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12월이 지나기 전에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그는 평소부터 주변사람들에게 문학을 사랑한다고 널리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러니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것쯤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A는 속이 좁고 허영심이 강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여겨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무리하게 너그럽고 털털한 척했다. 그러나 그릇이 작은 사람이 큰 사람 흉내를 내봤자 한계가 있다. 그를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은 모두 그의 그런 면모를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문학을 좋아한다는 그의 발언은 남의 눈치를 살펴서 나왔을 뿐 진심이 아니었다. 그는 문장을 음미하고 운율에 몸을 떤 적이 없었다. 상징과 비유에 경외감을 느끼거나 이야기의 흐름에 몰입한 적도 거의 없었다. 혼자서 고상한 문예의 세계에 몸을 담글라치면 10분도 지나지 않아 눈꺼풀의 무게조차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꾸 허세를 부렸다.
이번 신춘문예 응모는 그런 허세의 일환이었다. 그는 문학 애호가를 어설프게 연기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안에서 작가 지망생의 탈을 쓰기로 했다. 그래서 단편소설을 하나 써서 응모했으며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자신의 성공적인 등단을 주제로 한 꿈을 아흐레 동안 잇달아 꾸었다. 주변사람들에게는 한 번 도전해봤으며 십중팔구 떨어질 테니 기대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겉으로는 겸손한 척했다. 떨어지더라도 비웃음을 받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속으로는 기대를 그만두지 않았으며 당선되면 어떻게 주변에 자랑하고 다닐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올 때마다 자신의 영광스러운 성공 소식을 알리는 것인가 싶어 재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모두 광고전화였다. 전화의 정체를 알아채자마자 전화를 끊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런 촌극의 반복 끝에 마침내 전환점이 찾아왔다. 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A는 조금씩 깎여나갔으나 아직까지는 덩어리로 남은 기대감을 품은 채로 전화를 받았다. 그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XX일보에서 전화 드렸습니다. 우리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문예 공모전에 작품을 보낸 A 선생님 전화가 맞습니까?”
A는 환희의 고함을 지를 뻔했으나 삼켰다. 탈락자에게 일부러 전화를 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A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의 작품이 전화 상대에게 인상 깊었기에 전화를 한 것이리라. A는 조심스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습니까? 제 작품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나쁜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괜히 그렇게 물었다. 상대가 곧바로 맞받았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소설에는 장점이 있었고, 그것이 저를 사로잡았기 때문에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제가 당선되었습니까?”
“……아, 그렇게 생각하기 쉽겠습니다. 오해를 방지해야겠군요. 문예 공모전의 결과로만 보면 탈락입니다. 그러나 저는 선생님의 작품을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안에서 상당한 재능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A 선생님에게 나쁜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상황은 A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재능’이라는 말이 그의 과시욕을 만족시키는 부분이 있었다. A가 짐짓 태연한 척하며 대응했다.
“그렇군요. 당선되지 못했다니 아쉬운 일입니다. 그래도 좋은 평가에 감사드립니다. 어떤 제안인지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힘닿는 대로 돕겠습니다.”
“이렇게 전화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중요한 이야기라면 응당 얼굴을 맞대고 해야겠지요. 그래야 더욱 서로의 생각을 잘 전할 수 있을 겁니다. 시간이 있는 날을 말씀해주십시오.”
그렇게 A와 전화 상대는 만날 약속을 잡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날까지 아껴두기로 하고 통화를 그만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성함을 아직 모르는군요. 선생님이 신문사 관계자라는 것밖에 아무것도 모릅니다. 괜찮다면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A가 전화를 끊기에 앞서서 물었다. 전화 상대가 탄성을 흘렸다.
“이런! 자기소개를 먼저 하는 게 예의인데 실수했습니다. 저는 XX일보에서 기자로 뛰고 있는 B라고 합니다.”
**
정해진 날에 약속장소인 어느 카페에서 A는 B를 처음 보았다.
B는 멀끔한 양복을 입은 사십대 중반의 사내였다. 그 몸에서 풍기는 품격은 A가 봐도 예사롭지 않았다. 전화로는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단순한 기자가 아니고 여러 기자를 통솔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로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전화로 대화했던 A입니다.”
A가 맞은편에 앉은 뒤에 인사했다. B가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웃었다.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비웃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A는 위축되어 쉽게 불평을 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빨리 본론으로 가는 쪽이 나았다. A가 재촉했다.
“드디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군요. 그 동안 마음에 걸려서 혼쭐이 났습니다. 제게 어떤 제안을 하려고 하십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저희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해보시지 않겠습니까?”
A는 한동안 눈을 끔뻑였다. 마찬가지로 입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곧 정신을 차리고 머릿속을 채우는 의문을 입에 담았다.
“저는 신춘문예에 소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 기자가 되라는 제안을 받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소설이 지닌 문학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기자라니요?”
“신문사에서 개최하기는 하지만 심사는 현역 문학인들이 합니다. 그 사람들은 문학인의 눈으로 선생님의 소설을 탈락시켰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자입니다. 제가 담당하는 분야는 문학과 거리가 상당히 멉니다. 이 작품을 알게 된 것도 우연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자의 눈으로 봐서 이 작품에 합격점을 주고 싶었습니다.”
B는 말을 마치고 가방에서 종이뭉치를 꺼냈다. 종이에 인쇄된 글귀를 보면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A가 쓴 소설을 인쇄한 것이었다. B가 탁자 위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A가 항변했다.
“저는 소설을 썼을 뿐이지 신문기사를 쓴 게 아닙니다.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기자님이 장난을 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럽습니다.”
“오해를 걷어내려면 자세한 설명을 해야겠군요.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마주앉을 계기를 만들어낸 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소설은 흔히 말하는 1인칭 시점 소설이더군요. 서술자가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고 평가합니다.”
“말씀대로입니다. 특히 명망 높은 대학교수가 주된 관찰대상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인품이 훌륭하여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걸 이야기합니다.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을 고발하는 것이 작품의 줄거리입니다.”
자기 작품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보니 A는 조금 들떴고 말이 빨라졌다. B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탁자 위의 종이에 한쪽 손 집게손가락을 가져다댔다.
“글을 읽으면 백 명 가운데 아흔 명 남짓한 사람들이 그 대학교수를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잘된 일이로군요. 사람들이 제 의도대로 읽는 셈이니까요. 아무리 독자의 해석이 중요하다고 해도 작가에게는 원래 의도가 있습니다. 그것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A가 흐뭇해했다. 그런데 B가 고개를 살짝 내밀고 마치 소중한 비밀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처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런데 저는 나머지 열 사람에 들어갑니다.”
“네? 제 의도대로 읽지 않으셨다는 뜻입니까? 그러니까, 그 교수에 대해 달리 생각하셨다는 말씀이지요?”
“그 말씀대로입니다.”
“아까 전에는 제 글을 칭찬하시더니 이번에는 딴소리를 하시는군요.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저는 기자로서 저희 신문을 읽을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을 유지해야 합니다. 문학 평론가는 대다수 독자들이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을 헤집습니다. 저도 비슷합니다. 기자의 시각을 유지했기에 선생님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훌륭한 기자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이렇게 있는 것입니다.”
“저는 문학 애호가입니다. 그래서 소설을 썼고 소설로 인정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자가 되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연히 얼떨떨하고 왜 일이 이렇게 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저는 소설을 하나 썼을 뿐입니다. 그것은 신문기사와는 다른 형식의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으로 기자의 소질을 알 수 있습니까?”
“신문 독자들은 가끔씩 기자들에게 소설을 잘 쓴다는 찬사를 쏟아냅니다.”
“그게 찬사였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거짓말을 잘 한다는 야유였는데 말이지요. 기자가 그런 소리를 듣는다는 건 어지간히 신뢰를 못 받는다는 뜻 아닙니까?”
A가 비아냥거렸다. B가 쓴웃음을 지은 뒤에 품을 뒤적였다.
“그런 셈이지요. 음, 한 대 피우고 싶군요. 여기서 담배를 좀 해도 되겠습니까? 여기는 일단 흡연석입니다만, 선생님이 싫다고 하시면 제가 좀 참겠습니다.”
이야기가 어긋났다. A는 이런 식으로 논점을 흐리는 B가 얄미웠다. 그 틈에 침묵을 허락으로 받아들인 B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슬쩍 보니 A가 선호하는 것과는 다른 상표였다.
“맛있게 피우는 와중에 죄송하지만 하던 얘기를 계속하지요. 다시 묻겠습니다. 신문기사를 두고 소설이라고 부르는 건 지독한 모욕이 아닙니까?”
A가 물었다. 입을 열자 들어오는 담배연기가 독했다. 흡연자인 A가 기침을 할 뻔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참아냈다. B가 도발하듯이 입으로 연기를 훅 내뱉었다. 이번에는 A가 참지 못하고 쿨룩거리고 말았다. B가 말했다.
“얼핏 들으면 지독한 모욕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은 꾸며낸 이야기에 열광합니다. 소설, 만화, 영화. 대부분이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신문기사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리려고 써지는 글이지요. 방향성이 너무 다른 거 같습니다. 기자는 취재를 바탕으로 그런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견해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기자는 진실을 전하는 게 아니라 진실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되도록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는 자극적인 진실을 만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요.”
“거참 이상한 소리를 잔뜩 듣게 되는군요. 제 상식이 잘못되었습니까? 기자가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면 큰일 난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솔직한 이야기를 하지요. 기자에게, 아니, 그 누구에게든 사명감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돈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당연히 기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시대가 시대입니다. 입바른 소리 따위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말을 마치고 다시 담배를 입에 문 B가 숨을 확 들이켜자 담배의 길이는 순식간에 짧아졌다. B는 재떨이에 담뱃재를 툭툭 털어냈다. A는 언제든지 자신이 그 담뱃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B는 그 이후로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A를 시험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니면 나름대로 작가 대접을 받고 싶은 A의 허세를 배려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여기에서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안 되었다. A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좀 정리하겠습니다. 기자님은 신문기사는 그저 진실을 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극적인 진실을 구성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돈벌이가 된다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저는 기자님이 바라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아주 뛰어난 자질이지요.”
B의 칭판에도 A는 선뜻 기뻐할 수 없었다. A가 아무리 얄팍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마음속에는 어느 정도의 도덕관념을 품고 있었다.
“제게 그런 능력이 있다니 정말 모르겠습니다. 저는 가상의 이야기를 꾸며내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건 웬만한 사람들은 다 하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이 소설에 대한 자세한 평가를 들려주지 않았군요.”
B의 눈이 다시 탁자 위에 놓은 소설 인쇄물을 보았다. B는 그것을 들어 한 번씩 훑어보더니 이어서 말했다.
“이 글을 읽으며 저는 교수가 작가의 주변 인물을 반영해서 나온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서술자는 선생님과 거의 동일한 자의식을 지닌 존재라고 봐도 되겠지요?”
“맞습니다.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튀어나오지는 않습니다. 경험과 상상력을 결합하여 이야기를 짓는 것이지요.”
“역시 제 짐작대로였군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 글을 읽는 사람의 대다수는 교수를 나쁜 사람으로 여기고 혐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더 깊은 곳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교수에게, 아니, 그 너머에 있는 실존인물에게 예사롭지 않은 악의를 품고 있습니다.”
확실히 그 소설은 A가 경멸하는 어떤 인물에 대한 감정을 담은 것이었다. 물론 들키지 않기 위해 직업과 나이 등을 현실과 바꿔 별개의 인물처럼 꾸몄으나 그 근본에는 그 사람이 있었다. A가 둘러댔다.
“확실히 제가 평소부터 좋지 않게 생각하던 인물상을 비판하기 위해 그 글을 쓰기는 했습니다. 악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등장인물을 깎아내렸다는 것만으로…….”
“저는 이 소설을 현실에서 일어난 일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서술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외하고, 제3자의 눈으로도 볼 수 있는 사건들만 살피니 교수를 나쁘게 평가할 부분은 없었습니다. 서술자의 눈으로 볼 때에만 그것이 가식으로 여겨지는 것뿐입니다.”
“글을 제대로 읽은 게 맞습니까? 어떻게 그런 해석을 내놓을 수 있습니까? 저는 그놈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제대로 설명했습니다.”
“사람을 칭찬함으로써 오히려 모멸감을 준다든가, 뒤에서 비웃는다든가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행동에 대한 악의적 해석일 뿐입니다.”
“악의적인 해석이라고요? 그러면 제가 그놈을 부당하게 비난했다는 뜻입니까? 그놈이 잘못한 게 없는데 저 혼자 나쁘게 받아들였다는 거로군요. 이거 참 불쾌합니다. 그거야말로 저에 대한 악의적 해석이 아닙니까?”
“저는 그걸 판단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선생님이 그 사람의 성공적인 인생에 열등감을 품고 깎아내렸든 아니든 아무래도 좋습니다.”
B가 이죽거렸다. A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많은 것을 이룬 그 사람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세월을 버린 A의 차이는 컸다. 그 열등감 때문에 그를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B의 말 때문에 비로소 인지했다. 그 어떤 항변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A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B는 그 틈에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의 서술 방식입니다. 서술자의 표현 방식은 담담합니다. 마치 아무 감정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그런 까닭에 독자들은 서술자의 말을 믿게 되기 쉽습니다. 지극하게 주관적인 의견이 객관적인 의견인 듯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소질이며 기자로서 활약할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결국 제가 사람을 잘 깎아내리는 놈이라는 말이로군요. 그래서 기자가 되라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기자가 사람을 모함하는 직업이었습니까?”
“대중은 누군가 날아오르는 것보다 땅에 떨어지는 소식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저질스러운 자들이 넘치는 법입니다.”
“독자들에게 할 말이 아닌 거 같군요.”
“아까 솔직한 이야기를 한다고 했을 텐데요.”
“알겠습니다. 이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가 됩니다. 제가 이런 웃기는 꼴이 될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소설을 써서 문학가의 길을 걸으려 했더니 남을 모함하는 솜씨를 높이 평가받아서 기자가 되라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미련이 남아서 묻습니다. 소설로서 제 글이 어땠습니까?”
“제가 문학에 조예가 깊지는 않습니다만, 그리 좋게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인물 관찰과 비판에 비중을 지나치게 두다 보니 사건을 표현하는 것이 부실해졌습니다. 그래서 탈락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설로서 높게 볼 수 없다고…….”
A가 중얼거렸다. 문학으로 A의 허영심을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진심으로 문학을 사랑했던 것은 아닌 만큼 그렇게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자가 되라는 제안을 좋은 기회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 생각이 질문으로 나왔다.
“기자가 되면 저에게 무슨 이득이 있지요?”
A의 심경 변화를 B는 놓치지 않았다. 빙긋 웃으며 A가 현재로서는 벌 수 없는 수익을 제시했다. 이득을 운운하는 것은 A의 마음이 기울고 있다는 증거였다. 쐐기를 박기 위해서 B가 덧붙였다.
“원래 신입 기자에게는 이 정도의 대우를 해주지는 않습니다. 선생님에게만 특별히 이렇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겁니다.”
A는 거의 넘어왔다.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완전히 넘어오는 상태였다. 그러나 되도록 신중함을 발휘하기로 하고 질문했다.
“제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어떤 기사를 써야 합니까? 저는 언론 공부를 한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바로 업무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헛걱정입니다. 선생님이라면 곧바로 최고의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한 인물에 대해서 소설 속의 교수를 다루듯이 표현하는 글을 쓰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주십시오.”
“확실히, 그걸 시키려고 저에게 이런 제안을 했겠지요. 소설을 쓰는 것처럼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제가 누구의 기사를 쓰면 되겠습니까?”
“대통령입니다.”
B가 목소리를 낮춰서 대답했다. 혹시나 남들 귀에 들어갈까 싶어 조심하는 듯했다. 확실히 대형 언론사의 기자가 대놓고 대통령을 모함하라고 지시를 주고받는 것은 들켜도 될 일이 아니었다. A도 덩달아 목소리를 낮추어 되물었다.
“예? 대통령이라니, 그 대통령을 말하는 겁니까? 이번에 작년에 당선된…….”
“그렇습니다. 그 대통령을 이 소설 속의 교수처럼 악의적으로 그려내면 됩니다. 국민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무능한 인물로 그려내기만 하면 성공입니다.”
“왜 ‘우리’ 신문사에서 대통령을 일부러 깎아내려야 합니까?”
A는 벌써부터 XX일보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놀라움과는 별개로 제안은 수락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B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설명했다.
“신문사 입장에서는 손발이 맞는 사람이 그런 자리에 올라야 편한데 이번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적인 성향이 우리 신문의 방향과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꽤나 골치를 썩이고 있습니다. 구독자들 또한 그 사람을 싫어합니다. 빨리 추락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들을 만족시키는 기사를 쓸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쪽의 지지율을 떨어뜨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척을 졌기 때문에 저쪽에 힘이 실리면 우리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그 역할을 떠맡게 되는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아까 들은 바에 따르면 백 사람 중에 열 사람은 제 글을 그대로 믿지 않을 텐데요. 그들이 이게 아니라고 떠들면 제가 글 쓴 일이 다 헛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들에 대해서도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기사를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방해되는 자들을 모두 악당으로 몰아가면 됩니다. 그런 식으로 글을 쓰다 보면 사람들의 주목을 모으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관심으로 돈을 벌어 우리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제 눈앞에 있는 사람이야말로 악당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알겠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해볼 만하지요. 제안을 받아들여서 기자가 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A는 대통령에 대해서 큰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생각을 지니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A를 가치 있는 존재로 바꿔줄 기회가 왔다. 지금껏 한 번도 몽상을 따라잡은 적이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 간극이 좁아졌다. 허영심을 처음으로 만족시킬 수 있다. 어찌 쉽게 놓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소설가 지망생은 기자가 되었다. 두 사람의 기자가 서로 덕담을 나누었다.
한겨울의 추위는 더욱 날을 가는 가운데 하늘에는 기레기 한 마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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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문빠’스럽게 글을 쓴 게 아닌지 걱정됨. 근데 솔직히 문씨 대통령은 상관 없이 기러ㅣ기를 까고 싶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