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이 최초로 황제라는 개념을 만들고 칭했음은 잘 아실겁니다. 말그대로 최초였고 통일을 이룩한 군주라는 명예롭고 위엄넘치는 타이틀에서 비롯된 무한한 자신감에다 예전부터 왕권중심의 정치를 추구해온 진시황의 사상과 이념에서 기인한 탓인지 이 시절 진시황이 칭하고 의도했던 '황제'라는 자리가 갖는 의미는 이후로 수없이 등장한 중국의 역대 황제들, 특히 진시황 시절 직후의 한나라 유방의 그것과는 뭔가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시황 이후 진을 멸하고 한을 세워 거의 진시황 시절직후 황제가 된 유방 같은 경우는 진시황 마냥 마치 자신이 우주적 주재자로서 지상에 출현한 것이라는 의의는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진시황처럼 칭제이후 자신이 살던 궁궐을 '극묘(천제(天帝)가 거주하는 곳이며 북극성의 중심이라는 뜻)' 로 칭하거나 천체를 흡사 그대로 궁궐에 재현하지는 않았다라는 거죠.
특히 진나라와 한나라의 황제의 개념, 양쪽이 구별되는 점 중 하나는 황제와 왕의 관계입니다. 황제와 왕 중 어느 쪽이 더 우월한지는 아실겁니다. 흔히 번왕제라 해서 황제국에도 왕은 제후로서 엄연히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진시황의 칭제 이후 왕위는 소멸해버립니다. 아마도 지고하신 황제라는 존재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군주노릇 할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라는 조치였을겁니다. 반면에 유방은 황제란 제후왕이라는 존재를 전제로 하여 추대되는 것이며, 또한 제후왕들의 왕위는 황제의 권위에 의해 보장된다는 식으로 상호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합니다. 이러한 부분 역시 차이라 할 수있을 것 같네요.
한가지 더 짚어볼 점은 유방은 황제가 되기 이전부터 왕으로서 이미 천자(天子)였다는 점입니다. 흔히 천자하면 황제를 떠올리지만 이는 진시황이 최초로 황제를 칭하기 이전인 주나라 시절부터 존재오던 용어로서, 주나라의 왕은 천자로 불렸습니다. 여기서 천자는 황제와는 용어에 내포된 사상적 기반이 다릅니다. 진나라의 경우, 황제가 세계질서의 주재자이고 그 지위를 인위적인 무한한 자신감에서 찾았다면 천자는 세계질서의 주재자이나 그 지위의 근거를 천명의 수용에서 찾았습니다. 여기서 차이를 감안하고 비교해보자면 천자로서의 위치가 강조될 때 신비주의적 제의가 중시되리라는 것을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황제라는 관념 또한 현실에서 구체화 될 때에는 당시의 신비주의적 경향에 영향을 받아 주술이나 제의와 결합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양쪽 간의 차이는 오히려 제의에 임하는 위상의 차이로 나타납니다. 아닌게 아니라 진시황이 황제가 된 이후로 스스로를 천자라 칭하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 제호를 정해서 칭제했고 유방은 제후왕들의 추대로 황제가 되었죠.
이러한 형식의 차이는 한나라에서 각 황제들의 즉위 의례에 의해 계승된다는 점에서 진나라의 황제관과 한나라의 황제관에는 어느정도 차이가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진에서 한으로 넘어가는데에 그리길지 않은 세월이 지나지 않았기에 변질이 존재하지 않을 법도 하건만 이러한 차이가 있으니 흥미롭더군요. 아마도 독재적인 진시황의 황제체제의 폐해에 진절머리나서 뜯어고쳤겠죠.
그냥 뇌내망상을 끄집어다 끄적여보았습니다. 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