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어렵죠? 쌩뚱 맞을거에요.
저는 조금 개성적인 부분이 있는게, 제 '사고'가 단어를 통해 확장하기도 하고 단어를 통해 변화하고 그래요.
무슨 말이냐면 쉬운 예로 '앎'을 예로 들게요.
'앎'이 종류가 있는데 그냥 눈으로 새나 나무를 보며 '어 새다', '어 나무다'라고 하는 알다. (지식과 현실이 일치하는걸 아는것)
새가 날개를 퍼득이는걸 보며 '날려고 하는구나!' 하거나, 나무 속을 따다다닥 두들기며 파는 딱다구리를 보며 '오! 둥지를 지으려고 하는구나' 하는 알다.(앞으로 일어나려는 내용을 아는 것)
뭐 이 정도고 더 나아가면
새가 날기 위해 날개를 퍼덕이는데, 그 날개짓이 날개와 비교해 거대한 몸뚱아리를 하늘로 올리는구나. 라고 2차적인 추가 해석을 곁들여 의미를 부여하는 앎
그리고 2차적인 해석을 기반으로 '우리의 희망이 날개짓하며 날아왔으면 어찌 기쁘지 않을까'처럼 보다 심화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앎'이 있죠.
모두 정의하기에 따라 -_-;; 다양합니다만 (모두 다른 단어로 설명 가능하지만 동시에 '앎'으로 또 설명이 가능하죠)
이렇게 단어를 가지고 노는걸 꽤 좋아하는 저는 .... 주변과 대화 할 때마다 참 어려움을 많이 겪어요. 아니 정확히는 사적이고 '감정'을 이해하는 부분에서 어려움이 커요.
그냥 눈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행동을 보며 어느정도 추측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보다 심층적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을 못해요.
실은 이게 철학이나 프로그래밍처럼 사고를 확장하고, 논리적으로 재구축해서 새로운 기회로 삼는데는 매우 유효합니다. 좋아요. 하지만 '삶'에는 무효죠.
곧 서른을 바라보는 입장이고... (내일모레 서른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연애' 이야기도 그렇고, 살아온 삶을 돌이켜 보았을 때 마음이 맞는 친구가 없기도 하고 ... 참 그냥 침체되네요. 원하는게 아닌데 자꾸 저 스스로 가라앉는거 같아요.
혹자는 이렇게 말해요. '생각을 줄여'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네요. 20년 넘게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왔고, 이제는 저런 사고 자체를 멈추는게 불가능한데 어떻게 그걸 '멈춘다'고 할 수 있냐구요.
나름 최선을 다해 자잘한걸 '무시'하는 중인데도 주변 눈에는 '생각이 많다'고 하니 참 ... 그냥 자괴감까지 따라옵니다.
담배도, 술도 안하는데 종종 미치도록 담배를 피고 싶고, 술을 먹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그 때가 바로 저 소리를 들었을 때죠.
넌 좀 쉽게 살아봐.
생각이 너무 많은거 같아.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