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해충 퇴치에 일가견이 있다는 업체에 전화해 조르고 졸라 그 다음날로 예약을 급히 잡아놓고, 그 날밤은 바퀴벌레가 혹시나 내 침실에서도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에 그 날은 외박을 그었다지.
세스코가 다녀간 그 이후, 그래도 왠지 맘이 놓이질 않아 바퀴벌레을 사서, 이것저곳 구석구석 뿌리고 그래도 맘이 안놓여서, 연막탄까지 사서 갖다 터트렸었다지.
그날 그렇게 잡은 바퀴벌레가 종이컵 한컵 정도 되었던가. 어디 그렇게 구석구석 찡겨 있었던지 몇번을 쓸고 닦아가며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1주일후 또 어디선가 나타난 바퀴벌레. 혹시나 싶어 음식물쓰레기도 점검해보고 바퀴벌레가 살만한 곳을 다 뒤져도 보고, 도저히 답 안나오는 저 지긋지긋한 것들.
벌써 이상황이 6개월째다. 매주 방문해 점검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어떻게 된게 수가 줄어야할것들이 왜 날이 가면 갈수록 이렇게나 점점 수가 늘어나는거냐고.
진짜 미치고 팔짝뛰고 환장하고 두 다리 쭉 뻗고 울고싶은 이 와중에, 어디선가 풍겨오는 시큼하고, 양파가 썩는듯한 고약한 냄새와 한겨울 무슨 일일까 싶은 파리떼까지...
혹시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 그런건가 싶어서, 온 집안을 이 잡듯 뒤집고 찾아봐도 썩어갈수 있는 그 무언가는 커녕, 냉장고엔 생수 몇개와 맥주 몇캔 말고 생명체가 먹을거라곤 아무것도 없는데 도대체 저것들은 어디서 나타나 날 이렇게 괴롭게 하는건지...
"저기요, 아저씨. 105동 1352호인데요. 진짜 온 집안에 냄새도 너무 심하고 계속 바퀴벌레랑 파리가 너무 들끓어서요. 네, 진짜 이게 정말 장난아니라구요. 아진짜 집에 먹을거라곤 생수 몇개 맥주 몇캔 뿐인데 뭘 얼마나 더 열심히 찾아야하는 거냐구요. 정말. 진짜 못 믿겠으면 와보셔서 확인을 해 보시라구요. 왜 올라와 보지도 않고..."
매일 같이 관리사무실에 전화해 대책을 내놓으라 요구한지도 벌써 3주째다. 올라와 보지도 않고, 쓰레기 확인 해보라는 저 말을 지금 40번도 넘게 들은거 같다. 그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결판을 내야할거 같다.
*
"안녕하세요. 늦은밤 죄송해요. 1352호인데요. 뭐 하나 여쭤볼게 있어서 왔어요."
문이 열리자마자, 시큼한 양파 썩는냄새가 우리집보다 좀 더 강하게 풍겨나왔다.
"저 1352호인데요. 냄새랑 파리.. 그리고 바퀴벌레..."
"아가씨네 집도 그래요?"
1451호를 제일 먼저 찾았다. 늙은 노부부가 사는 집은 우리보다 이 거지같은 손님들께 좀더 일찍 시달려온듯 했다.
한겨울에도 천정엔 파리끈끈이가 붙어 대롱거리고 있고, 방금전에 끈끈이에 내려앉은 듯한 그 파리는 연신 날개소리를 내며 자신의 생존을 확인 시킨다.
에프킬러와 양파썩는 냄새가 섞여, 꽤나 그 집의 냄새가 역하고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죄송해요. 늦은밤 지금 이게 하... 너무 못견디겠어서 찾아온 거에요. 정말 죄송해요."
"그래요. 아가씨. 우리집은 아니야, 우리도, 다음달에 여길 정리하고 실버타운 입주할거라 한달만 더 참자 하고 견디고 있어."
하얀백발의 노부부는, 밤늦게 찾아온 손님이 전혀 귀찮지 않다는듯, 따듯하게 배웅까지 해 주신다.
*
"안녕하세요. 1352호인데요!"
"엄마가 모르는 쨔람 하고 말하지 말랬져영!"
"그래, 엄마 늦게 들어오시니?"
"엄마가 그런거 알려주지 말랬져영!"
"엄마한테 1352호 이모가, 냄새때문에 찾아왔다고 전해주렴."
아랫층은, 부부가 맞벌이 부부인가보지. 겨우 대여섯살 짜리 아이가 어찌나 매정하게 인터폰을 탁! 하고 끊어버리던지. 포기하고 올라와, 내 옆집으로 향했다.
이 집이 원래, 할아버지 혼자 사시는 댁이라고 하셨나. 미국에 사는 아들네 집 가신다고 이사할때쯔음 해서 손주선물 사다 나르는거 까진 봤는데. 그 이후로 나 살기도 바빠 그 할아버지 모습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지.
이상하게 1351호쪽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이상하게 그 양파 썩는듯한 냄새가 점점 강해지는거 같았다.
"저기요! 할아버지! 1352호인데요!"
"저기요!"
몇차례 인터폰을 누르고, 혹시나 몰라 현관문을 주먹으로 쿵쿵 두들겨봐도, 아무 소식이 없다. 혹시나 몰라 신문 투입구에 손을 넣어 휘휘 젓어보는 순간, 훅! 하고 코를 찌를 듯이 풍기는 그 양파 썩는 냄새. 냄새의 원인을 드.디.어. 찾았다.
"정말 대책없는 영감탱이로구만! 이게 정말 무슨 민폐야. 짜증나게, 진짜 미친새끼 아니야? 도대체 몇집이 피해를 봐야하는 거냐고."
짜증이 있는대로 난 나는 내 집으로 돌아와 다시 인터폰을 들었다.
"냄새 나는데 찾았다니까요. 1351호요. 아니 못믿겠으면 오셔서 맡아보면 될거 아니냐고요. 아 그럴거면 관리 사무소가 있을 이유가 뭐에요. 당장 안오면, 구청 시청에다 신고하고 민원 넣을거니까 당장 오세요."
*
망치로 사정없이 도어락을 내려치고 있는 열쇠공과, 그 뒤를 지키고 있는 나와 관리사무소장과 경찰.
그렇게 몇번의 감정싸움 이후, 귀찮다는듯 저 꼴같잖은 관리사무소에서 올라와 신문투입구쪽에 코를 대 냄새를 맡아보더니, 경찰을 대동해 문을 따고 있다.
쾅쾅 망치로 무언가를 때려부시는 소리가 몇번이 더 나고, 철커덩 하며 쇠뭉치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도어락이 붙어있다 떨어진 구멍으로 그 새카만 그것이 한마리 볼볼 기어나와 아파트 복도를 기어다닌다.
문이 열리는 순간.
"우웩!"
관리소장이란 놈이 입을 막고 계단을 급히 내려가는가 하더니 구석에 철퍽철퍽 소리를 내며 그날 먹은 저녁을 쏟아내고 있다.
어디 무협소설 판타지 소설에서나 읽어봤던 '봉인에서 풀려난' 이라는 표현이 이럴때 쓰는 것이었을까.
문이 열리자 마자 새카만 그것들이 봉인에서 풀린듯 와르르 복도로 쏟아지기 시작했고, 거기다가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악취는, 복도뿐 아니라 아파트 동 전체에 물에 물감 풀듯 훅 하니 퍼졌다.
전기가 끊겨버려, 불이 들어오지 않는 그 집을 경찰 하나가 손전등을 켜고 조심스레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으로 뛰어 나왔다.
"사람이 죽은거 같은데요. 119 부르세요."
*
급히 엠뷸런스가 와서, 그 한때는 생명체였을지도 모르는 그것을 새카만 어딘가에 싸들고 갔다.
봉인되어 있던 마굴의 입구를 열었다는 표현이 맞는걸까. 거기서 풀려나온 그 반갑지 않은 손님들과 오늘도 난 전투중이다.
마굴의 중심을 타격한 덕인지, 반갑지 않은 그 손님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가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있는 중이다.
그 할아버지의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만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던지, 미국에서 급히 들어와 얼렁뚱땅 어영부영 화장으로 대충 정리하고, 그 집을 복덕방에 내놨다던가.
어제, 그 집을 보러 신혼 부부인듯한 한쌍의 남녀가 방문했다. 맘에 든듯, 아파트 주민 카페에 가입까지 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거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