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게에 관해, 그리고 최근의 사건들에 관해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몇가지 주제에 관해 글을 올립니다. 서로간의 입장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비공감 시스템
저는 비공감 시스템이 참 애매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래 추천/반대의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오래 전엔 가을하늘 아홉소녀같은 농담으로 쓰이면서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를 당한다는게 어떤 이유에서든 작성자에게는 심리적인 상처를 준다는 의견이 나타났고, 이에 따라 반대라는 노골적인 표현 대신에 비공감이라는 표현으로 순화하는 시스템을 채택하게 되었죠. 따라서 비공감을 누르는 행위는 너의 의견에 반대한다,는 강한 의미가 아니라 그냥 나는 너랑은 생각이 좀 달라, 라는 인상을 주려는게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비공감이나 반대나 받는 사람에게 결국 상처가 되는건 똑같죠. 왜냐면 누르는 사람도 명칭만 다를 뿐 똑같은 의도로 비공감을 누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는 너랑 그냥 의견이 다를 뿐이야'라는 의도로만 받아들여지길 기대하는건 너무나 큰 기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게 가능할거라는건 솔직히 말해 교과서적으로나 가능한 일이지 어디 백분토론이든 대학생토론회든 대선토론회를 쳐다봐도 나는 너랑 의견이 달라, 라고 말하면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오유에서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저는 비공감이라는 시스템이 의도는 매우 좋았으나 실질적으로 큰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한 시스템이라 생각합니다.
2. 싸드 그리고 비공감의 사용법
반대가 비공감으로 바뀌었지만 그 기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반대를 누르면 그 사람의 의견이 가려지고 클릭을 해야 댓글란이 펼쳐져 보이는 방식이었습니다만 비공감으로 바뀌면서 그런건 없어졌죠. 하지만 베스트에서 글을 추락시키는 기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최소한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다는게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 동의하신다면, 비공감이 베스트의 글을 추락시킨다는건 작성자에게 상당한 상처를 주는 기능이라는 점에도 동의하실거라 생각합니다. 베스트와 베오베만을 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베스트나 베오베에 올라간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자료를 보여줄 기회가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이유를 알 수 없는 비공감 몇 개 먹고 그대로 떨어져버린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런 걸 겪고도 '아 내 의견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Cfoot 뭐가 문제야 라는 반응과 묘한 복수심만 나타나죠.
비공감이 그냥 의견에 대한 비공감의 의미가 아니라 베스트에서 떨어뜨리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공감을 누른다는건 '니 의견은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겠어' 같은 기능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비공감 시스템의 의도랑도 다르죠. 비공감시스템이 의도한 바는 '나는 니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아'일 뿐 '그렇다고 니가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야'기 떄문입니다. 소위 싸드라는 것에 화가 나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견을 설파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게시판에서 탈락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아니, 글쓰기 권한을 막은 것도 아닌데 무슨 표현에 대한 억압이냐" 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제 생각에는 글쓰기 권한이 암만 주어져봤자 의견 공유가 제대로 될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으면 그게 무슨 민주적인 사횐가 싶습니다. 소수가 다수 의견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한다는건 소수의 몸을 묶어두고 입만 열어주는게 아니라 실질적인 의견 공유가 가능할 정도로 보장이 되어야 한다는거겠죠. 설령 그 결과물이 다수결을 통해 다수의 결과가 나올지라도 소수의 의견이 중도에 탈락해서는 안되는 일이 아닐까요? 소수의 의견이 추천수는 더 적을것이 뻔하지만, 비공감이 반대와 같은 기능을 하는 이상 비공감이 많은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는 지금의 공감/비공감 시스템을 문자 그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비공감은 최소한으로 눌러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나는 A라는 입장을 갖고 있는데, 상대방은 not A라는 입장을 가지고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notA라는 입장에 대한 근거가 충실하고, 괜찮은 논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 결론이 나와 반대되는 결론이더라도 비공감을 누르는게 아니라 공감을 누르거나 차라리 아무것도 누르지 않는게 좋아보입니다. 그것이 상대방의 의견을 링 밖으로 보내버리지 않으면서 건전한 토론을 가능케 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상식적인 욕설이나 광고글 같은 경우에는 거침없이 비공감도 누르고 신고도 먹여야죠.
3. 시게인이란 누군가
어젠가보니 시게인에 대한 주장을 하는 분이 계시던군요. '시게인'이란게 실체가 있는 주장이냐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오유인일 뿐이지 시게인이란건 없다, 시게인이라는걸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냐? 댓글이나 작성글? 그렇다면 댓글을 몇 번 쓴 사람이 시게인이고 글을 몇 번 쓴 사람이 시게인이냐? 제시할 수 없지 않느냐? 그러므로 시게인이란건 프레임에 불과하고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집단은 이런 식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같은 논리로, 오유인도 정의할 수 없습니다. 오유인은 누굽니까? 오유에 회원가입한 사람? 방문횟수 500번을 채운 사람? 오유에 글을 쓴 사람? 오유인이란 존재하지 않군요.
집단은 어떤 경우에는 방문횟수같은걸로 정해질 수도 있습니다만(도미노 피자 VIP회원이라던지...ㅂㄷㅂㄷ), 지금 이 상황에 적절한 것은 '유사한 성향이나 가치관, 규칙을 받아들여 공유하고 소속감을 가진 사람들'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숫자로 정의한 집단은 우리가 실제 정의하고자 하는 집단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베에 호기심에 가입했으나 분위기가 이상해 뛰쳐나와 다시는 들어가지 않은 사람보고 일간베스트 로그인1회=일베1충 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요. 반대로 일베에 글을 쓰지 않더라도 일베의 용어를 공유하며, 일베의 정치적 성향을 받아들였으며, 일베만의 행동양식을 따라하는 사람들은 일베1충이라고 불리죠. 시게인을 정의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시게인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비슷하게 정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시사게시판의 성향에 동조하고, 시사게시판의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소속감을 가지는 사람 말이죠. 타 게시판을 보면 자게인 연게인 컴게인 애게인들 별의별 게시판인을 자청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가 그 게시판의 문화를 어느정도 좋아하며, 스스로 그쪽에 속하고 싶어하기 떄문이어서가 아닐까요?
4. 시게에서 문제가 되는 것 + 알바몰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시게에서 시사 이야기 하는거 문제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의 의견은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시게에서 문재인 사진 올려서 베스트가고 그러는거 상관 안합니다. 연게도 사진 몇 장 올려서 베스트가는데 시게에서 문제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시게에서 화를 내는 것은, 시게에 대한 비판을 근거 없는 알바몰이로 몰아가는 행위와 이것이 해결되지 않게 방치하는 기묘한 문화에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알바가 뻔히 밖에 존재한다, 옵알단 이야기도 못들어봤냐, 하다못해 오유야말로 국정원 알바가 존재한다는 것의 산 증인 아니냐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알바가 존재하는거랑 '당신이 알바야'라고 말하는거랑은 차원이 다릅니다. 국정원 알바가 있었을 때, '알바가 존재한다'라는 느낌은 있었으나 '당신이 알바야'라고 말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증거는 고작해야 음모론이나 뇌피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모 오유저님의 노력을 통해 추천인 명단을 대조하여 규칙성을 발견했고 그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아이디까지 지목할 수 있었던거죠. 즉, '당신이 알바야'라는 말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정도의 물증은 갖춘 다음에 말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증거가 없이 무작정 응 알바 응 안들어, 라고 대답하는건 상대방에게 큰 실례입니다. 자기가 공들여 쓴 의견이 고작해야 알바들의 복붙댓글 정도로 폄하되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반대나 다름없는 비공감을 먹는데, 그에 대한 근거 한 줄 조차 제시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화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죠.
그리고 이런 알바몰이가 한 두번 있었던게 아니었습니다. 올해만 해도 군게, K값, 원전, 문케어까지 수많은 주제들에서 빠짐없이 등장했죠. 이런 주장들이 옳고 그른지와 이걸 주장하는 사람들이 알바인지 아닌지는 별개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실질적으로 누군가가 추천인 목록을 대조하거나 아이피를 대조해서, 또는 어떤 프로그램에 따른 조직적 움직임의 낌새를 지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알바가 활동하네요, 오유가 영향력이 크네요, 대선이 다가오네요 같은 미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일은 비일비재했죠. 듣는 사람이 바보도 아니고 이면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습니다. 이를 바라보면서 저는 오히려 오유가 과거 국정원 알바에게 공격한단 전력이 무기로 쓰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댓글부대의 공격을 받았다는 아픈 과거나 그것을 이겨냈다는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그것을 무기 삼아 휘두르는 모습이요. 그 무기에 상처입은 사람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사건에 이르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5.
누군가는 커뮤니티에 대해 소속감 좀 갖지 말라고 말합니다. 저도 과도한 소속감을 갖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사실 '과도한'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떄문에 무의미한 말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어디에든 과한 관심을 쏟는 것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죠. 그러나, 커뮤니티를 오래 들락날락하면서 아무런 소속감이 없는 것이 쿨해보일진 몰라도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인포메일 시절부터 이 사이트를 알아왔고, 회원가입이라는게 생기기도 전부터 오유를 해왔으며, 오유가 촌스러운 노란배경에서 촌스러운 파란배경으로 바뀌는 걸 지켜봐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무위키에 써져있는 수많은 사건사고들을 거의 전부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시간들을 거치면서 오유에 대한 애정이 커졌다가 작아졌다 하기는 했으나 전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죠. 저는 가입 기간에 비해 활동자체를 많이 한 유저는 아니지만, 최근 들어서는 정말 사이트가 힘들어지는게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이대로 사라지게 내버려두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시간을 내서 이런 글이라도 작성하게 되었네요. 결국 지금의 사건이 이렇게 커지게 되었으나 결국 그 끝에 사이트의 종말이 있는게 아니라 그냥 사건사고에 한 줄 추가하고 계속 운영되는 모습이 있길 바랍니다. 짧은 생각이지만 그래도 해결을 향해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생각해 주십셔.
자게였으면 야짤이나 하나 뿌리고 가는건데 왠지 글쓰다 보니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것 같군요. 랜덤짤 하나 달고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