 서줬다가 도망간 친구를 십 년 만에 만나 명치를 쳐도 이보다는 살살 치겠다.
 
준준준은 그녀의 난폭한 행동에 놀라 나를 빼앗아 가슴에 품었고 세차게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소리에 긴장이 풀린 나는 잠에 빠진다.
 
 
 
한참 후 앙칼진 여자의 외침에 잠을 깼다.
 
“하루만 빌려줘! 나 집에서 할 것도 없단말야!”
 
“나... 나 출근할 때 해야 되는데.... 점심시간에도... 해야 되는데...”
 
 
야, 이 멍청한 놈아 분명히 날 하루 만에 때려죽일 여자라고!! 너도 잘 알잖아! 나 부셔놓고는 자살했다고 우길 년이라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나를 빼앗은 그녀는 담배냄새와 비릿한 윤활유 냄새에 찌든 핸드백에 날 쑤셔 넣고는 차에 올랐고, 지옥 같은 나날이 시작되었다.
내 몸은 찍히고, 던져지고, 발로 채였으며 심지어 얹어놓고 잊어버린 담뱃불에 액정이 지져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년에게 준준준은 수많은 술, 맛집, 선물 자판기 중 하나일 뿐이었고, 곧 준준준이 별볼일 없는 자판기라는 사실을 깨닫자 아예 수신을 차단한 채 번호를 지워버렸다. 
그리고 화풀이라도 하듯 날 고문했다. 매일을 눈물로 지새우며 차라리 이 고통이 단칼에 끝나기를 기도하고 기도했다... 


 

“여보세요?”
 
“어... 잘... 지냈어?...”

어느 화창한 오후, 햇볕이 화장실 조그만 창문을 통해 변기로 내리쬐던 날이었다. 
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틀림없는 준준준이다. 얼마 전 맥주에 침식된 마이크가 지직거리며 소리의 전달을 방해했지만 그가 틀림없었다.
 
“뭐야? 너 번호 바꿨어? 아씨 왜 전화했는데?”
 
“어.. 아니.. 그냥.. 잘 지내나 싶어서....”
 
“나 바빠 빨리 말해”
 
 
그년이 변비로 꽉 막힌 엉덩이에 힘을 주며 말했다. 손에 쥔 담배가 덜덜 떨리고, 움켜쥔 내 몸뚱이에서 빠직 소리가 날 정도였다.

 
“아.. 아니.. 그냥 저기.. 아 맞다! 그 닌텐도ds...”
 
“잃어버렸어!”
 
“으...응?... 뭐라고?...”
 
“아, 너도 원래 주운 거래매! 잊어먹었다고! 그딴 걸로 전화한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저기...”
  
그 순간 나는 남은 모든 힘을 쥐어짜내 소리를 질러냈다!
 
 
 
“준준준아!!! 나 여깄어!! 나.. 나!!! 여깄어!!! 살려줘!! 나!! 데려가!!!”
 
 
그 소리는 찢어져 반쯤 고장 난 스피커를 통해 '삐익!'하는 기계음으로 퍼져나갔고 황급히 핸드폰을 꺼버린 그년은 딱딱한 화장실 시멘트벽에 있는 힘껏 날 내동댕이쳤다.
 
 
“뭐야 이 미친 기계새끼가!!!!”
 
 
 
  
 
그 녀석은 오늘도 자취방에서 혼자 울고 있을 텐데...
 
다 자기잘못이라고, 또 자기가 못난 탓이라고 울고 있을 텐데...
 
여자들에게 받은 상처에 상처를 덧바르며, 벽을 두텁게 쌓으며 울 텐데...
 
자취방에서 혼자 울고 있을 텐데....
 
내가 도와줘야 하는데...
 
웃음을 줘야 하는데...
 
 
 
 
 
 
 
눈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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