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핫.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갑자기 싸늘해지는 분위기. 아마 그게 내 웃음 탓인듯 하다.
"넌 지금 이게 웃겨?"
"어? 아니 바나나가 웃으면 바나나킥이라는데 난 웃겨."
"어? 그래? 그렇구나..."
서로 조용히 접시위를 지나다니던 포크질이 끝나고, 우리는 약속한듯 아무말 없이 헤어졌다.
"야, 민정이 있잖아. 웃기지 않아? 그 일 일어난지가 언젠데 웃고 다녀. 이상한거 같아."
"그지? 나 같으면, 아직도 울고 있을거 같은데 역시 돈이 최고야. 그렇게 되고 보상금이 10억씩 총 20억 나왔대지? 사실상 그거 로또 아니냐? 아니 언젠가 부모님도 돌아가실거고, 아무것도 물려줄 유산없이 부모님 돌아가실바에 차라리 뭐라도 해주고 가시는게 차라리 낫다 싶기도 하고... 한방에 인생역전. 요즘 민정이 보면서 이 언니가 생각이 요즘 엄청 많잖니. 솔까말 일반 서민이 어떻게 20억이란 돈을 만져보냐? 좀 부럽기도 하고 그래.."
*
3년전, 첫월급을 받아 빨간내복이 아니라 중국 장가계 여행패키지를 부모님께 선물해 드렸다.
첫 해외여행이라며 소풍 앞둔 초등학생처럼 들뜬 마음으로 짐을 산더미마냥 쌓아 집을 나서시던 부모님은, 비행기사고로, 유전자 감식 말고는 도저히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새카맣게 그을려 돌아오셨다.
도대체 왜!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되셨는지, 사고 몇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장이 잦아 운행하지 말았어야할 여객기를 왜 계속 누구의 지시를 받아 운행해 왔는지.
점검으로 그 날은 운행하지 말았어야 했건만 활주로를 달리다가 갑자기 폭팔해 버린 그 여객기를 누가 운행허가를 냈는지 아직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아직도 도대체 왜 그런사고가 났는지 아무것도 밝혀진게 없었다.
피해자들 중에는 항공사와 합의한 사람도 있었고. 나를 포함해서 끝까지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은 합의금을 포기하고 항공사를 상대로 지리멸렬한 소송중에 있다.
몇년째 이어지는 지리멸렬한 소송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합의하는 사람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하자, 항공사는 우리가 모두 거액에 합의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늬앙스를 풍기는 기사를 연일 뿌려대기 시작했다.
그 기사덕에, 우리는 졸지에 '가족목숨 팔아 로또 당첨금 상당의 돈을 받아챙긴 파렴치한 인간들.'이 되었고,
우리가 하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은 말들이 누군가의 유언비어에 '거액의 보상금을 받고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거머리 처럼 붙어 억지부리는 초딩 수준의 유가족들, 저 정도면 유가족도 벼슬.' 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언제든지 찾아오라며, 명함과 전화번호를 건네며 매일같이 대책위를 찾아오던 그때 그 정치인들은 합의금 기사가 연일 쏟아지기 시작하고 선거가 끝나자 마자 우리가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듯 안면몰수 해버린지 오래이고,
그래도 하소연 해볼까 이 억울한 맘 알아줄까 싶어 걸어봤던 그 번호들은 모두가 없는 번호라는 통화음만 듣고선, 이제 몇달을 유가족 임시숙소로 쓰던 이 실내체육관도 몇 일후면 비워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유가족이 벼슬이냐!"
"벼슬이냐! 벼슬이냐!"
"나라경제 파탄난다!"
"파탄난다! 파탄난다"
"곡소리도 하루이틀!"
"곡소리도 하루이틀!"
*
연일 실내 체육관 앞에선, 이제 울만큼 울지 않았냐며 그만 좀 하라는, 지겹다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이 좀 많이 죽은 그냥 단순 항공 교통사고를 가지고 언제까지 나라를 곡소리 나게 만들거냐며, 실내체육관을 출입하던 유가족들을 상대로 테러를 저질러 경찰들이 출동하는 상황들도 가끔가다 연출 되었다.
그렇게 테러가 일어나 대응이라도 할랍시면,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지고 다음날 아침에 유가족 폭행사건이랍시고 대문짝 만하게 기사가 나서 어느 누가 뭐라고 한들 그냥 가만히 있는게 상책이다 싶어 저 시위대들이 무슨짓을 하건 그냥 못본척하고 못들은척하기로 서로 암묵적인 약속을 한게 매우 오래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