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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AV의 추억
게시물ID : readers_308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리스마스
추천 : 8
조회수 : 751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8/01/03 23: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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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사실 어디가서 일본어과라는 소개를 하면 사람들로부터 두 개 정도의 고정적인 반응이 돌아온다.
 하나는,
 "기모찌?"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님 혹시 오타쿠?"
 아니라는 선택지도 있지만, 
 세상은 늘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고, 절대 자신의 생각과 다른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특히 일본어과라면 더 그렇다.
 AV를 좋아 하거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거나 아니면 둘 다 좋아해야 한다.
 물론 내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고정관념까지 기분 좋을리는 없다.
 아무튼,
 2009년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 A가 나를 보더니 헐레벌떡 달려왔다.
 "야야, 너 일본어 할줄 알지?"
 "그럼 일본어과가 중국어 하랴?"
 "잘 됐다. 그럼 너 야메떼, 기모찌 이런 것도 해석 가능 하겠네?"
 참고로 일본어과와 AV를 연결 짓는 사람들은 대부분 빈약한 어휘수준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 일본어란, "야메떼!"와, "기모찌!" 밖에는 없다.
 "밖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 하지 마. 쪽팔리니까."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계속 말을 걸었다.
 "야, 내가 신박한 아르바이트 가져왔는데. 들어 볼래?"
 "신박한거?"
 "끝장 난다니까."
 불안한 감은 있었지만, 항상 궁색하게 지내던 대학생 입장으로서는 솔깃할만한 제안이었다.
 "뭔데."
 "AV번역."
 "뭐?"
 친구의 제안은 이랬다.
 자기가 아는 사람이 곧 성인 사이트를 개설하는데, 거기에 사용할 자막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이율배반에 가까웠다. 상도덕에 어긋난다고 할까, 아무튼 별로 필요가 없어 보였다.
 애초에 AV자체가 바디랭귀지 아니었던가.
 그게 필요하냐는 듯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친구는 컨셉이 틀리다며 손을 휘저었다.
 "이 홈페이지는 말하자면 비발디나 모차르트 같은 거야."
 비발디나 모차르트가 들었다면, 관을 뚫고 나와 멱살을 잡을 만한 말이었지만 친구는 진지하게 계속 이야기 했다.
 종래의 AV사이트는 풀영상을 제공하지 않는 곳이 많다. 이는 클래식으로 따지면 절정 부분만 듣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는 AV의 진실된 재미를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풀영상에 고급스러운 자막을 입혀 퀄리티를 보장할 것이다.
 이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어디 가서 씨알도 먹히지 않을 주장이었지만, 돈은 확실하게 보장이 된다고 했다.
 "편당 5만원."
 처음 들었을 때는 확실히 돈이 될 것 처럼 보였다. 나중에서야 그것이 매우 싼 가격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뭐 다 좋은 인생의 경험이라고 생각해야지 별 수 없었다.
 "확실히 주는 거지?"
 "그렇다니까."
 다음 날 친구가 준 USB에는 실력 확인을 위해  번역만 먼저 보내주면 된다는 내용과 함께 4편의 AV가 들어 있었다. AV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길었다. 길어봐야 한 편에 2~30분 정도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기본 1시간 30분 이상의 블록버스터들이었다. 
 더 난감한 사실은 USB안에 영상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참고용으로 쓸만한 번역 자료는 하나도 없었다.
 4개 합쳐 8시간이나 되는 영상을 주말 안에 번역하기란 무리에 가까웠다.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이거 너무 많잖아."
 "말했잖아. 오페라라고."
 "아니 그럼 대본 같은 것도 없어?"
 "당연히 없지."
 별로 쓸데 없는 이야기만 잔뜩 주고 받은 끝에 친구는 "화이또" 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두려운 마음으로 영상을 틀었다.
 결론만 나오를 바랬지만, 영상은 기승전결을 착실하게 준수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비발디.
 영상에 나오는 배우들은 하나같이 왜 자신이 AV배우가 되었는지, 좋아하는 취향은 무엇인지, 이 일에 임하는 각오는 무엇인지 등 감성 라디오에 나올법한 사연들을 줄줄이 늘어 놓았다. 왜 인터뷰를 하면서 옷을 벗는지, 이 순간 엄마에게 한마디는 왜 시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꾸역꾸역 진행되었다.
 결국 인트로부터 진을 뺀 나는 요구 시일보다 이틀 더 걸려서 번역이 된 영상을 넘겨줄 수 있었다.
 그래도 고생했다고 돈을 깎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참고로 계획했던 사이트는 결국 돈이 되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 보류되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바디랭귀지에 무슨 번역이야.
 덤으로 4일 내내 일본어만 들은 탓인지, 그 뒤로도 듣기는 항상 잘했다고 한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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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오이 소라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문득 떠올라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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