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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의 고전 <닥터 스트레인지>를 비롯하여 수많은 영화에서 핵전쟁 발발을 소재로 써왔다.
특히나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 혹은 전세계 간의 긴장을 인질로 핵미사일이 자주 영화에 등장한다.
그러나 헐리우드의 경우 적국과의 수 천 키로미터라는 물리적 거리로 인해
상황의 급박함보다는 무기의 파괴력에 집중한다.
하지만 한반도는 다르다.
이 좁은 땅덩이에서 핵미사일은 쏘는 순간 5분 내로 대응하지 못하면 망한다.
골프와 핑퐁의 경기장 스케일차이가 주는 속도의 상대성이라면 적절한 표현일까.
10년 전 북한이 핵무기의 보유여부에 오리발을 내미는 상황에 이 영화가 나왔다면 현실성이 떨어졌을 것이다.
이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다 아는 마당에 아주 적절한 시점에 영화 <강철비>를 제작했다.
각본과 각색까지한 양우석 감독은 현대전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총 들고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구시대 전쟁은 앞으로 벌어질 일이 거의 없을 거다.
이겨봤자 쑥대밭으로 만드는 소모전은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인적 재원은 특수부대나 비밀요원으로 집약될 것이고 군대라는 대규모 조직의 임무는 AI가 대신할 것이다.
최고 결정권자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선택을 하는 그림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그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물리적 인원과 속도는 과거와 현재가 압도적으로 비대칭을 이룬다.
그런 면에서 영화 <강철비>는 데스크의 결정을 설득할 수 있는 첩보를 쥔 요원이
현대전의 영웅으로 활약하는 과정을 잘 그려내었다.
간만에 마주한 연기 대결이 아닌 하모니
최고의 볼거리는 싸움 구경, 불 구경이라 했던가.
영화 <강철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강철 미사일 비’라는 불 구경 외에도
몸을 잘 쓰는 정우성의 북한 철우, 머리를 잘 쓰는 곽도원의 남한 철우.
어울리지 않는 두 캐릭터를 묶어 같은 목표로 향하면서도
묘한 갈등의 재미를 주는 정통적인 콤비 플레이를 선보인다.
철우라는 두 캐릭터는 한글 독음은 같지만 한자 뜻은 다르다.
이 설정부터 반도에 낀 약소국인 한민족의 처세술이 잘 드러난다.
좀 더 과대해석 하자면 한글은 현재이자 미래, 한문은 과거로 상정할 수도 있다.
결국 두 캐릭터는 과거 한문은 다르지만, 미래 한글은 같다는 한민족의 화합을 암시한다.
물론 철우라는 인물 작명이 한문으로 쇠철, 비우 <강철비>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
곽도원 배우는 늦은 데뷔부터 쭉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는 필모를 보여주고 있어서 신뢰도가 높다.
정우성은 10대에 일약 스타가 된 이후 제대로 연기를 보여줬던 것이 <내 머리 속에 지우개>였다.
그후 항상 영화적 과장과 일명 후까시가 들어간 역할을 맡아왔다.
아무래도 그의 짜릿한 잘생긴 외모가 한 몫 했으리라.
그러나 이번 영화 <강철비>에서는 리얼한 정극연기로 돌아왔다.
스타 정우성이 아닌 배우 정우성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또한 두 주연배우가 애드립이나 쓸데없이 힘 준 연기로 대결을 펼치지 않았던 점이 매우 좋았다.
조연 출신의 배우 중 스타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인해
일명 상대 잡아먹기 식 연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곽도원 배우는 자기 할 만큼 딱 하고 선을 그으며 프로페셔널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었다.
정우성은 20년의 스타 필모를 가졌지만 조연 출신인 상대를 제압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강철비>가 일종의 액션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정우성 특유의 부라리는 눈빛 연기를 과감히 버려 배우의 귀환에 성공했다.
신인 발견 원진아
끝까지 살아남는 단발머리 북한 처녀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은 ‘원진아’다.
그녀의 연기력이 잘 드러나는 장면은 친한 언니를 잃는 신파 장면이다.
수 초밖에 안되는 짧은 연기에도 가슴 한켠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단역 배우에겐 오히려 그런 단타로 치고 빠지는 것이 더 어렵다.
보통 여배우는 신인이든 기성배우든 어떻게든 예쁘게 찍히고 싶기 마련이다.
하지만 원진아 배우는 이미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감정에 충실히 얼굴을 뭉게주었다.
화장기 없는 촌스러운 북한 소녀 분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미모는 금방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미모가 드러나지 않은 것은 그만큼 망가지는 표정을 사리지 않는 열정 때문이라고 본다.
떡잎 좋은 원진아 배우가 영화판에 익숙해지면서 영악해지지 말고
지금처럼 감정에만 집중한다면 한국영화에서 더욱 값진 여배우가 될 것 같다.
리액션 모자란 액션 시퀀스
영화 <강철비>는 장점만 있지는 않다.
아무래도 양우석 감독의 전작이 드라마를 중점으로 끌고가는 <변호인>이어서 그랬을까?
액션 시퀀스에서 관객에게 불친절한 콘티가 두 군데 띄었다.
첫번째, 환풍구에서 정우성이 저격하려다가 무너지는 부분의 리액션 커트가 없다.
정우성이 저격하려는 커트와 환풍구 무너지는 커트 둘이 붙어 있었다면 이해에 어려움이 없었을 거다.
하지만 짧은 두 커트 사이로 하늘에서 미사일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죽고 건물과 자동차가 파괴된다.
그래서 무너진 환풍구에 휩쓸리는 정우성이 제대로 인지되지 않는다.
환풍구에 깔리는 철우의 리액션 커트 하나만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웠다.
두번째, 후반부 국군병원에서 조우진 배우가 아랫층의 한국군을 폭탄으로 잡을때 역시 리액션 커트가 없다.
함께 영화를 본 지인은 이 장면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한 마디로 폭탄이 터지니 아래층의 한국군이 죽었다는 정도로만 인지했다.
정확히는 폭탄 위에 시체를 쌓아 폭발력이 바닥으로 지향되면서
바닥 붕괴와 동시에 아래층의 한국군이 죽은 거다.
필자의 경우 C3나 C4 폭탄으로 폭파를 한 경험이 있어서 쉽게 이해하였지만
폭파 경험이 없거나 군 경험이 없는 관객은 이해하기 힘들었을 거다.
다소 촌스럽지만 천장을 올려다보며 깔리는 한국군 커트나
폭파된 바닥과 함께 카메라 앵글이 추락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액션 시퀀스의 기본은 가격자 커트와 피격자 커트의 액션과 리액션 리듬이다.
양우석 감독이 다음 작품에서는 이 부분을 간과하지 않길 바란다.
인상적인 OST 그리고 아쉬움
초반부 개성공단 강철비 시퀀스부터 전개된 OST가 귀를 사로잡았다.
언뜻 비상 경보를 떠올리는 사운드가 인상적인 음악은 전쟁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영화와 잘 어우러졌다.
단지 아쉬운 점은 기억에 남는 음악은 이 테마 하나 뿐이라는 것.
아차, 아니지… GD의 노래도 있었다.
GD는 러시아 중국에서도 듣는 세계적 아이콘이다.
백범 김구선생이 꿈꿨던 대한민국은 문화강국이었다.
실제로 <대장금>을 故 김정일이 봤다는 소문이 퍼지나 북한 주민도 보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유럽에서 전쟁을 하면서 크나큰 문화 열등의식에 사로잡힌다.
짧은 역사에서 비롯된 피해의식만이 아니라 실제로 고색창연한 예술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미국은 헐리우드를 개발하고 오드리 햅번 같은 유럽 출신의 배우를 스타로 만드는 마케팅 전략을 구상했다.
헐리우드 영화가 유럽에 침투되자 미국 문화 또한 빠르게 퍼졌다.
코카콜라로 유명해진 빨간 옷의 산타클로스는 북유럽의 구전이 미국에서 상업화되어 다시 유럽으로 역수출된 좋은 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며 카드 따위는 쓰지도 않았다.
이 말이 믿기지 않으면 프랑스 철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쓴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라는 책을 보라.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는 사람은 미국도 일본도 중국도 그리고 조선족도 아니라고 영화는 말한다.
반쪽 한반도에서 평화통일이라는 뜬 구름 잡는 단어를 써 온 지 어언 20년이다.
이제는 그 해답을 구체적으로 논의해 볼 시점이지 않은가.
양우석 감독은 반농담식으로 GD를 앞세우기는 했지만
이 영.화. <강철비>라는 문화 콘텐츠 또한 통일의 답이라고 제시한다.
출처 | http://yuminhouse.blog.me/2211670243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