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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 만남
“아빠, 우리도 강아지 키우자.”
일요일 아침 TV에서 하는 동물 프로그램을 보던 초등학생 아들이 화면에서 눈도 안 떼며 얘기했다.
“글쎄, 귀엽긴 한데, 아파트에서······. 엄마가 싫어할 거야.”
긍정도 부정도 안하며 아내에게 그 공을 던졌다.
2002년 봄쯤, 나라는 월드컵 열기가 무르익어가는 시기였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온 나라는 강아지 키우기 열풍에 달아올랐다. 그에 불을 지른 것이 일요일 아침에 방영하는 그 동물 프로그램이었다. ‘웅자’라는 귀여운 아이가 출연하여 온갖 엉뚱한 행동을 하는 모습에 우리 가족들 까지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진 것이다.
“아파트에서 어떻게 키워. 어지르면 치우는 것은 내가 다 할 텐데······.”
아내는 단호했다. 게다가 우리 집 서열 1위의 의견이었기에 토를 달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주말, 분당의 식당가에서 외식을 하는데 그 건물 1층 애견샵에서 오픈 행사를 하고 있었다. 당시는 반려견 열풍에 관련 업소가 많이 생기던 시절이었다. 가게 외부는 통유리로 되어 있고 진열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강아지들이 오가는 행인들을 호기심 어린 몸짓으로 보고 있었다. 특히 코카스패니얼 강아지들이 메인 진열장에 배치되어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둥근 얼굴에 커다랗게 늘어진 귀를 갖고 있는 황금빛(?) 강아지들이 우리 가족들의 눈도 사로잡아 버렸다. 아내 또한 눈을 크게 뜨며 ‘어머! 어머!’ 하고 감탄사를 연발 하였던 것이다.
가게 주인 말로는 3개월 된 아가들이라고 했는데 너무 작아 보였다. 가격은 부담 없이 사기에는 싸지 않았다. 하여튼 이 날의 인상 때문에 아내는 강아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 카페들을 돌면서 관련 정보를 찾곤 했다. 그런 카페들 중에서 직거래 사이트가 있었다.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아서 저렴하게 분양을 하거나, 물품을 공동구매 혹은 중고로 되팔거나 하는. 아내는 게시물 중에서 다른 집에서 못 키우게 된 강아지의 사연에 마음을 뺏겼다. 이미 두 집에서 파양을 당해서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된 아이였고, 마침 3개월 된 코카스패니얼 강아지였다.
“3개월밖에 안 살았는데 그 견생이 기구하네.”
아내의 관심 속에 게시 글의 주인과 연락을 하게 되었고, 아들과 나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그 아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입양 날에 온 식구는 경기도의 다른 도시로 향했다. 약속 장소인 어느 공원에 도착하니 설렘이 지나쳐 긴장이 되었다. 어떤 아이인지. 우리를 좋아할지. 잘 키울 수 있을지.
“아, 쟨가 봐.”
아들이 외치며 손짓했다. 그 손을 따라가니 멀리서 한 소녀와 함께 오는 개가 보였다. 3개월이라 했는데 좀 커 보였다. 분당 애견샵의 3개월들은 누가 봐도 강아지였는데. 엉덩이를 좌우로 흔드는 모습을 보니 꽤나 명랑한 아이인 듯 했다.
이미 아내와 여러 번 통화를 한 그 소녀는 고마워하며 강아지(?)와 물품들을 넘겨주면서 몇 가지 당부를 했다.
“아빠가 너무 싫어 하셔서요. 얘가 좀 활동적이라······.”
“이건 얘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고. 이건 간식. 사료. 옷이에요.”
“산책할 때는 줄을 꼭 매시고, 꼭 잡고 계시구요······.”
이것저것 알려 주더니 그 아이와 인사를 나누고는 우리에게도 작별을 고했다.
“감사해요. 이번에도 쫓겨나면 보호소에 갈 운명이었어요.”
그렇게 전주인과 헤어지고 돌아섰다. 그 아이는 그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지 전 주인이 가는 모습을 줄이 팽팽해지도록 보고 있었다. 활동적인 아이라 했는데 돌아오는 차에서는 얌전했다. 우리의 무릎이 불안했는지 기어코 바닥으로 내려갔다.
“기가 죽었네.”
상황을 깨달은 듯 했다. 3개월 정도 살았는데, 엄마 품을 떠나 두 집을 거쳐 우리 집이 세 번째 집이다. 측은했다. 바닥에 꼿꼿이 앉아있던 아이는 멀미가 났는지 아들의 발에 살짝 기댔다. 아들이 무릎에 올려주니 가만히 엎드렸다. 그래 그렇게 친해지자.
집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었다.
“코코 어때?” “행복이는?”
별의별 이름이 다 나왔지만 가족 모두의 맘에 든 이름은 없었다. 아내가 받아온 물품 꾸러미를 뒤지더니 예방접종카드를 꺼냈다.
“아, 이 아이 이름이 ‘비니’인가봐. 병원카드에 ‘비니’라고 쓰여 있네.”
“비니!”
그 아이가 화들짝 쳐다봤다. 늘어진 귀도 쫑긋해 보였다.
“그래, 네 이름이 비니구나.”
“네 이름은 비니. 비니야.”
비니가 엉덩이를 흔들며 가족들 사이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