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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격장의 불청객 #1
게시물ID : panic_976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리스마스
추천 : 5
조회수 : 1700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8/01/05 19: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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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어휴. 말년에 후임 복이라곤 지지리도 없는 내가 죄다. 내가.”
자동화 사격장 8사로의 250미터 철판 덮개를 두 손으로 잡고 옆으로 밀어 젖혔다. 사격 표적과 전자 장치가 들어있는 호 안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
, 진짜. 비도 안 오는데, 물이 왜 이렇게 차냐.”
나는 원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 8사로의 250미터 표적에 물이 차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비도 안 오는데 물이 계속 차는 현상 때문에 몇 번이나 공사를 했지만 그 때 뿐이었다.
물론 일 년 반 넘게 사격장 관리를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 자체에 불만은 없었다. 다만, 오늘의 짜증은 내 후임인 김경식 일병 때문이었다.
내일 사격 있으니까, 먼저 250미터 표적으로 올라가서 물 퍼낼 준비해라. 곧 따라.”
싫습니다.”
부대 전입 온지 일 년 만에 생긴 후임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싫다는 말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아니, . 너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선임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내가 말도 다 안 끝냈는데 싫다고.”
싫습니다. 전 안 갈 겁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관리병 휴게실에는 그와 나 둘 밖에 없었다. 평소에 못해준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일 년 만에 들어온 후임이라고 금이야, 옥이야 돌봐줬는데 이 모양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 진짜. 새끼야. 내가 너한테 뭐 안 되는 일 시켰.”
화가 나서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을 하던 나는 그 표정에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 너 뭐 어디 아프냐? 표정이 왜 그래?”
, 사격장에.”
, . 크게 말해봐. 인마. 안 들리잖아.”
, 사격장에 유령이 나와서 가기 싫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내 후임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봤다.
해가 쨍쨍하게 뜬 한여름의 오후였다.
지금 대낮인데 귀신은 무슨. , 봐봐. 저기 밖에 햇빛 쨍쨍한거 안 보여? 귀신도 말라 죽을 날에 무슨.”
아닙니다. 나옵니다. 서동수 병장님이 못 보셔서 그렇습니다.”
나는 다시 한 번 후임의 얼굴을 바라보고, 창문을 봤다.
에휴.”
한숨이 나왔다
 
아니 씨팔. 무슨 이런 더운 대낮에 귀신이 나온다고.”
그런 이유로 나는 혼자서 낑낑대며 무거운 철판 덮개를 혼자 열고 물을 퍼냈다.
, 나오지도 않는구만.”
답답한 마음에 평소에 잘 하지도 않던 욕이 입에서 쏟아졌다. 한여름의 태양 볕에 러닝셔츠는 벌써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내팽겨 쳐둔 전투복 상의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사격장에는 원래 불발탄이 많아 규정상으로 담배를 피우면 안 되지만, 오늘 만큼은 피지 않고 못 버틸 것 같았다.
, 진짜.”
사격장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담배를 피우고 있자니, 누군가 내 옆에 불쑥 다가왔다.
저도 담배 한 개비 주시면 안 됩니까?”
너무 갑작스러운 등장에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사격장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될 경우 간부에 따라서 얼차려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 .”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에게 주기 위해 담배를 꺼냈다. 그러다 문득 내 후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역시 선임 혼자 올라가 작업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답답했던 기분이 순간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 인마. 너 뭐, 내가 조금 뭐라고 했다고 그렇게 사람 어렵게 대하냐. , 여기 받아.”
나는 웃으면서 옆에 다가온 후임에게 담배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담배를 건네주기 바로 직전, 나는 몇 가지 위화감을 느꼈다.
첫째, 내 후임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둘째,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요즘 지급받는 디지털 군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셋째, 내 후임은 사격장 아래쪽에서 예초기로 예초작업을 하고 있었다.
혹시, 누구?”
불안한 마음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거기에는 부대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서 있었다. 벌써 몇 년 전에 지급이 중지된 구형 전투복을 입은 그는 내 손에 들려있는 담배를 받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투명한 손은 내 손에 들려 있는 담배를 통과할 뿐, 잡을 수 없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이게 담배가 잘 안 잡히네요. 유령이라서 그런가.”
, 아이 씨발! , , 뭐하는 놈이야?”
나는 그날 부대에 온 이후 가장 큰 목소리로 욕을 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10군번이라고 이야기 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년 전이었다.
아니, 그래서 저기. 그러니까 하고 싶으신 말씀이 뭐라고.”
, 하고 싶은 이야기 말이죠? 사실 별거 없어요. 그냥 오랜만에 담배 연기가 나서 옛날 생각도 나고 하니 나와 본거죠.”
, .”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벌써 두 시간이 넘게 떠들고 있었다. 배가 너무 나와서 D상사라고 불리는 행보관은 잘 있는지, 2010년 겨울 자기가 왔을 때 혹한기가 눈이 얼마나 왔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벌써 질리지도 않고 두 시간째 늘어놓고 있었다.
아하하, 제가 좀 말이 많죠. 근데, 그건 알아 두셔야 해요. 제가 하는 이야기가 다 경험이고 또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그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변명을 늘어놓다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그의 가슴에 달린 계급장을 내려다보았다.
일병이었다.
왠지 모르게 아까 후임을 윽박지른 것이 미안해졌다. 대낮에 무슨 귀신이냐고 소리쳤던 것이 후회되었다.
물론 그것이 전설의 고향이나 음양사에 나오는 무서운 귀신이 아니라, 박찬호처럼 말 많은 수다쟁이 귀신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내려가면 사과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다섯 시 십분 이었다. 곧 있으면 일과가 종료되고 식사를 할 시간이었다.
, 저기 죄송한데. 제가 벌써 내려가 봐야 할 시간이라서요. 이제 곧 저녁 식사도 해야 해고.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소개팅 자리를 정리하듯 어색하게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 신나게 이야기 하던 귀신의 표정이 급하게 어두워졌다. 마치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냉정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한 달 뒤면 말년 휴가인데, 괜히 귀찮은 일에 말려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기 죄송한데, 부탁 하나만 들어 주실 수 있나요?”
귀신이 내 팔을 잡듯 손을 뻗었다. 물론 그 손은 내 몸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 했지만, 나는 등 뒤가 쭈뼛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 그럼 말해보세요.”
나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귀신에게 말했다. 어찌되었든 간에 그가 귀신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착하게 굴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떤 장난을 칠지 알 수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귀신은 정말 기쁘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그의 목에 걸려 있던 군번줄이 짤랑 소리를 냈다. 귀신 주제에 괜히 쓸데없는 디테일이 기분 나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태까지 이렇게 몇 분에게 말을 걸어 봤는데 정말 들어 주시는 분은 한 분도 없었어요. 그건 말하자면.”
나도 말하지 말걸, 하고 후회 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다음이었다.
, 저 이제 빨리 내려가야 하는데 결론만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나의 보챔에 그는 결심을 굳힌 듯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성불하고 싶습니다.”
나왔다, 성불 패턴. 나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뻔 했다. 괜히 다시 후임이 미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녀석, 말 해 줄거면 똑바로 말 해줄 것이지 괜히 애매하게 말해줘서 이게 뭐야.
저는 특급전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귀신은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지만, 나는 그 이야기에 헛웃음이 나올 뻔 했다.
키만 컸지 깡마른 난민 체구였던 귀신은 특급 전사는커녕 3급전사도 힘들어 보였다.
저는 특급 전사가 되기 위해 매일같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노력한 결과 체력, 정신전력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고 곧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격 측정이 있던 그날.”
그날?”
“250M 표적 한 발을 놔두고 그만,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보통 남자들은 전역하는 순간부터 부대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들 이야기 하는데, 이 애처로운 귀신은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귀신은 그렇게 이야기 하고 나서 설움에 복받쳤는지, 250M 표적 안에 들어가서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귀신이 눈물을 흘리자 사로 방금 전까지 말라 있었던 사로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그가 격하게 울면 울수록, 사로 안에 물이 차는 속도가 빨라졌다.
네 녀석이었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난 1년 반 동안 허구한 날 물을 푸러 다녔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귀신만 아니었다면 당장에 달려가서 한 대 때렸을지도 몰랐다.
? 뭐라고 하셨나요?”
귀신은 우는 와중에도 내 말을 착실하게 듣고 있었다.
, 빨리 거기서 나오세요. 그래서 성불 하려면 뭐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저와 함께 사격을 해 주시면 됩니다.”
? 그건 또 뭐에요? 몸이라도 빌려 달라는 건가요?”
아닙니다. 제 지시대로 사격을 해서 18발 이상 표적을 맞춰 주시면 됩니다.”
나는 귀신의 말에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사격장 관리병은 사격장 관리만 했지, 사격을 할 일은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자기가 직접 쏘는 것도 아니고 옆에서 훈수를 둔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20발 중에서 18발을 맞춰야 하는 허들 높은 사격을 내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할 테니까. 빨리 나와요. 사로에 물차잖아요.”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대답은 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불어나는 물을 보다 못한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귀신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250미터 표적 밖으로 나왔다.
그럼 내일 오후에 있는 사격에서 뵙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귀신은 사라졌다. 정말 아까부터 자기 할 말만 하는 귀신이었다. 그나저나 내일 사격이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니, 어지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에휴, 나도 모르겠다.”
한숨을 쉬며 내려가려고 하는데, 바람결에 물이 찰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까지 말라 있던 250미터 표적은 홍수라도 난 듯 물이 넘치고 있었다.
시계는 이미 다섯 시 사십 분을 넘어 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이 빌어먹을 귀신 놈이!”
나는 그렇게 욕을 하며 들고 왔던 바가지를 집어 들었다. 한여름 오후의 끈적지근한 바람이 기분 나쁘게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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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이게 공포인가 하는 고민은 좀 들었는데, 기담집을 보니 이런 유형의 귀신도 있어서(...) 여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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