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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수용소장의 변명
게시물ID : history_141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owHat
추천 : 11
조회수 : 1209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4/02/21 23:23:04
(기억의 흔적을 한번 더 되새김질을 하는 정신적 과정을 겪었던 글입니다. 저는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이 바로 떠오르더군요. 그 사람 자체가 악했다기 보단, 사유를 하지 않고 그저 행동했었기때문에, 악인 惡人인 것처럼 보인다는 그 말이 말입니다.)


프랑스 사상가 자크 엘륄 Jacques Ellul 의 기술의 배반이라는 동영상을 시청하다가 다음 대목을 발견했다.
자크 엘륄은 다음을 주장했다.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LdogID589Mk

"우리의 기술 사회에서, 노동이 너무 파편화되어 있어서, 말하자면 작은 부분으로 분화되어 있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간이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기술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특수한 작업을 수행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해야할 전부다.

가령 극단적인 변명을 하나 들어보자.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들은 것 중 가장 잔혹한 것들 중 하나였다. 

나치의 베르겐-벨젠 bergen-belsen 강제수용소의 소장이 아우슈비츠 재판 당시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그것이 끔찍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 모든 시체들 말입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무엇을 할수 있었을까요? 시체소각로의 처리 능력이 너무 낮았습니다. 나는 모든 시체들을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내게 많은 문제들을 유발했습니다. 나는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나는 소각로에 대한 기술적 문제 때문에 너무 바빴습니다." 

무책임한 인간의 고전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기술적 임무만을 수행했고, 나머지 문제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 자크 엘륄의 기술 사회는 무책임한 인간을 대량으로 양산한다고 볼수 있을까?

그리고 이 무책임한 인간, 즉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같은 자들이 20세기 폭력의 주체였다고 볼수 있을까?

아이히만이 특별하게 사악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그는 적당히 인간적이었다. 그는 우리가 상상하는 식의 악마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가 성취해낸 임무의 효율성,성과 덕분에 아이히만은 나치 권력사회에서 출세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악은 진부했다.

자신이 맡은 위치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성실이 수행한다는 것은 기술 사회가 숭상하는 근본 가치다. 하지만, 20세기 폭력, 특히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경험은 특정한 경우,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는 것이 진부한 악으로 돌변하는 상황이 가능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크 엘륄이 인용한 나치 수용소장과 아이히만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같은 아이히만적 질곡에서 인간의 해방은 어떻게 가능할까? 제2의 아이히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묵묵히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것 이상의 비판적 사유능력이 필요하다.



출처 - http://kk1234ang.egloos.com/29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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