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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하고 두서 없는 화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게시물ID : history_141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traisol
추천 : 11
조회수 : 81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2/19 11:44:23
 
답글을 꺼낸김에 매듭을 져야 할 것 같은 도의적 기분이 들어 몇자 적어보겠습니다,
 
제목_~1.PNG
 
>본문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사진 검색에서 우월함을 자랑할뿐이지요.
 
 
P5298426.jpg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화차는 상기의 사진과 같은 다연발 로켓 발사기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실상 저러한 형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화력 지원 체계 인것을 떠나 언제나 예산과 남다른 관계를 가져야 하는 군의 특성상 기존의 자원을 활용하여야 하기에 소형의 화포나 총포류를 장착한 화차도 있는데, 이러한 화차를 포탑의 종류를 인용하여 총통기 화차라 합니다, 위의 다연장 로켓 발사기와 같은 형태의 포탑을 신기전기 라 하기에 신기전기 화차라 하고 말이지요.
 
 
P5298428.jpg
 
>이게 총통기 화차입니다,
 
그 역사를 본다면 최무선의 아들되시는 최해산이 태종때 시제품을 처음 제작하여 인정 받은 이래 화차가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문종때입니다, 문종은 그 가치에 주목하여 조선의 역사를 볼때 이래적으로 직접 사업에 뛰어들어 수레를 개량하고 또 규격을 통일하여 상기의 사진과 같이 바퀴의 축과 차량의 바닥의 높이를 달리하여 발사각도를 조정할수 있게 해 보다 사격과 보급의 용이함을 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문종의 개량은 사실상 조선 말기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 점은 아래 이야기를 좀 더 하며 말하도록 하지요.
 
아무튼 그 위력을 실감한 문종은 기존의 화차가 철령전 수십개를 쏘아대는 산포에 그쳤던 것을 개량하여 신기전 1백발이 장착된 신기전기나 사전총통 40문 혹은 주자총통 50문으로 구성된 총통기중 하나를 착탈식으로 얹을수 있게 하여 화력을 높였으며 전란이 벌어지지 않았을시 묵혀두기에는 수레라는 것이 아까운터라 수송용으로 사용할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화차를 끌고 다루는 인원의 보호를 위해 포탑 양 옆에 방패를 붙이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지요, 물론 군기시 그러니까 군수 총 책임자 께서 간편한 맛이 없어진다 하여 기각되었지만 말이지요.
 
이러한 이른바 문종 총통은 당시 전국 주요 도시 및 해안을 비릇한 요충지에 배비되었고 요긴하게 쓰이기는 한 것 같습니다, 물론 기록을 보면 쓰는 법을 아는 사람이 없어지니 걱정이다 뭐다 하는 후대의 기록도 있습니다만 임진왜란의 기록을 보면 유성룡이 화력의 개선을 위해 승자 총통 15문으로 총통기를 개량하기도 했고, 변이중은 승자 총통 40문을 다는 것을 넘어 아예 화차 그 자체를 뜯어 고치기도 했습니다,
 
091_2.jpg
NISI20111123_0005496470_web.jpg
 
그러니까 변이중의 화차는 그의 저서인 화차도설에 나오는데, 기존의 문종 화차를 분석한 자료를 수반하여 나름 그 약점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 보입니다, 방호벽을 둘러 기존의 운용 인원들이 가질수 밖에 없는 위험을 줄어고자 하였고, 화력을 증강시키는 한편 다양한 각도에서의 사격을 용이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이 것이 후대에 전해지지 않고 당대에 그친 이유가 바로 그 자체에 있습니다, 솔직하게 까놓고 말해서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지요. 방호벽이 넒게 장착되는데다 총통기가 세개가 들어가니 그 물자로 화차 세대는 만들수 있습니다, 그 뿐일까요? 평시에 활용이 가능한 타 화차와 다르게 실생활에 활용이 불가능하여 유지 관리비만 까먹는 애물단지가 되버립니다, 거기에 운용인원이 증가합니다, 기존의 문종 화차의 경우 운용 인원은 2명입니다, 인력으로 운송하고 방포하고 하는 모든 것이 단 두명으로도 일단은 가능하다는 것인데, 이 경우는 내부에서 화포를 발사할 인원과 외부에서 각도를 조절하고 화포를 운송할 최소한 3~4명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즉 기존의 화차에 비하여 인원이 두배는 필요한것이지요,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화차는 화력 지원이 목적이지 전열에서 보병과 함께 움직이거나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할 연유도 없고 능력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변이중 화차는 삼면에 화포를 두르는 등 기존의 화력 지원 체제에 있어 단적으로 부적절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연사력만 놓고 본다면 당시 화차중 가장 우월할지 모르나 문제는 화차는 혼자 움직이는게 아니지요, 때문에 활용이 가능한것은 최대 40문 1세트의 한 측면일뿐으로 화력의 낭비가 심각합니다,
 
이러한 경제적 또 운용에 있어 단점이 되는 부분은 이후의 모든 화차에도 적용이 됩니다, 그래서 이서, 허적, 박종경등 이후의 개량안들을 볼때 문종 화차와 같은 형태가 크게 변하지 않고 이후의 숙종때 개량된 포방패와 같은 소소한 부분만이 변해가며 조선 말기 신식 군대로 변모해나갈때까지 전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화차의 개량안 중에는 전열에서 활동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도 있기는 합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이 자신의 저서 여암전서에 나름의 개량안을 실었는데, 사방을 나무판과 철판으로 둘러 막아 완벽한 방호력을 갖추는 한편 차량의 상부에 회전할수 있게 만든 반달형의 접철위에 포를 장비하여 사격의 용이함을 추구하였고, 내부의 탄약을 실어 보급의 용이함을 추구하였으며, 차량이 움직일시 칼날이 튀어나오고 멈출때는 들어가게 하여 적의 접근을 막는 방책을 세웠습니다,
 
네 말 그대로 그 개념을 볼때 현대의 전차나 다름없지요.
 
그러나 이 역시 예산과 동력원(....)등의 문제로 실제 가능했을지는 의문입니다, 사실 제작된 기록도 없고 말이지요.
 
실제 미디어매체 등에서는 신기전 화차가 곧 화차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그 화려함으로 볼때 주목받을만 하지만 위에서 언급하며 내려왔듯이 최무선을 포함하여 10여차례의 개량중 그 대다수는 총통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도 그런 것이 일단 예산에 있어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령 중신기전의 경우 1회 발사 그러니까 신기전기에 보통 1백발이 장착이되니 추진체 용으로 얼추 최대 8kg이 소모가 되며 폭발용으로 역시 최대 400g 정도가 소모됩니다, 이에 반하여 똑같이 1백문을 기준으로 잡았을때 승자총통은 4kg 주자 총통은 최대 8백g 남짓이 발사에 있어 소모될뿐이지요, 후기의 총통들에서 사용된 조총을 놓고 보더라도 50문 1세트에 6백g 100개를 놓고 보면 1.2kg 남짓인데 문제는 로켓병기인 신기전은 이렇게 화약을 들이켜 마시는 상황에서도 명중률은 기대하기 힘든게 사실입니다, 사격 통제에 있어 원시적이니 어쩔수 없다 치더라도 직사화기인 총포류에 비하자면 불리한건 문제였지요.
 
이때문에 조선시대 주로 쓰인것은 총통기 화포였고 대개의 개량 역시 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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