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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게시물ID : sisa_10118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할마마마
추천 : 16
조회수 : 82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1/12 13: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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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20180109 화

영화관의 폐쇄된 공간과 심장을 쿵쿵 울려대는 음향이 두려워서 웬만하면 영화관을 찾지 않는/못하는 할망이 웬일인지 30년이 지난 2017년 12월 27일에 개봉한 <1987>만은 영화관에서 봐야만 할 것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벼르고 벼르다 평일 오후에 찾은 <1987>상영관은 객석이 드문드문 비었고 생각 외로 젊은 커플들이 많다.
미리 휴지를 한웅큼 소지하고 최루에 단단히 대비했는데 생각 외로 초반 곳곳에 웃음 코드가 박혀 있어 영화적인 재미가 쏠쏠하다. 배우들은 완존 역할에 몰입해서 등장분량과 무관하게 혼신을 다해 열연, 2시간 7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내내 잡념이 끼어들 틈 없이 관객을 화면으로 빨아들였다.

1987년 전두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그 해는 초입부터 유난히 살벌 엄혹한 공안사건이 많았다. 내 주변에서도 술렁술렁 심상찮은 공기가 감돌았다.

우선 학생운동가 출신으로 노동운동을 하려고 노동자가 되었다가 서노련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노동현장에서 쫓겨나 설대근처에서 서점(대학서점)을 하며 숨고르기를 하고 있던 70학번 선배가 수배중인 노동자 은신처를 마련하는데 협조를 요청해왔다.

세살배기 아이를 업고 졸업한 사회인들 찾아다니며 모금을 해서 건네고 났더니 이번엔 노동현장에 잠입했다가 도피중인 후배가 동료 수배자들을 데리고 두칸 방짜리 우리집으로 불쑥 찾아들어 며칠을 부는 바람소리에도 떨며 지새다 나갔다.

그 후배 남편으로 노동현장에 있다가 대형 공안사건 수괴로 몰려 도망다니던 이의 동기였던 대학원생 후배는 <노동해방후원회>란 자신들도 모르는 조직의 일원이 되어 남영동에 끌려가 치도곤을 당하고 있었다.

영화는 바로 그 87년에 전두환이 정권을 연장하려는 의도에서 갖가지 공안사건을 엮어내던 과정에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군 (여진구 분)이 물고문 끝에 욕조턱에 목이 눌려 질식사한 사건에서 출발한다.

남영동서 차로 5분거리에 있던 중앙대병원 의사 오연상씨가 불려갔으나 바닥엔 물이 흥건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팬티차림의 박군이 이미 절명해 있었다.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 은폐 조작하려는 박처원 (김윤석 분, 박종철의 부산 혜광고 2년 후배. 조국은 박군의 2년 선배. 함께 <1987>에 출연한 오달수는 박군의 4년 후배. 김배우, 칼이쑤마 짱!)치안감 (5과. 전두환정권에서 아니 이전 정권에서도..일제경찰 노덕술 밑에서 배워 고문전문가들을 배출해 내고 그들의 대부역을 하면서 독재정권유지에 기여한, 평남 용강 지주가문출신 월남민 대공경찰)과 강민창 치안본부장(우현 분. 배우 우현은 연대 이한열군 사망 항의집회에서 우상호 총학생회장, 안내상 등과 함께 앞줄에서 시위를 주도한 연대 총학 사회부장)은 "탁 하고 쳤더니 억 하고 죽었다"는 심장쇼크사를 밀어붙이려 하나...해도 너무 하단 생각을 이심전심으로 하게 된 검사, 기자, 학생, 재야 단체, 종교인 등등에 의해 저지된다.

공안검사 최환(하정우 분)은 박군 시신화장을 강요하는데 반발, 부검을 강행케 하고. 부검의 국과수 황적준박사는 심장사 부검소견 강요를 거부하고 물고문치사 소견을 내고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윤상삼=이희준 분, 사회부장=고창석 분 등) 기자들은 보도지침을 무시하고 진상을 보도하고. 

영등포교도소 교도관 한재동과 전 교도관 전병용 (한병용이란 이름으로 유해진이 출연)은 86년의 5-3사건으로 복역중이던 기자 이부영을 도와 고문치사 축소은폐 사실을 민주화의 대부 재야인사로 도피 중이던 김정남 (설경구 분)에게 전달, 시민의 분노를 극대화시키는데 일조한다. 

그리하여 전두환의 정권연장, 호헌을 위해 김영삼, 김대중과 연이 닿는 김정남을 북한 지령 받는 간첩단 수괴로 조작해 야권지도자와 재야를 일망타진하려던 박처원의 기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한재동과 마찬가지로 이부영을 도운 인물로 나오는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 안유에 대해서는 5년 뒤인 92년에 구미유학생 간첩단사건에 엮여 대구교도소에서 복역한 강용주씨 증언에 의하면 전향을 강요하면서 교도소내 고문을 자행했다는 고발성 증언이 나와서 팩트체크 필요성이 남아 있다..

어쨌든 전두환이 대통령 직선이 아니라 간선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호헌선언 (4.13)을 하지만 교도소로부터의 통신을 통해 고문축소은폐 사실을 알게 된 김정남이 함세웅신부님께 알리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김승훈신부님은 87년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5-18  7주기 추모미사에서 이를 폭로한다.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타오르고,  개헌쟁취 국민운동본부와 학생들이 '종철이를 살려내라'는 구호와 함께 호헌철폐 시위를 맹렬하게 전개해가던  가운데 6.10국민운동본부의 대회 하루 전 각 대학에서 벌인 출정식에서 연대 만화사랑 동아리의 이한열 군 (2017년 37세였던 강동원 분. 22세 대학생으로 아주 잘 어울림에 망연! 감탄!)이 최루탄 직격탄에 맞아 뇌사상태로 세브란스에 실려간다.

6.10 시위는 전례 없는 시민항쟁으로 비화, 넥타이부대가 시위에 합류, 거리를 누비고 온갖 차량들이 경적소리로 동참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민변에서 일하던 내 지인 하나는 대학시절에도 평생 시위엔 나선 적이 없었는데 40을 바라보는 나이로 넥타이 부대원이 된 흥분감을 토로했다.

외신 특파원이 찍은, 피흘리는 한열군과 부축한 연대생 이종창군의 모습이 전세계와 중앙일보에 실리고...불같이 타오르고 물같이 들끓던 민심은 7.5 이군의 사망과 부검, 최루탄 파편에 의한 사망이 알려지며 7.9 장례식에 100만 시민을 시청에 운집시킨다. 영화는 장례식석상에서의 문익환목사님의 절규와 가상인물 연희의 시위동참, <그날이오면>등의 배경음악과 더불어 당시 장면들을 내보내는 다큐로 맺는다.

때마침 사회평론사에서 발간한 <1987 이한열>을 보면 영화 (종철고문치사부터 한열장례식까지만다룬다)에서 다루지 못한 스토리들도 쏠쏠하다. 이한열 군 시신을 압수하려던 전경의 바다와 시신을 사수하려던 학생들의 대치, 혹시나 부검을 조작해서 사인을 시위대 돌에 맞은 것으로 발표할까봐  부검현장에 입회한 학생, 교수 등등.

영화 <1987>은 우리가 2016ㅡ17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탄핵을 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가려는 저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 숱하게 많은 꽃같은 사람들의 힘이 응축돼 면면히 이어져온 덕분이란 걸 다시 확인해주는 소중한 자료다. 책 <1987>과 더불어 우리의 민주화 여정에서 값진 이정표 하나 마련해 주신 모든 님들께 감사하며 보아야 할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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