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모든 공모는 여기서 비롯됐나니" (
http://todayhumor.com/?military2_98) 에서 이어집니다. 못 보신 분은 보고 오셔야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1. 초기 공모의 탄생
바지선에서 띄운 기구, 경순양함에 태운 복엽기, 수상기 운반함에서 시작된 '공모'는 영국과 프랑스, 일본에서 더욱 고도화되었다. 여기에 가장 앞장선 것은 영국이었다. 영국 해군은 자국의 구식 군함 및 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효용을 잃은 군함에 항공기를 탑재해 운용하는 실험을 계속했고, 이 과정에서 적잖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지만 끝끝내 누가 보더라도 '공모' 같은 군함을 건조할 수 있었다. 지난 편 말미에 사진으로 소개된 HMS 아르거스Argus와 HMS 이글Eagle이 바로 그것이었다.
위장도색 (함의 진행방향 등을 관측자가 혼동하게 하는 용도의) 을 한 채 항해하는 HMS 아르거스. 뒤쪽은 리벤지급 전함.
HMS 아르거스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9월에 준공 (=완공) 되었다. 이탈리아의 주문을 받아 건조하던 대형 여객선 콩테 롯소Conte Rosso가 전쟁으로 준공되지 못 하고 조선소에 박혀 있던 것을 영국 해군이 접수하여 공모로 재활용한 것이었다. 기존에 건조된 모든 공모와 차별화되는 아르거스의 특징은 최상층 비행갑판 위에 그 어떤 구조물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본래 최초설계안에서는 여타 공모와 비슷하게 비행갑판 양쪽에 마스트, 함교, 연돌이 위치해 있었으나 HMS 퓨리어스가 알려준 소중한 교훈 - 발진과 착함을 모두 할 수 있으려면 비행갑판은 텅텅 비워둬야 한다는 - 이 아르거스의 설계에도 영향을 주어, 최종적으로 준공된 아르거스는 비행갑판 위에 그 어떤 것도 없는 형태가 되었다. 이로써 우리가 익히 아는 공모의 형상이 완성된 것이다.
그럼 사라진 구조물들은 어디로 갔을까? 가장 큰 난관이었던 연돌은 기존의 수평식에서 수직식으로, 그것도 유도연로로 바뀌었다. 다시 말해 서 있어야 할 굴뚝을 눕힌 뒤 연기를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관을 추가로 장착한 것이었다. 이로써 아르거스에서 발생하는 연기는 함미를 통해 배출되었다. (이 방식은 이후 일본의 공모에도 비슷하게 적용되었다만…) 함교는 전부 비행갑판 아래로 옮겨졌다. 딱 하나, 조타실만 승강식으로 설치되었다. 즉 함재기가 비행갑판을 사용할 때면 비행갑판 아래로 내리고, 그 외의 상황에서는 다시 갑판 위로 올려서 사용한 것이다.
비행갑판 아래 전체는 격납고가 되었다. HMS 퓨리어스의 격납고가 전부 갑판 따로, 후부 갑판 따로여서 사용이 극히 불편했던 점을 감안해 아르거스의 격납고의 내부는 전후부 구분이 없는 구조를 갖게 되었다. 여기에는 함재기 20기를 탑재했고, 이를 비행갑판으로 올리기 위한 2기의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었다.
아르거스의 건조를 통해 공모를 건조의 경험을 쌓은 영국 해군은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번에는 HMS 이글의 차례였다.
이글은 제 1차 세계대전 발발 전 칠레의 주문으로 건조하고 있었던 드레드노트급 전함 알미란테 코크라네Almirante Cochrane가 대전으로 인하여 건조가 중단되고 방치되어 있던 것을 영국 해군이 구입해 개조한 공모였다. 배수량은 14000톤급인 아르거스의 약 1.5배에 이르는 22000톤이었고, 기관의 출력은 2.5배인 5만 마력이었다. 속력은 아르거스보다 약 4노트 빠른 24노트였다. 모로 보나 아르거스보다 훨씬 큰 체급의 공모였는데, 의외로 탑재기는 똑같이 20기를 수용할 수 있었다.
갑판 위에 있었던 구조물을 최대한 '정리'해야 한다는 점은 이글과 아르거스 모두 같았다. 그러나 아르거스가 구조물을 제거해 갑판 아래로 옮김으로써 구조물 문제를 해결했다면, 이글은 색다른 해결법을 제시했다. 그것은 상부 구조물을 한 곳에 모아서 집중배치하는 방법이었다.
항해중인 HMS 이글. 어디서 많이 보던 것 같다.
이글의 함교와 마스트는 제거되지 않고 오른쪽 구석에 모이게 되었다. 어디에 있든 갑판 위에 있으면 난기류를 형성하는 연돌만은 아르거스와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되었지만, 여전히 상부 구조물이 상부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런 설계는 멀리서 군함을 보면 마치 수평선 위에 섬이 있는 것과 같다 해서 아일랜드형 설계로 불리게 되었다. 반면 아르거스처럼 갑판을 아예 비우는 방식은 플러시 덱Flush deck) 설계라고 불렸다. 이글에서 첫 선을 보인 아일랜드형 설계는 갑판 위에 난기류나 무풍지대를 형성하지 않기 때문에 함재기의 발진 및 착함에 지장을 주지 않았다. 또한 항해와 함재기 통제에 유리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후 공모 설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근대적 공모를 만들어낸 영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저번 편에서 쓸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공모 HMS 퓨리어스를 추가로 개조했다. 퓨리어스의 실용성을 없애는 요소였던 마스트나 연돌 등이 전부 철거되어 비로소 퓨리어스의 전부와 후부가 연결된 일체형이 되었다. 함재기는 달리고 싶다 또한 이글에서 보인 실험정신을 영국 해군은 퓨리어스에서도 빼놓지 않았다. 개조를 통해 퓨리어스의 갑판을 하나 더 늘린 것이었다.
이미 통짜 비행갑판 하나가 설치된 마당에 어디에 또 비행갑판을 놓느냐 하겠지만, 아직 비행갑판을 놓을 곳은 하나 남아 있었다. 바로 공모의 배 부분이 끝나는 비행갑판 아래의 상부갑판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개장공사를 끝마친 HMS 퓨리어스의 모습. 제일 위도 비행갑판, 그 아래도 비행갑판으로 쓸 수 있었다.
이러한 설계를 2단식 갑판이라 불렀는데, 이러한 설계를 통해 영국 해군은 발진과 착함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하단의 갑판은 발진에도 착함에도 쓸 수가 없었다. 결국 퓨리어스의 하단갑판은 폐쇄되었고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하단갑판에 대공포를 놓아서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2단식 갑판이라는 아이디어는 훗날 일본으로 전달되어, 일본의 몇몇 공모에도 채택되었다.
2. 초기 공모의 완성, USS CV-1 Langley
미국은 시종일관 항공기 산업에서 선두에 서 있었다. 하지만 공모 분야에서는 아니었다. 최초로 함선에서 비행기를 날린 것도, 최초로 함선에서 비행기를 착함시킨 것도, 수상기가 물에 내려앉으면 크레인으로 끌어올려서 사용하는 실험을 했던 것도 미국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미국은 공모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영국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초기 공모를 완성 단계로 끌어올렸던 1919년이 될 때까지 미국이 공모 분야에서 진행한 실험은 전함 USS 텍사스Texas에서 솝위드Sopwith 사의 전투기 카멜Camel을 발진시키는 실험을 한 것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미국은 제 1차 세계대전에 뒤늦게 참전했고, 또한 참전병력 대부분은 육군이었다. 동맹군과 치열한 해전을 벌여야 했던 영국과 달리 미국은 새로운 종류의 군함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전쟁은 끝났고, 공모는 이제 실험적인 군함이 아닌 당당한 해군 전력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미국도 세계적 추세에 늦지 않기 위해 1919년 시험삼아 공모를 건조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영국이 그간 벌인 삽질과 교훈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고, 그 덕택에 미국은 1921년 첫 공모를 시행착오 없이 완성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미국 해군 첫 번째 공모, USS CV-1 랭글리Langley였다.
항해중인 USS 랭글리. 몇몇 특징이 눈에 보이는가?
랭글리는 본래 함대에 석탄을 공급하는 대형 보탄선이었다. 배수량은 약 13000톤이며 163미터의 비행갑판을 갖추고 33기의 함재기를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엔진의 출력이 고작 7200마력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낼 수 있는 속력은 15노트 정도가 고작이었다. 또한 HMS 아르거스와 같은 플러시 덱, 다시 말해 비행갑판 위에 아무것도 없는 설계를 채택했다. 아르거스와 다른 점은 연돌을 처리하는 방식이었는데, 아르거스가 유도식 연로를 설치하여 함미를 통해 연기를 처리한 반면 랭글리는 선체에 직접 연결된 연돌을 비스듬하게 올려 비행갑판 옆으로 빠져나오도록 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갑판 위로 보이는 두 개의 구조물이 바로 그것이다. 재미난 것은 이 연돌이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랭글리는 기도起倒식 연돌을 채택했던 것이다. 저 두 연돌은 평시에는 일어서 있지만 함재기를 발진, 착함시킬 때는 수평으로 누워서 연기가 최대한 비행갑판에 영향을 주지 못 하도록 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격납고의 처리였다. 아르거스와 달리 랭글리는 갑판 하부의 격납고가 뻥 뚫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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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한 게임(월드 오브 워쉽) 화면. 아래쪽이 그야말로 휑하니 열려 있다. 사실상 배 위에 임시로 구조물을 올리고 그 위에 비행갑판을 만든 거 아닌가 싶을 만큼.
이러한 개방식 격납고는 바람이나 파도, 바닷물로부터 함재기를 보호하기 좋은 설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개방식 격납고의 최대 장점은 상부 갑판의 전 부분을 격납고로 쓰기 때문에 격납고를 매우 넓게 쓸 수 있다는 것, 그로 인해 격납고 안에서 거의 모든 작업을 처리할 수 있고 비행갑판은 오로지 함재기의 발진과 착함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공간이 넓어지기 때문에 승무원의 활동이 크게 제한되지 않으며 만일 폭탄이 격납고 안으로 떨어진다 해도 폭발 에너지가 분산되어 함선을 보호하기에도 유리했다.
하지만 랭글리의 15노트밖에 안 되는 속력은 공모로서 일선에 배치할 수 없게 만들었다. 1937년 랭글리는 비행갑판 앞쪽 일부가 제거되어 수상기 운반함으로 개조되었고, 1942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P32 전투기를 싣고 자바 섬으로 이동하던 도중 일본 항공기 편대의 공격을 받아 함선 전체에 불이 붙었다. 항해가 불가능해진 랭글리는 미국 구축함에 의해 처분되었다. 사실상 실전경험은 전무한 셈인데, 그럼에도 랭글리는, 그리고 랭글리의 설계는 이후 미국 항공모함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가 있었다.
이제 미국도 항공모함 건조에 뛰어들었고, 훌륭한 성과를 거두며 이후 미국의 명품 항공모함을 탄생시키는 초석이 되었다. 그럼 이때까지 일본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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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본 공모까지 다룰 예정이었지만 잘랐습니다. 아예 다음 편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다루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사진자료도 미리미리 찾아두고.
그리고 저번 편에 미처 말하지 못 했던 것.
왜 공모가 느린데 함재기를 발진시키지 못 하는 것인가?
-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력, 곧 띄워 올리는 힘이 필요합니다. 양력을 충분히 얻기 위해서 비행기는 일정한 속도 이상으로 활주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상의 활주로는 길기 때문에 비행기가 이륙에 필요한 양력을 얻을 때까지 활주할 수 있지만, 공모의 비행갑판 또는 활주대는 짧으므로 지상에서 하듯 비행기를 운용할 수 없습니다. 짧은 비행갑판에서도 비행기를 띄우기 위해서는, 1) 비행기를 더 빠른 속도로 발진시키든가 2) 일시적으로 이륙에 충분할 만큼만 양력을 증가시키든가 다른 수가 필요했었던 것이죠.
1)에 해당하는 방법으로는 캐터펄트가 있습니다. 캐터펄트 위에 비행기를 놓고, 캐터펄트를 이용해서 고속으로 비행기를 날려버리면 그때 발생한 양력으로 발진할 수 있습니다. 요즘 항공모함에서도 이 방법을 채택하고 있지요.
2)에 해당하는 방법은 '맞바람 이용하기'입니다. 쉽게 말해 비행기가 아주 빠른 속도로 활주할 때와 유사한 환경을 바람을 이용해 조성하는 방법인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공모가 맞바람을 맞으며 전속력으로, 더 빨리 질주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일시적으로 비행갑판 위에 자연풍 이상의 풍속 (<연합함대 공모>에 따르면 합성풍력合成風力)이 조성되어 비행기의 활주거리가 짧아지는 효과를 얻었던 겁니다요. 캐터펄트가 없었던 과거 일본의 공모는 모두 이런 식이었습니다. 막말로 맞바람만 아주 세다면 낙하산을 펴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활공이 가능한 걸 생각해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