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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존경하는 아버지 이야기
게시물ID : freeboard_16850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늘의유-우머
추천 : 14
조회수 : 24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12/19 16:12:35
아버지는 고등학교만 나오셨고 올해 환갑이십니다.

젊은 시절 수입 가전제품 AS맨으로 직장 생활 하시다가 30년전에 자영업을 시작하셨어요. 흔한 순돌이 아빠같은 동네 전파사.
그래도 원래 전기전자 기술을 배우셨던 분이신지라 자영업도 금새 키우시더군요. 당시 마지막 월급 23만원이었는데 자영업 첫달 월 순수익이 65만원이라 하셨으니...
경기가 당시 무척 좋았던거도 있지만... 그후 아버지는 전파사를 확대해 전기 기술을 이용하여 전기공사업체로 사업자를 바꾸시고...
전기업 자체가 경기를 타지 않는다는게 IMF라는 것도 저는 언론을 통해서만 느꼈지 당장 저희집이 쪼그라 들고 이런건 잘 모르고 보냈습니다.

여튼 그리고 시간이 지나 현 시점에서 보면...

아버지는 빚 없이 예금, 적금, 부동산 포함하여 순자산이 10억이 넘는 이 사회에서 공인된 중산층으로 오르셨더군요.
아파트는 없으시지만 빌라, 일반 주택 그리고 현재 자영업중인 상가건물까지...
월세 200 정도 나온다고 하시니 노후도 어느정도 보장되고 있습니다. 이정도 되시니 아버지는 여행도 국내, 해외 안가리고 자주 나가시게 되고... 어머니에게 엄청 잘해주십니다.
정치에 관심은 어느정도 가지고 계셔서 현재 여당에 당원으로 당비도 꾸준히 납부하시고 적극적으로 지지하십니다.
스마트폰으로 뉴스 보시다 야당이나 안찰스님 욕도 종종 하십니다.
이따금 전철역 주변에 장애인 분들 보시면 돈은 안주셔도 빵과 우유같은거 자비로 사서 꼭 드리십니다.
아버지 왈 "몸 건강한데 일 안하고 구걸만 하는 사람은 사람 취급도 안하지만 어쩔수 없는 몸때문에 일을 못하는 사람은 안타깝다" 라고 하십니다.

30대 중반인 저는 학창시절 그럭저럭 보내고 4년제 대학에 이어 대학원까지 졸업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이름 들으면 잘 아는 그런 직장 정규직으로 재직 하였습니다. 남들이 얼핏 보기엔 그냥 저냥 잘 살아가고 있다고 보였겠죠.
그런데 저는 솔직히 머릿속이 매일 복잡하였습니다. 평생 직장도 아닌데 나중에 나이먹고 나서 노후에 머하냐..
또한 업무라는게 잘한다는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사람 많은 곳에 흔히 보이는 정치도 참 피곤했습니다.
저에게 가진 재산이라곤 아버지가 물려주신 2억 상당의 작은 빌라 하나, 10년 다된 중형차 그리고 4천정도의 개인연금과 비슷한 액수의 예금뿐이었죠.
이것도 적은게 아니라 생각 하신분들도 많겠지만 아버지 버프 때문에 이정도 가지고 있는거지 사실 저도 아버지 아니였으면 노후 걱정이 아닌 현실 걱정부터 했을지 모릅니다.

결국 직장생활만 가지곤 답이 없다고 판단, 사람이 뭘 해도 자기 기술과 자기 사업이 있으면 좋다는 말에 아버지에게 SOS를 요청했습니다.
보통 부모님들은 그렇죠.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나같은 일 하지 마라"
근데 아버지는 다르셨습니다.
"내가 하는 일? 이거 괜찮아~"

아버지 옆에 따라다니며 조수 노릇 하며 일을 배웁니다. 컴퓨터 앞에 두들기며 앉아만 있던 저에게 현장 공사 일은 처음엔 좀 쉽지 않았습니다.
자격증 공부도 병행하며 열심히 따라다니다 보니 슬슬 '일의 보람'이 뭔지 느껴지더군요.
사실 대다수 사무직이 그렇겠지만 자신의 일이 성과로 직결 되는건 많이 없지요. 그리고 100만큼 일했어도 우리 월급 통장엔 70 꽃히면 많이 받는다는 생각 합니다.
하지만 현장일은 정직합니다. 처음에 기존 전기를 모두 철거하고 새롭게 배선하고 전등, 스위치, 콘센트 모두 달고 나중에 주인 앞에서 불을 딱 키면 확 들어올때 뭔가 뿌듯~ 하더군요.
전기 사고 현장 복구도 보람찹니다. 차칫하면 누전이나 전기 파열로 감전이나 화재 위험 날 구간을 찾아 제거 해주고... 사람들에게 박수 받는 직업이더군요.
일한만큼 가져가는 것도 좋고...

그런데 저는 정말 우물안에 개구리였습니다. 자영업자라면 당연히 알아야 하는 세무와 기본적인 법률 상식.
아버지는 쓱쓱 혼자 계산기 두들기시며 다 하시는데 저는 옆에서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더군요. 아버지는 천천히 가르쳐 주신다 하셨지만... 저는 학교에선 왜 이런 실전 교육은 안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보면 학교 교육이라는게 기초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일련엔 기득권에게 길들이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모르겠습니다만 저 학교 다닐때 0교시, 야간 자율(?)학습 같은건 일반 고리타분한 직장에서 흔한 연장 근무등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늘상 가르치던 성실 할 것, 모나지 말 것, 사고 치지 말 것... 이 모든것도 직장생활과 비슷하지요.
그게 나쁘다는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뭔가 실무적인 교육이 생각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와 일하며 대충 버는 돈을 계산 해보니 월 800~1000 정도는 순수익으로 가져가시더군요. 아버지는 가장 잘 벌때는 월 2천까지도 순수익으로 가져가셨다는데 그땐 저녁까지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어서 지금은 일부러 적당히 하십니다.
9시 출근 5시 퇴근을 정확하게 지키시고... 저는 3시 정도에 퇴근 시켜주십니다.
이 바닥 고질병인 미수 문제에 있어서도 아버지 나름대로 조건을 걸고 일하시더군요.
"당장 빌라 신축같은 큰 공사 같은거 무조건 입찰 보고 들어가려고 하지 마라. 그런거 잘못하면 한순간에 훅간다. 차라리 자질구레한 동네 리모델링 위주로 해주는게 안전하다."
이런 삶의 지혜 같은게 오랫동안 자영업 하시면서 느끼신 노하우겠죠.

정말 무수저에서 중산층까지 상승한 아버지를 저는 제일 존경하고 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때마다 멋쩍은 표정이 아직도 기억 나네요.
요즘 와서 느끼는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절대로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독서든 경험이든 자신이 직접 알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책가방이 길면 똑똑하고 세상살이가 능수능란할거란 편견, 반대로 책가방 끊이 짧으면 무식하고 저돌적일거라는 편견. 정말 이 모든게 편견에 불과하더군요.

그런데 반전이 하나 있긴 했습니다.

아버지 고향친구분들에게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니까...
"XX이?(아버지 이름). 갸 공부 잘했어. 학교에서 전교 1등 했어... 집이 가난하니까 먹고 살려고 기술에 일찍 뛰어든거야."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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