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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주관적인 코믹스 리뷰 1
게시물ID : animation_142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wentysix
추천 : 2
조회수 : 2378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2/09/27 02:53:34

음...한동안 애니게는 눈팅만 했습니다. 코믹스 번역을 그만두고 난 뒤로는 말이죠...


사실 제가 읽은 코믹스 중 괜찮은 작품들을 추천하겠노라고 예고는 했지만 선정도 힘들 뿐더러 편집도 힘들어서 흐지부지된 감이 있습니다.


원래 한 작품 당 글 하나를 할당하려고 했지만 보통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더군요. 욕심만 너무 앞섰던 것 같아요 ㅎ


그래서  여러 작품을 모아서, 각각 간략한 소개글 정도만 쓰는 정도로 해보도록 할게요.


이 글의 목적은 마블과 DC에서 나온 코믹스들을 넘어서, 우리나라에는 약간 생소할지도 모르는 코믹스들을 소개하는 데 있습니다.


슈퍼히어로물 말고도 코믹스에도 다양한 주제와 시도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물론 슈퍼히어로물을 소개하게 될 수도 있지만요. 


제가 갑자기 정신이 나가서 번역을 다시 시작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영어 텍스트이고, 구하기 힘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이 경우엔 제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어쟀든...시작해볼게요.



1. Y: The Last Man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 Brian K. Vaughan, BKV의 작품입니다. 이 작가는 정말 기발한 상상력, 스토리 텔링 능력, 유기적이고 치밀한 구성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추고 있죠. 대표작으로 제가 번역한 사가(제 꼬릿말에 링크가 되어 있습니다), 뉴욕 시의 시장이 된 슈퍼히어로의 이야기를 다룬 엑스 마키나(추후에 소개하겠습니다), 빌런인 부모들에게서 도망친 어린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인 런어웨이즈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최고조로 발휘된건 바로 이 작품, Y 더 라스트 맨이라고 생각합니다.


줄거리를 간략히 적어보자면, 어느 날 갑자기 원인 모를 이유로 지구 상에서 Y 염색체를 가진 모든 포유류가 사망합니다. 대통령부터 일반 노동자까지 모든 남자들이 일시에 사라지자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국가가...(넵 1절만 하겠습니다) 인류에게는 이제 멸망밖에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인류가 멸망할 리는 없죠! 주인공인 요릭과 그의 애완 원숭이만이 역시 원인 모를 이유로 지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성임이 밝혀집니다. 상원 의원인 어머니와 대통령(모든 남자들이 죽어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농무부 장관)이 요릭에게 이 재앙을 타개하기 위해 저명한 클론 기술자이자 유전학자인 만 박사를 찾아올 것을 명령하고 그 임무를 위해 정부의 비밀 요원 355가 동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요릭에겐 재앙이 일어나기 전 호주에 있던 여자친구(찌질하지만 전화로 프러포즈까지 했던!)를 찾을 생각밖에 없는데...


무려 한국에 발매가 되어있습니다. 번역되서요! 제가 재미대가리 없게 줄거리를 써놔서 그렇지 한번 읽어보시면 후회는 하지 않으실겁니다.    표지에도 쓰여있네요. "(이런 작품을 위해) 신이 만화책을 만드신 거다" 양키 애들 이빨도 장난 아닙니다. 하지만 앨런 무어식의 스토리 텔링을 좋아하신다면 이 작품이 마음에 드실거라고 생각합니다.



2. Courtney Crumrin

가장 최근에 읽은 작품입니다. 사실 1권 표지를 보고 썩 안끌렸더랬죠. 하지만 이후에 소개드릴 마이스 템플러의 선례를 떠올리며 읽기 시작했더니 이게 왠일입니까! 냉소적이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꼬마 마녀의 기묘하고 약간은 으스스한 이야기에 푹 빠져서 순식간에 십여권을 주파했어요. 게다가 언뜻 어설퍼 보였던 Ted Naifeh의 그림은 사실 기본기가 굉장히 튼튼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어두운 분위기와 딱 어울립니다. 


주인공인 코트니 크럼린은 부동산 중개업자인 부모님의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큰할아버지인 알로이시우스의 집으로 이사를 옵니다. 알로이시우스는 냉정하고 세상사에 무관심해보이는 괴짜로 마을 주민들에게 악명이 자자합니다. 알로이시우스의 악명, 부자 동네에서 유일하게 가난한 집안, 게다가 코트니의 냉소적인 성격이 맞물려 코트니는 외톨이가 됩니다. 게다가 부모님은 돈 벌고 인맥을 늘리는 데에 정신이 팔려 코트니에겐 관심도 없죠. 어느 날 밤 코트니는 방 안에 인간이 아닌 기묘한 생명체의 존재를 느끼고 알로이시우스의 방으로 도망을 치고 사실 큰할아버지가 마법사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이후 코트니는 큰할아버지의 방에서 책을 훔쳐 마법을 배우고, 밤의 생명체(NIght Things)와 조우하죠.


옴니버스 형식인 이 시리즈는 현재 3권까지 나와있고, 3편의 단편이 있으며 4권이 연재중입니다. 요정과 전설 속의 괴물들의 세계와 인간 세계를 오가며 펼쳐지는 신비롭고 음울한 이야기가 정말 매력적이죠. 게다가 표현은 잘 안하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조손을 보고 있다보면 뭉클합니다. 요정과 괴물과 마법이 등장하는 환상적인 이야기, 하지만 어둡고 씁쓸한 여운이 남는 이야기를 원하시면 코트니 크럼린 시리즈가 마음에드실거에요.



3. 트랜스메트로폴리탄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은 형언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사회 비판의 메세지,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 이 작품의 작가인 워렌 엘리스는 현재 코믹스 계에서 스토리 텔링의 대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아이언 맨, 헬블레이저, X-멘 등의 메이저 작품의 스토리도 썼고, 제가 1권을 번역한 프릭엔젤과 영화로도 제작된 레드(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을 맡았던)도 이 사람 작품이죠.


주인공인 스파이더 예루살렘은 미래의 미국 언론인입니다. 과격하고 폭력적이고 특종을 위해서라면 제 몸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죠(제 몸도 아끼지 않으니 남의 몸은 어떻겠습니까 ㅎㅎ). 하지만 5년 전 돌연 은퇴하여 산속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출판사가 그에게 계약대로 책 2권을 당장 써내라고 독촉하고 스파이더는 다시 도시로 돌아옵니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워드라는 언론사의 편집국장인 밋첼, 보디가드와 쇼걸 경력이 있는 조수 섀넌, 음울하지만 정의감 넘치는 또다른 조수 옐레나의 도움을 받아 스파이더는 미래 사회의 어두운 면을 파헤칩니다. 외계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과거에 냉동 수면에 들었다가 미래에 깨어난 사람들, 공중에 떠다니는 연기 덩어리가 되기로 선택한 사람들, 과거 문명을 보존하기 위해 보호 구역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수많은 불행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


옴니버스 형식으로 미래 사회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네요. 과거(현대라고 봐야죠) 냉동 수면에 들어갔다가 미래의 한복판에서 깨어난 앨리스라는 여성의 이야기에요. 이 작품을 볼 때 퓨쳐라마를 한창 재밌게 보고 있던 터라 프라이의 이야기와 오버랩이 되더군요 ㅋㅋ 하지만 앨리스는 프라이처럼 미래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냉동 수면에서 처음 깨어났을 때 앨리스는 미래의 후손들이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교훈과 지혜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특히 과거의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죠. 매 순간 수많은 뉴스들과 자극적인 쇼와, 쇼핑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광고들이 눈앞을 지나가거든요. 앨리스는 자신이 미래라는 바다 한 가운데에 떨어진 조난자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이 에피소드를 보고는 한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이건 비단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니거든요. 우리들도 인터넷과 티비 속에서 수많은 정보들과 광고들에 파묻혀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잃어가고 있지 않나요. 


게다가 이 작품의 가장 핵심에 있는 플롯은 언론 플레이에 놀아나 잘못된 대통령을 뽑고,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사람들의 자유와 인권이 짓밟히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참고로 97년부터 02년까지 연재된 작품입니다). 자신의 비리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측근을 꼬리자르듯이 쳐내버리는 모습. 아들을 잃은 부모가 가해자들을 석방하는데 분노해 시위를 벌이자 그것을 폭력 시위로 포장해 공권력으로 유가족들과 시위대를 무참하게 진압하는 모습. 부동산 개발을 위해 가난한 지역 주민들을 무력을 동원해 강제로 퇴거시키는 모습. 정의로운 언론인(스파이더)가 대통령의 비리를 파헤치자 언론인의 기사를 검열하고 마지막에는 이사진을 압박해 해임시키도록 하는 모습.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이 작품을 읽어도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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