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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보는 에도막부의 군사조직과 경비조직
게시물ID : history_142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rca
추천 : 7
조회수 : 162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2/24 00:05:39
1. 군사조직 


쇼군을 알현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1만 석 이하의 무사를 일컫는 하타모토 그리고 쇼군 직속의 가신인 고케닌들은 쇼군의 명이 떨어지면 각자 부하들을 거느리고 출진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1722년의 자료에 의하면 하타모토가 5천 2백 여명 그리고 고케닌이 1만 7천 3백여명, 합계 2만 2천 5백 여명이었습니다. 하타모토들은 각자의 고쿠다카에 따라 동원 병력의 차이가 있었는데 1633년 기준으로 5백 석의 하타모토는 13명의 부하를 그리고 1천 석의 하타모토는 23명의 부하를 각각 거느리고 출진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비상시 쇼군은 직속 병력으로 10만 이상 거기에 자신에 충성을 다하는 신판다이묘와 후다이다이묘들의 병력까지 동원할 수 있었으므로 그 규모는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비상시가 아닌 평시에 쇼군을 호위하는 부대로는 오반(大番), 고쇼구미(小姓組), 쇼인반(書院番), 신반(新番), 고주닌구미(小十人組) 등 고반카타(五番方)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쇼군의 친위군이었습니다.

오반은 하타모토의 선봉으로 12구미(組)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한 구미에는 10기의 요리키(與力)와 20명의 도신(同心)이 있었습니다. 도신은 요리키 휘하의 경찰업무 등을 맡는 하급관리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이들 요리키와 도신들은 저번에도 언급한 에도성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에도마치부교에도 존재하여 에도의 치안을 담당하였습니다. 도신까지는 정식 관료였지만 도신이 고용하는 민간인 일명 오캇피키(岡っ引), 메아카시(目明し)라 불리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고쇼구미는 에도성의 혼마루(本丸)를 경비하는 부대로 6구미로 편성되어 있었고, 한 구미에는 50명이 배치되었습니다. 이들은 와카토시요리의 지휘를 받는 부대였습니다. 

쇼인반은 고쇼구미와 함께 양번(兩番)이라 일컬어졌으며, 그 구성은 고쇼구미와 동일하였습니다. 이들은 쇼군의 거성을 수비하고, 쇼군의 행차 시에는 행렬을 경비하고 또 매년 교대로 슨푸성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신반은 쇼군의 행차시에 선발대의 역할을 수행하는 부대였는데 이들은 와카토시요리의 지휘를 받으며 6구미 총 132명으루 구성되었습니다. 

고주닌구미는 쇼군이 행차할 때 호위를 담당하였고 이들 역시 와카토시요리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7구미 총 150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 반카타는 조번, 석번, 침번 이렇게 매일 3교대 근무를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조번은 아침 8시경에 출근하여 전날 밤 근무를 하였던 침번과 교대를 하였고, 석번은 오전 10시에 출근하여 조번과 교대하여 근무한 후에 오후 4시에 출근하는 침번과 교대하였습니다. 



2. 에도의 경비제도 


에도성에는 성내의 여러 문을 제외하고 외곽에 36개의 출입문을 설치하였습니다. 외곽의 각 성문에는 번소(番所)를 두고 무사들이 수비하게 하였습니다. 외곽 성문의 수비는 막부 직속의 고케닌들이 담당하는 곳도 있었고 각 다이묘들이 분담하여 담당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배치되는 인원은 시대에 따라서 그리고 장소에 따라서 달랐지만, 1712년의 규정에 의하면 오테문(大手門)의 평상시에 기마무사를 포함한 사무라이 25명, 아시가루 100명, 주겐(中間) 50명 등 총 175명이 부대를 편성하여 경비에 임하였습니다. 조회가 있는 날에는 일반 사무라이인 가치가 3~4명, 아시가루 30~40명이 추가로 배치되었습니다. 다른 문의 경비는 규모에 따라서 부대가 편성되고 인원이 배치되었습니다. 

경비대는 10일 교대로 근무하였고, 경비의 임무가 부여된 다이묘는 3년 동안 그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경비대의 임무는 성문의 출입을 감시하고, 이변에 대비하는 것을 본래의 업무로 하였습니다. 성문의 개폐, 성문 내의 청소, 파손된 부분이 있을 경우에 수리를 의뢰하는 등 성문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였습니다. 이변이 발생하였을 경우에는 담당하는 성문을 지키면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였습니다. 

성문의 묘시(卯時 : 오전 5시 ~ 7시)에 열고, 유시(酉時 : 오후 5시 ~ 7시)에 닫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쇼군의 측근은 야간이라도 마음대로 성문을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책을 맡고 있는 사무라이라 할 지라도 사사로이 번소에 출입하는 것은 엄금되었습니다. 공적인 일이라고 해도 물건을 빌리러 성문에 접근하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근무자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화재였습니다. 화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훈계가 수시로 하달되었습니다. 근무자는 양식이나 복용할 약, 그리고 식수 외에는 지참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근무자는 항상 성벽이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를 하였습니다. 만약에 성벽이나 시설이 훼손된 것을 발견했을 경우에는 지체 없이 지휘계통을 통하여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지붕이나 성벽의 틈새에 기생하는 잡초는 즉시 제거하도록 하였습니다.

평상시에도 경비가 삼엄하였지만 그래도 통행인의 편의는 우선적으로 고려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불시에 쇼군이 성문 근처에 행차하여도 통행인의 출입을 막지는 않았습니다. 화재와 같은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여도 통행인의 출입을 막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순례자와 거지의 출입은 금지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을 탄 사람은 말에서 내린 다음에야 출입이 허용되었습니다. 마차의 출입은 금지되었습니다. 

성문 근처에서 겐카(喧嘩), 즉 싸움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신속하게 당사자를 체포하고, 즉시 메쓰케에게 보고하여 지휘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체포된 사람이 상처를 입었을 경우에는 즉석에서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해자에 사람이 빠졌을 경우에는 즉시 구조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 출처 : 일본무사도,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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