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같이 12시에 점심을 먹는다.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을 전자렌지에 3분만 돌려서 찬기가 대충 가시면 마시듯 먹어버린다.
내 자리 내 의자에 앉아 저번주에 질러버린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다.
얼마전 영화에서 들었던 음악을 골라 틀고 볼륨을 높힌다.
가사따위는 하나도 모르지만 그냥 이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즐긴다.
느슨하지만 잘 밀봉된 나의 세계에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온다.
"이 새끼 또 내가 말할땐 이거 벗으라고 했냐 안했냐?"
'병신 헤드폰 쓰면 밖에 소리 안들리는데 어쩌라고'
속으로는 욕하지만 멍한 눈빛으로 어버버 한다.
"에...네?"
"아... 씨... 아오 이 새끼... 너 독립하려고 집 구한다 하지 않았냐?"
"네... 그렇긴 한데요."
"죽이는 집 하나 나왔단다. 지금 나랑 같이 가자."
"아... 저... 저느..."
"야이 개새야 잔말말고 따라와라"
진짜 비겁한 놈이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만 골라서 악질적으로 이용한다.
이번에도 아마 부동산업자나 뭐 그런사람한테 얼마인가 받고 이런짓 하는거겠지.
일은 못하는데 이상하게 이러저러한 연줄이 많아 회사에서 안짤리는 과장.
안간다고하면 귀찮은 상황을 만들테니 우선을 따라간다.
과장의 신형 승용차에 구부정하게 들어가 그의 말을 조용히 듣는다.
욕은 왜 그리 많이 하는건지 자기자랑에 다른사람 흉은 왜 그리 열내서 하는건지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다.
그저 빨리 이 소음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예상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다.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달동네 그 앞에 홀로 서있는 원룸빌딩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는 나에게 어깨동무를 해온다.
"야~ 이 새끼 너 나한테 큰 빚을 진거야 시발롬아 이런집 이런가격에 못 구해 알아들어?"
"아.. 어... 네..."
그는 강제로 날 원룸빌딩안으로 들어가게 만들고 계단을 올라간다.
2층... 3층... 4층... 4층이 끝인데 한 층을 더 올라가 옥상으로 간다.
"시발 아주 경치가 쥑인다. 십새야 나한테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되는거 아니냐?"
"... 네..."
고개만 꾸벅하고는 고개를 들지않고 그의 발끝을 바라본다.
반짝이는 구두가 그 구두에 박힌 바늘자국이 날 비웃는다.
"야 고개 들고 여기봐봐라 여기가 니 집이 되는거다."
그의 말에 따라 고개를 들고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자그마한 옥탑방이 있다.
"시발 생각해봐라. 여기서 니 그 좋같은 인생의 첫걸음이 시작되는 거야..."
그는 한참을 나에게 인생설교같은것을 퍼부어준다. 어쩌라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나왔던 내가 나왔던 계단에서 말쑥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남성이 서류가방을 들고 올라온다.
"아이고 그래 말씀은 끝나셨습니까? 여기 사인하시고 ..."
그는 다짜고짜 서류가방에서 종이 몇장과 볼펜을 꺼내더니 나에게 불쑥 겨눈다.
살짝 옆을보니 과장은 날 지그시 눌러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새끼... 아직 집 안도 못봤는데... 무표정한듯 몇 장의 서류에 대강 사인한다.
"그럼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사장님. 아! 여기 진짜 싸고 좋습니다. 하하하!"
올라올때완 다르게 경쾌한 울림이 짧게 퍼지는 계단을 뒤로하고 과장과 중년의 남성은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