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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보는 에도막부의 행정조직
게시물ID : history_142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rca
추천 : 10
조회수 : 232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2/23 13:26:28
사무라이는 쇼군 혹은 다이묘와 주종관계를 맺고, 주로 군사적인 임무를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쇼군과 다이묘는 군사지도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쇼군과 다이묘는 행정능력이 뛰어난 사무라이들을 발탁하여 정무를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사무라이들을 '야쿠카타(役方)'이라고 했고, 그리고 군사업무를 담당하는 사무라이들은 '반카타(番方)'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어느정도의 구분은 있었지만 이들을 대대적으로 손보고 완성한 것은 에도막부의 기틀을 공고히하였다고 평가받는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츠'였습니다. 


당시의 정치구조를 보자면 일단 쇼군을 정점으로 하여 그 아래로는 일종의 재상급인 막부의 최고 직책인 '다이로(大老)'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이로는 비상근 직제였고 실제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처리하는 실무자는 '로주(老中)'들이었습니다. 이들 로주들은 중요한 일이 아닌 경우 다이로를 대신하여 정책 수행과 사무처리 그리고 각 지방의 다이묘들을 감시 및 관리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로주들을 보좌하는 '와카도시요리(若年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와카도시요리는 쇼군 직속의 무장인 '하타모토(旗本)'와 쇼군 직속의 가신인 '고케닌(御家人)'을 관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와카도시요리 아래에는 '메쓰케(目付)'가 있었습니다. 이들 메쓰케의 임무 역시 하타모토와 고케닌을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로주와 와카도시요리 그리고 메쓰케는 일명 '3부교(奉行)'라 불리며 에도막부 행정의 최상층을 자치했습니다. 이들은 아무나 임명되는 것이 아니었고 세키가하라 이전부터 도쿠가와 가문을 모셨던 다이묘들인 '후다이다이묘(譜代大名)'들 중에서 임명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후다이다이묘들이 세키가하라 이전부터 도쿠가와를 모셨던 다이묘들은 아니었습니다. 그 중에는 그 이후에 참여한 이들도 존재하였습니다.



그리고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부서로는 '지샤부교(寺社奉行)', '간조부교(勘定奉行)', 에도마치부교(江戸町奉行)'가 있었습니다. 지샤부교는 사원과 신사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부서였고, 간조부교는 쇼군의 직할령인 '텐료(天領)'을 통제와 관리 그리고 막부의 재정 사무를 담당하였습니다. 참고로 쇼군의 직할령인 텐료는 17세기 말 기준 400만석에 달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쇼군이 가신들에게 나눠준 영지 300만석을 추가하면 쇼군이 직간접적으로 지배하는 영지는 700만석에 이르렀습니다. 에도 막부가 잘 나가던 시절 전국의 고쿠다카는 약 3000만 석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쇼군이 고쿠다카의 4분의 1을 점유하고 있던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도마치부교는 에도의 도시행정을 총괄하였습니다. 이들 부교의 직책은 하타모토들 중에서 임명되었습니다. 



감찰기관으로는 다이묘의 동태를 감시하는 '오메쓰케(大目付)'가 있었고, 위에서 언급한 메쓰케가 있었습니다. 그 밖에 사법기관으로는 로주, 3부교, 오메쓰케, 메쓰케로 구성되는 '효죠슈(評定衆)'가 있었습니다. 이 효죠슈는 본래 가마쿠라와 무로마치 시절 입법, 사법, 행정을 총괄하는 최고 정무기관이었지만 에도막부 시절에 이르러서는 사법기관으로 그 임무가 변하였습니다. 



지방기관으로는 교토의 세력을 감시하는 '교토쇼시다이(京都所司代)', '오사카죠다이(大坂城代)', '슨푸죠다이(駿府城代)', '니죠죠다이(二条城代)'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각 주요 도시에도 에도마치부교와 같은 마치부교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마치부교라하면 에도마치부교를 일컫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외의 지역에는 '온고쿠부교((遠国奉行)'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직할령인 텐료에는 '군다이(郡代)'와 '다이칸(代官)'을 두고 민정 전반을 관장케 하였습니다. 이 군다이와 다이칸은 간조부교가 관리하였습니다. 



이러한 제도 정비로 인해서 에도막부는 이전의 가마쿠라나 무로마치에 비해 더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물론 동시대의 중국이나 조선에 비한다면 중앙집권이라는 말은 아직 좀 부족한 편이었습니다만 



※ 출처 : 일본무사도(구태훈), 에도일본(모로미야), 위키백과(한국, 일본),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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