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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추
게시물ID : humordata_17332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준준준준
추천 : 21
조회수 : 4950회
댓글수 : 49개
등록시간 : 2018/01/02 12: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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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팡파레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오색종이가 쏟아져 내리고 사람들의 축하소리가 식장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순간 난 다른 절차 같은건 모두 잊어버린채 신부의 손을 잡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하하하 저친구 급하긴 급했구먼 하하하하"

하객들의 웃음소리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지금 난 본능에 따라 달릴 뿐이다.


옛날에는 결혼하지 않고도 마음대로 섹스하고 성폭행 사건도 무지하게 많았다는데, 치료 불가능한 변종성병이 만연하면서 3년 만에 세계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버리는 대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결국 국가차원에서 '고추관리법안' 이라는 결단의 대책을 내놓았고, 덕분에 변종성병을 막아낼 수 있었다. 

나도 8살이 되던 해에 대학병원에서 고추 떼는 수술을 받고 차가운 금속상자를 받아들어 동사무소에 제출했던 기억이 있다. 

'꼬마야 결혼하면 돌려준단다. 걱정하지 말고 꼬추한테 작별인사 해야지?'

쿵! 하고 닫히는 육중한 철문 앞에서 손을 흔들며 눈물 범벅된 얼굴로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왜 그렇게 슬펐는지는 알 수 없는 나이였지만 막연히 뭔가 내 가장 소중한 것을 떠나보내는 그런 느낌이었나보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고추와 재회하는 날 

웨딩드레스도 채 갈아입지 않은 신부의 손을 붙잡고 헐레벌떡 들어오는 나를 보고 동사무소 고추관리계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이한다.

"그래 필요한건 다 준비해오셨죠?"

안주머니에서 인감도장과 부모님 서명이 첨부된 허가서 두 장, 본인확인용 ID카드와 혼인신고서까지 쾅 소리나게 놓고는 서둘러 고추 면허신청서를 작성한다. 맨 밑에 '20년간 고추미사용시 녹색고추증 발급(버스,지하철 30% 할인)' 이라고 써 있는걸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커다란 열쇠꾸러미를 들고 일부러 느릿느릿 걸어가는 계장님의 등을 떠밀며 지하로 내려가는 걸음 걸음이 너무 떨려 오줌이 나올것만 같다.


내 이름이 적힌 캐비넷이 쉭하는 소리를 내며 열리자 안에는 어릴때보다 훨씬 커진 고추가 액체에 담긴채 연결된 여러 튜브를 통해 자라고 있었다.

"빨리 빨리 주세요"

"어허 이십년을 기다렸는데 그거 몇 분을 못 기다리나"

현기증 날 것 같은 기분에 계속 보채지만 계장님은 아랑곳 하지 않고 서류에 적힌대로 주의사항을 천천히 또박또박 읽고 있다.

"음.. 첫째로 매 년 동사무소에 반납해서 정기검사 받으려야 하구요. 해외여행시에는 반드시 여행관리국에 보관하셨다가 귀국시 찾으셔야 합니다. 분실하셔도 안에 GPS 내장되어 있으니 걱정 마시구요 안에 데이터 레코더 들어있어서 모든 상황이 녹화, 녹취 되니까 엄한짓은 꿈도 꾸지 마세요"

"넷!"

"참고로 부인 몸에 내장된 신호기 외에 다른 신호기와 접촉하면 바로 경찰서로 연락가구요 계속 접촉하고 있으면 얘 터져요"

"푸하하하 농담이시죠?"

"하하하 농담인지는 바람 한 번 피워보시면 되고"

"하하하하"


한 달 사이 살이 8키로가 빠질 정도로 회포를 풀었던 것 같다. 
매일 새벽 세 시가 넘어 탈진 상태로 후들후들 거리던 아내는 내일부턴 죽어도 안한다고 우는척을 했지만, 다음날이면 또 싫지 않은 내색이니 이토록 좋은걸 어찌 지금까지 못 했을꼬.



어느 날인가 처제가 놀러와 함께 술을 거하게 마시고 거실 소파에서 누워 자다 핸드폰을 찾아보니 전원이 꺼져있었고, 일요일 새벽이었지만 연말이라 회사에서 급한 연락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전해야겠다 싶어 안방문을 열어보니 부인 혼자 얕은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고, '에그, 처제는 자고 가라니까 먼저 갔나보네 날도 추운데'하며 침대로 파고 들었다.

따듯하고 몽글한 그곳이 그리워 손을 드밀자 '아유 차가워!'하며 밀어내지만 어차피 조금만 만지작 거리면 금세 따듯해 지잖나 장난기가 솟아 티셔츠를 젖혀들고 머리부터 쑥 들어가 부빈다. 이내 아내의 숨소리가 쌕쌕대더니 가는 다리로 날 부둥켜 안는데, 적당한 알콜 기운과 함께 일요일이라는 마음속 여유가 더해져 해 뜰때까지 할 작정으로 발가락을 이용해 남은 옷을 끌어내린다. 

순간 목 아래가 뭔가 반짝반짝 하길래 보니 고추에서 빨간 불이 껌뻑껌뻑 대는데 '이거 조명기능도 있었네?'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익숙하게 흐엄차! 올려넣고는 서로 한 숨과는 다른 한 숨을 하아 내쉰다.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를 양 손으로 잡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으로 퍼져나오는 둔부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른다. 

"너무 좋아"


순간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침 찬거리를 양손에 든 부인이 난생 처음보는 표정을 짓고 서 있었고, 동시에 그녀를 밀치며 두 명의 사내가 들이닥친다.
너무 놀라 뒤로 안은 자세 그대로 굳어 멍청하게 있는데 아랫쪽에서 띠-띠하는 전자음이 들려온다. 그러자 갑자기 사내들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뒤로 천천히 물러나며 내게 말한다.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빼세요 천천히"

"네? 무슨? 아니 그것보다 당신들은 누구요? 아니 자기는 왜 거기 서 있어?"

이게 아직 꿈인가 술을 많이 먹긴 먹었나 가슴이 이리 물컹한데 진짜 꿈인가 하는데, 고개를 돌려 본 화장대 거울안으로 닮긴 했지만 머리스타일이 확연히 짧은 처제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반사적으로 허리를 뒤로 빼며 처제를 밀쳐냈다.

곧이어 들리는 '뻥!'하는 소리







"피고인은 국가가 금하는 성행위로 법을 어겼으나 당시 만취한 상태였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며 정황이 실수로 인정되어 형을 참작 벌금 500달러와 성기사용면허 1년 정지를 명한다. 

또한 신이 남자와 여자의 몸에 성기를 각기 하나 씩만 준 이유는 괜히 여기저기 넘나들지 말고 부부간 평생토록 아름답게 살라는 뜻이니 부디 다시는 이러한 실수 저지르지 마시오"


판사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부인의 손을 잡고 집에 오면서 다시 좆도 없는 남자가 되어 버린 내 처지에 눈물이 절로 방울지고, 부인은 오히려 괜찮다며 날 토닥인다.

"우리 일 년만 꾹 참아요 건강보험공단에서 쌔걸로 바꿔준댔잖아요"

한 달 만에 펑하고 터져 걸레가 되어버린 내 고추가 생각나 또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자 부인이 내 등짝을 팡! 하고 치더니 뛰기 시작하고 


"여보 나 잡으면 내가 일 년 후에 입으로 해줄께!"하며 까르르 대는데

뒤따라 뛰는 머릿속으로 

'참 나는 좋은 부인을 만났구나'하는 생각에 절로 함박웃음이 지어진다.

 



하늘이 참으로 푸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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