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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Boy♂스러운 위진남북조 시대 풍속.txt
게시물ID : history_142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별짓을다하네
추천 : 13
조회수 : 2474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4/02/25 20:58:30

2.JPG

화장하는 귀족남자 나으리. 위진남북조 시대에 그려진 그림


위진 남북조 시대 기록을 종종 보노라면 가끔 뭔가 동성애 냄새 물씬 풍기는 기록들이 더러 있습니다. 물론 이 동성애라는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존재했던 풍속(?)이긴 합니다. 위진 남북조 시대의 전 시대인 한(漢)나라 때에도 있었고요. 전한 왕조의 명군이라 불리우는 한 무제(武帝)도 여러 미소년들과 더불어 즐겼(?)다는 기록도 있고 서역정벌로도 유명한 전한시대의 명장 반초도 전한의 애제(哀帝)의 동성애에 관한 썰을 남긴 바 있어 동성애 뭐 이런건 당연히 금기시 되고 동성애자들은 죄다 모가지를 날려버리고도 남았을 엄격하고 철저한 유교국가였던 한나라에서도 그러한 풍속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한 왕조 이후 들어선 위진 남북조 시대로 들어서면 유난히 이 동성애 문화가 번지는 게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흔히 남풍(男風)이라 부르는 이 문화의 기폭점은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신하이면서 현학자였던 하안(何晏)이란 인물에게서 찾을 수 있겠는데요. 이 하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삼국지>에서도 나오는 후한의 대장군 하진의 손자였는만큼 당대의 빵빵한 명문가 출신 귀족양반이었고 동시에 당대에 유행했던 현학(玄學)의 실질적 창시자 쯤되는 인물입니다.


그럼 이 현학이 무엇인가 하니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하자면 흔히 청담사상이라 하여 노장사상에 기초한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철학을 논하는 학파로서 한마디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 하기를 즐기는 귀족들의 모임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근데 여기서 말그대로 '형이상학적' 인 이야기만 일삼다 보니 자연스레 그 풍조는 퇴폐적, 향락적이고도 방탕한 성격을 띄게 됩니다. 형이상학적인 이야기하는게 왜 퇴폐적이 되었는가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께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연예인 쫓다가 음침한 스토커 된 격이랄까요? 이해가 되시려나 모르겠습니다만..


게다가 하안 역시 뭔가 게이스러운 인물이었다는 점도 한몫 했을 겁니다. '하안은 여자 옷 입기를 즐겨했고 항시 하얀 분을 발라 얼굴을 희게 하였으며 입술은 붉게 칠했다.' 라는 기록도 그렇고 그가 남긴 시들을 보면 항상 남성미에 대한 찬송으로 도배 해놓다시피 해놓은 시들이 적잖게 눈에 띄곤 합니다. 당시 유행하던 문화풍조의 변모도 그렇고 그 문화의 창시자 격인 사람도 Ang?스러운 인물이었으니 동성애 풍속은 아주 자연스레 번져나갔던 거죠. 그래서 이 때문에 위의 중신세력의 거목인 사마의를 필두로 한 유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두고 있던 보수 사대부들이 이를 경멸하고 혐오한 나머지 쿠데타로 뒤엎어 버렸다는 해석도 존재할 정도입니다.   


이것과 관련된 자세한 얘기는 링크해둔 글에서 확인해보셔도 됩니다. -> http://todayhumor.com/?humorbest_829999
                                                                                                 http://todayhumor.com/?humorbest_817112


물론 하안 한 개인의 성향으로 시대의 풍조가 생겨났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풍속이 생겨난데에는 당시 시대의 흐름 탓이 컸었죠. 유교국가 한나라가 내부의 폐단과 각종 자연재난으로 거덜나고 쪽박차게 되면서 중국은 문자그대로 혼란기가 도래합니다. 그리고 이때가 그 유명한 <삼국지>의 배경이기도 하고요. 나라가 개판이 되니 그동안 사회의 기반이자 체제가 되던 유교는 등한시 되기 시작하고 이는 야심가이자 개혁가 조조(曺操)의 등장으로 탈유교적 흐름은 가속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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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이 조조도 방중술(그거 할때 써먹는 테크닉 기술..)을 열심히 팠다합니다.
여담이지만 적벽대전을 배경으로 한 우리나라 판소리 작품인 <적벽가>에서도 남색을 찾을 수 있는데요.
조조의 병사들이 외모가 준수한 어느 병사를 두고 그곳(똥X)를 범하는.. 집단강간을 일삼는 충공깽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걸 당한 병사가 거기가 아파 고통스러워 하자 조조가 너 왜그러냐 식으로 묻고요.


나라의 기본이념인 유교윤리의 권위는 실추했고 나라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사회는 어지럽다보니 자연스레 그동안 유교체제에 억눌려 있던 민심은 폭발합니다. 여러모로 생활에 제약을 두던 유교였기에 기다렸다는 듯 리미터 해제 됐던거죠. 그리고 인간의 3대욕구 중 하나인 성욕, 즉 성풍속도 물꼬를 틀게 되었던 겁니다.  

이러한 성향은 삼국시대 뿐만 아니라 삼국을 통일한 진(晉)나라 때는 물론이고 그 이후인 남북조 시대로도 쭉 이어집니다. 이 위진 남북조 시대는 원체 개판이고 혼란한 시기였었는데요, 특히나 그 막장테크가 절정에 달했던 남북조 시대에는 지배계층인 황제와 황족들의 성문화의 문란함은 극에 달해 근친상간은 다반사고 환관들과도 남색을 즐기는 등 한마디로 개판 오분 전인 상황이 지속됩니다. 진나라 때에는 귀족들간에 동성애 풍속이 유행(동성애는 옵션이고 기본적으로 여러모로 성문화가 문란했던 시기였습니다)하여 이를 경고하고 세태 한탄한 기록이 종종 눈에 띌 정도였으니 알만하다 하겠습니다. 


여기서 한나라 때와의 차이라면 한나라 시절에는 동성애를 즐기는 이들이 황제와 그 주변인물들에 국한되어 있었고 이를 기록할지언정 비판하거나 세태한탄하지는 않았던 반면 이 진(晉)나라 때에는 비단 황제 뿐만 아니라 위진 남북조 시대의 지배계층인 문벌귀족들이 대놓고 즐기며 보편화 되었고 또한 이를 두고 말세다 ㅉㅉ 라며 혀차는 기록들이 제법 많다랄까요. 위에 첨부해둔 사진마냥 귀족남자들도 이제는 화장하고 화사하게 꾸미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고 하니 사회의 통념이 아예 바뀌었다고 봐야할 듯 싶습니다. 아마 하나의 트렌드이자 문화로 자리잡았지 않나 합니다. 이 위진남북조 시대의 귀족남자들을 한대의 유학자들이 보았더라면 뒷목 잡고 게거품 물었을 것 같군요.


흔히 성풍속은 해당시대의 도덕적 기준의 바로미터라고들 합니다. 시대가 혼란하면 성도덕이 문란해진다는 논리이지요. (여기서 혹여나 동성애자분들의 오해를 살까봐 노파심에 말씀드리자면 남색이나 동성애 풍속을 두고 뭐라하는게 아니라 이 시대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말세였다 이겁니다.)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던 유교윤리가 힘을 잃자 생겨난 현상들 중 하나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한줄요약 : 유교의 패망으로 동성애 문화가 흥한거야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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