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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왜구와 황산전투의 의의
게시물ID : history_142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rca
추천 : 12
조회수 : 1464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4/02/25 15: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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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고려를 위협했던 전기왜구는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맨몸에 훈도시차고 칼만 휘두르는 그런 식이 아니었습니다. 위 사진에서처럼 갑옷으로 무장한 정규군에 가까운 수준이었습니다. 1350년 이후로 왜구의 공격은 단순한 노략질 수준이 아닌 고려라는 국가를 뒤흔들 정도였습니다. 공민왕 재위 23년간 왜구의 침입인 115회, 우왕 재위 14년 동안 278회나 왜구가 고려를 공격했습니다.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냐면 왕이 수원을 가려고 하는데 신하들이 왜구때문에 안 된다고 말릴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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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전기왜구의 공격은 사실상 고려 전역이었습니다. 수도인 개성까지 위협하여 왕과 신하들이 짐싸고 피난까지 가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조운체계마저 개발살 내어 수도인 개성으로 오는 조세가 막혀 관리들에게 녹봉조차 못주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그나마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개성도 이정도인데 일반 백성들은 어땠을지 상상조차 안 됩니다. 임진왜란에 가려서 그렇지 전기왜구도 임진왜란 때의 일본에 맞먹는 피해를 고려에 주고 있었습니다.  


정지 등의 장군들이 분전하긴 했지만 엄청난 횟수로 쳐들어오는 왜구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최영도 당대의 권신인 경복흥, 이인임 등에게 <정지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이렇게 지원을 안 해주면 어떡함? 니들은 도대체 뭐하는 거삼?>이라고 일갈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고려수군 또한 왜구에게 캐발리는 것이 빈번하였습니다. 


황산대첩은 이러한 전기왜구의 공격에 종지부를 찍어준 큰 업적이 있는 전투입니다. 이미 최무선 등이 화포를 이용하여 진포에서 왜구를 개발살냈지만 남은 왜구들은 한반도를 관통하여 남부지방을 자기네 집 안방마냥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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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포에서 패배한 왜구들은 금강을 따라 이동하여 경상도와 전라도까지 진군하며 당시 남부 지방을 초토화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규모도 몇천이 아닌 최대 2만 정도로 추정되는 대규모 병력이었습니다. 이 왜구들을 개발살내려고 각 지역에서 활약하던 장군들 전원이 소집될 정도였습니다. 진포전투에서 왜구가 패배했다고 하나 그 기세는 전혀 사그러들지 않아서 사근내역 전투에서는 박수경과 배언 두명의 장군이 전사하고 군사 500명이 전사하는 대패를 입을 정도였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집단을 개작살낸 전투가 바로 황산전투입니다. 얼마나 격렬한 전투였는지 이성계도 다리에 활을 맞는 부상을 입고 자신이 타던 말도 헤드샷당할 정도였습니다. 이 황산전투에서 고려가 가장 강력한 왜구집단을 개작살냄으로써 그 이후 왜구의 고려 공격은 달라집니다. 그 이전에는 한반도 전역을 유리하던 왜구가 이제는 동해안이나 깔짝되는 수준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 이전에 남해안, 서해안을 맹공격하여 조운체계마저 뒤흔든 것을 보면 이는 정말 장족의 발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진포해전을 통해 바다에서 왜구를 개발살내면서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왜구에 대한 공격을 퍼부을 만한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이는 박위의 대마도 원정으로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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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위의 사진과 비교하면 정말 왜구의 침입이 약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영은 직접 나아가서 이성계의 공을 치하했고, 이색이나 권근 등의 문신들도 시를 지어 이성계의 공을 치하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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