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무기는 화약 그리고 이를 이용한 총기가 등장하면서 눈부시게 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화약과 총기는 인류의 주무기이고 끝판왕이죠. 수천년에 걸쳐 전장에서 활약했던 활과 석궁등의 투사체 무기들은 이 총기들이 등장하고 점점 발전되면서 그 자리를 총기들에게 내줍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총과 대포들이 대거 투입되어 전장을 지배하죠.
이제 병사들은 창과 방패, 무거운 갑옷 대신 부싯돌 발화식 머스킷 장총을 들고 전장에 나서게 됩니다. 이 머스킷 장총은 그 위력이 다른 투사체 무기에 비하여 그 위력이 대단하였으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엄청나게 낮은 명중률과 기나긴 재장전 속도였습니다. 때문에 효율을 어떻게든 끌어올리기 위해서 생각해낸 것이 부대단위의 진형 편성 및 그 부대의 집중사격이라고 하겠죠. 목표 하나 잡기 위해 백발정도 일제히 쏴서 한 20발정도가 목표에 맞으면 뭐 성공이라면 성공이겠지만요.
또한 머스킷 장총은 계속 발사할 경우, 총에 그을음이 끼어 격발불량 등의 잔고장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기에, 몇번의 사격전을 거친 뒤 착검하고 총을 꼬나쥔채 서로 돌격해서 백병전으로 전투를 끝맺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당대의 러시아 명장 수보로프 장군은 "총탄은 멍청하지만 총검은 확실하다!" 라고까지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당시에 사용한 화약은 흑색화약으로, 한 단위의 부대가 일제사격을 하면 엄청난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서 사계를 확보하기 힘들 정도이기까지 했습니다. 이 연기를 연막삼아 돌격하는 재미를 보곤 했죠.
그렇지만 아무리 명중률 낮은 총이라고 해도 집중사격하면 앞서 말했듯이 백발중 스무발 정도는 내가 서있는 위치에 쏟아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낮은 명중률을 더 보완하기위해 집중사격을 넘어서 적 대열까지 최대한 근접해서 쏘았기에 더더욱 치명적이지요. 총탄도 살살 맞으면 아야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뒤집니다. 뒤져요...
이러한 머스킷 총의 이상적인 교전거리는 전장에서 상대의 눈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고 합니다. 물론 미쳤다고 코앞까지 들이대는건 아닌데, 그만큼 교전거리가 가까웠다는 소리지요. 이러한 군대의 전투대열이 들이칠 때 머스킷 뿐만 아니라 대포도 가세합니다.
이 당시 대포들 역시 포구 앞에서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데다가, 발사 후 반동으로 뒤로 밀리면 다시 제자리로 위치시켜놓고 해야했기 때문에 속사가 느렸습니다. 머스킷 장총과 마찬가지로 집중운용을 통해 화력 극대화를 꾀했지요. 하지만 이 대포들의 포탄은 현대의 포탄과는 다르게 터지는게 아닌, 그냥 거대한 쇠구슬이었습니다. 때문에 맞지만 않으면 큰 피해는 없죠. 그래도 이 대포들이 유감없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화력 집중을 위하여 밀집한 보병들의 전투대열 때문이었습니다. 그 효과는 마치....
이런 겁니다....
밀집된 보병 전투대열은 볼링핀과 같았고, 엄청난 운동 에너지로 투사된 거대한 쇠구슬들은 볼링공 역할을 하여 병사들을 핀을 쓰러뜨리는 마냥 쓰러뜨렸죠. 아 참고로 이 거대한 쇠볼링공은 맞으면 핀처럼 쓰러지는 것을 넘어서 뼈를 부수고 살을 찢어발기면서 사람을 말 그대로 고깃덩이로 만듭니다.(...)
이 쇠공을 그렇게 쏘아대도 적 전투대열이 안무너지고 계속 온다? 게다가 포병은 연사가 느리다?
그때부터 포병들은 이러한 산탄을 장전해서 전투대열에 대놓고 쏴버립니다. 일반 대포탄이 쇠구슬이었다면 이것은 말 그대로 적을 갈가리 찢어버리는 크고 알흠다운 거대한 산탄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그 샷건의 산탄이 커진 버젼이요....
이 대포로 전투대열이 와해되면 대포는 또 그 위력이 반감되기 때문에 기병들이 출동해서 흩어지는 적보병들을 한 군데로 양들 몰듯이 모아줍니다.
기병들의 주 무기는 옛날이나 이때나 다를 것 없이 갑옷만 걸치지 않았을 뿐 칼이 여전히 주무기이지요. 이 기병들이 또 적진을 몰아대면서 적 전투대열을 모으게 되면 아군 보병들과 포병들이 또 화력을 투사해서 적을 순살시킵니다.
이 무시무시한 병기들이 날뛰는 전장에 서있어야했을 병사들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하겠죠? 게다가 피하지도 못하고 반듯이 서서 전투대열을 유지하며 포화를 무릅쓰고 전진해야했습니다. 자칫하면 전투대열은 이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장교들 및 부사관들의 역할은 이 병사들의 대열을 어떻게든 유지시키고 교전거리까지 인솔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투대열을 유지하기 위해 군부는 병사들을 가혹한 군율로 다스렸고, 또한 화려하고 멋들어진 군복으로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려 했습니다.
대충 근대의 전투양상은 이런 식입니다. 즉 보병들의 밀집된 전투대열간의 충돌 및 이를 상쇄시키기 위한 포병들의 가세, 그리고 흩어지는 적 대열을 모으거나 추격해서 섬멸하려는 기병과 또 이러한 활약을 저지하려는 기병들의 격돌. 이러한 양상의 전투는 미국 남북전쟁에서 그 정점을 찍게 되는데, 이 게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게 됩니다.
2. 강선 그리고 미니에탄
1861년 4월 12일부터 1865년 4월 9일까지 미국에서 벌어진 내전인 미 남북전쟁, 미국 내전은 그 원인이 다양복잡했습니다. 흔히들 알고 있는 노예제도논쟁이 가장 큰 이유라고는 하지만 남북간의 경제적 격차, 각주의 권한 혼재, 미국 내부의 정치적 도덕적 가치관 충돌 등....
여튼 전쟁 원인은 뒤로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가자면, 이 전쟁에서 발생한 미군의 사망자 수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미군이 세계 각지 주요 전쟁에 참전하여 발생한 사망자보다 더 많습니다. 미 북군(연방정부군)과 미 남군 모두 합쳐 300만 이상의 병력이 동원된 이 전쟁에서 무려 60만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미국 전역에서 피를 뿌리며 죽어간 것입니다.
끔찍하죠? 믿기지가 않죠?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최강 먼치킨 미군이 이렇게 국가 내전에서 수십만명이 죽어나간 역사가 있었다니!
남북전쟁 시기 당시도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무기도 빼놓을 수도 없지요.
머스킷 장총은 이때에도 계속 쓰이게 되나, 부싯돌식 점화 장치는 뇌관식 점화장치로 교체되어 장전 및 우천시 사격도 어느정도 용이하게 해주었으며 무엇보다도 본격적인 강선의 도입으로 더욱 진일보하게 됩니다. 총신 내부에 새겨지는 강선은 총탄의 명중률과 위력을 극대화시켜주죠. 물론 이 강선총은 남북전쟁 이전인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도 존재하였으며, 나폴레옹의 영원한 숙적이었던 대영 제국군은 이 강선총으로 무장한 정예 경보병대를 집중 운용하여 나폴레옹 군대를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물론 나폴레옹은 강선총은 지지배들이나 쓰는 드러운 무기다! 라고 까댔지만..... (영국군이 운용한 라이플(강선총) 부대원들의 교전 모습)
하지만 이때의 강선총은 운용하기가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강선의 위력이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총탄이 강선에 꽉 맞물려야하는데,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이런 총탄을 만들수도 없었지요. 때문에 이 강선총을 운용하는 병사들은 탄환이 총신의 강선에 꽉 맞물리도록 탄환에 가죽이나 천뭉치를 똘똘싸서 밀어넣는 짓을 해야했습니다. 이 장전 방식은 매우 힘이 들고 게다가 더더욱 느리기까지 해서 골치아팠죠.
그런데 이러한 삽질을 더이상 안해도 된 것이 미니에 탄이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1840년대, 프랑스 군 대위였던 미니에 대위가 강선에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 탄환을 발명해냅니다. 이 탄환은 발사 순간 팽창하면서 강신과 맞물려나가며 강선의 효과를 톡톡히 발휘하게 되죠. 이로 인해 총의 사거리와 위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됩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문제가 발생합니다....
남북전쟁에서는 다양한 기술들이 펼쳐집니다. 유선 전신을 통한 전장상황 보고. 철도를 이용한 물자수송. 증기기관 동력으로 움직이는 군함과 철갑함 및 회전포탑의 등장....
하지만 이 기술의 발전과 다르게 육지의 전장은 매우 보수적이었습니다. 여전히 근대 전술의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거기다가 병사들의 무기는 옛날과 다르게 그 위력이 극대화된 머스킷 장총이었습니다. 강선과 뇌관식, 그리고 미니에탄으로 개수된 머스킷 장총은 그 명중률과 사거리가 치명적이었으며, 특히 사거리의 경우 400야드, 약 360미터를 넘는 거리가 됩니다.
게다가 대포는 과거와는 다르게 쇠구슬을 쏘는게 아닌, 충격신관을 이용한 작렬탄을 쏩니다. 이젠 이건 쇠구슬 굴러올 때 피하면 되지! 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냥 터지면 주옥되는 수준이 됩니다...
이쯤되면 전장은 완전 도살장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제는 사거리와 명중률이 과거와는 다르게 극대화된 총들을 들고 전투대열들이 맞붙습니다. 물론 교전 거리는 가깝든 멀든 맞붙는 순간 예전처럼 "아 빗나갔다. 착검 돌격!" 이런게 아니라 쏘는 것과 동시에 그냥 둘다 죽는 겁니다....목표 조준이 끝나고 발사하는 순간 너는 죽어있다.....는게 되어버리는 거죠. 게다가 남군과 북군 모두가 저격병들을 적극적으로 운용하였는데, 저격병들은 이 개수된 머스킷 라이플 뿐만 아니라 더더욱 우수한 후장식 라이플로 무장했고 이 라이플들은 수백야드 밖에서도 사람크기의 목표를 정확하게 쓰러뜨릴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장교들과 포병들이 엄청나게 위협받습니다.
일례로 미국 내전 당시 북군 군단장 존 세지윅 장군이 군단을 독려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제군들, 적의 총알이 여기까지 날아올 것같은가? 난 자네들이 부끄럽다네. 그들은 이 거리에서 코끼리도 못맞출걸세!.'
그리고 그 직후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 한발이 그의 왼쪽 눈을 통해 명중했고 그는 말위에서 떨어졌죠.....
그의 전사 소식에 북군 최고 사령관 그랜트 장군조차 재차 물을 정도로 충격과 공포였던 것입니다. 남북전쟁 당시만 해도 수많은 군 고위 장성들이 이렇게 총탄과 포탄의 희생양이 될 지경인데 하물며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
엄청나게 발전한 무기와는 다르게 그 무기를 뒷받침할 전술이 따라주지를 못한 것입니다. 남북군 고위 장성들 모두가 병사들을 지옥도로 끊임 없이 몰아넣었고, 어느 쪽의 힘이 다하느냐의 개념으로 계속해서 공격전술을 펼쳤기 때문에 전장에서의 도살로 인한 사망률은 급속도로 증가합니다.
일례로 프레데릭스버그 전투에서 북군 17개 여단들이 남군 1개 여단의 방어진에 돌격을 감행합니다. 남군 1개 여단 2천여명은 돌담 뒤에서 엄폐하여 돌격해오는 북군을 향해 사격해댑니다. 위력이 향상된 라이플로 무장한 소수의 부대가 수십배가 넘는 적부대를 상대로 방어전을 펼쳤고, 돌담을 향해 엄폐도 없이 진격하던 북군은 그야말로 서있는 과녁이 되어서 무참히 도살됩니다....
이 전투에 투입된 북군 중 돌담을 향해 전진한 17개 여단들은 거의 와해가 되다시피하고 전사자 수만 1만 2천명이 넘어갑니다. 반면에 남군 1개 여단 2천명은 고작해야 5백 남짓이었습니다.... 물론 17개 여단이 전부 달려든게 아니고 차례로 17번씩 축차투입되었다고는 하지만, 방어가 철저히 이루어진 요새화된 진지를 향해 돌격해대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짓이라는 교훈을 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짓거리를 또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이 재현합니다. 이때는 무려 기관총 진지에 병사들을 갈아 넣습니다....)
(대포가 없다고? 그렇다면 병사들을 존나게 많이 투입시키면 되겠지! 라고 해서 수만명의 병사들이 갈렸다....)
어찌 보면 남북전쟁은 근대식 전술의 마지막을 보여준 전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전쟁을 관전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등 각국의 장교들이 관전무관 자격으로 와서 전쟁을 목도하나, 미국 내전은 그저 이류 전쟁일 뿐이라고 치부해버리고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 전쟁에서 보여준 무기들의 무시무시한 살상력과 구식 전술이 보여준 한계를 무시해버린 것이지요. 그리고 이는 제 1차 세계대전의 비극으로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국 장교들 역시 미국 내전에서의 교훈은 싸그리 잊어버리고 잘 요새화된 진지로 병사들을 갈아넣었거든요....
어찌 보면 고작해야 총기의 위력이 좀 증가했을 뿐인데 전장에서의 살상률과 판도가 이렇게 커질 수 있느냐, 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겁니다. 물론 총기가 전장의 운명을 모두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위력이 극대화된 무기의 위험성과 효율을 크게 활용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태도로 일관하게 된다면 끔찍한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지금도 무기가 발전은 하고 있습니다만, 글쎄요.... 그렇다고 해서 과연 그 위력과 효율성을 잘 활용하여 최신의 전술을 이용한다쳐도 결국에는 죽어나가는 건 사람이니까 말이지요. 어지간하면 전쟁은 안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등따숩고 배부르게 살수 있지....
여튼 첫 글인데 좀 중구난방이고 어지럽긴 하군요. 다음에는 더욱 가다듬어진 무기잔혹사로 오겠습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