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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단편소설) 나의 꿈
게시물ID : sisa_10029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과마루
추천 : 1
조회수 : 42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2/15 23:4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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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광은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이 되었다. 오랜 싸움의 결과라기엔 싸운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고, 흙수저의 승리라기엔 아주 가난한 부모를 두진 않았다. 그러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제 진광이 국가 최고의 권력자라는 것이었다.

진광이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은 국회에서 매국친일파의 명맥을 이어온 자유한국일당을 박멸하는 일이었다. 그는 따로 법안을 상정하거나 그들을 고발하지 않았다. 바퀴벌레들이 법안을 만들고 집행하는 당사자들이기에 바퀴벌레들의 법안을 따라 그들을 심판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는 중대사가 있다며 자유한국일당의 의원들을 한날 국회에 불러 모았고, 군인들을 동원해 모든 출입구를 틀어막은 뒤 사살했다.

한날 한시에 자유한국일당의 모든 국회의원이 사망했다. 다만 외국에 현지 시찰 및 견학을 이유로 나가있던 의원 단 한 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는 자기 당의 의원들과 일절 연락이 되지 않자 눈치채고 귀국을 포기했다. 이제 국내에 자유한국일당 의원은 없었다. 모두가 해당 의원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으나 아무도 입을 열어 비난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는 간간히 앓던 이가 빠져 속 시원하다는 류의 글만 찾아볼 수 있었다. 자유한국일당에 묻지마 표를 던져오던 노인들은 강력한 정권의 친일청산 의지 앞에서 침묵했고, 자유한국일당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던 이들은 가슴에 맺혀있던 큰 덩어리 하나가 내려간 것처럼 시원하게 생각했다.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했으나 나오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여러 번 시도되었던 청산의 결과가 너무 참혹했기 때문이다. DJMHJI도 누구도 그들을 완벽하게 청산하지 못했다. 검사와 판사와 경찰과 국회의원, 재벌, 변호사 모두가 그들의 편이었다. 그렇기에 제도적으로 시간을 들이고 모든 적법 절차를 거쳐 그들을 청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진광의 오랜 생각이었고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이었다.

며칠이 지나 여론이 파악됐다고 생각한 진광은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스스로 발표했다.

자유한국일당은 일제강점기 때 부를 축적한 친일파와 그 후손들로 이루어져 이승만 정권 때의 부정선거를 비롯해 이 땅의 모든 국정농단에 꾸준히 참여해 왔으며, 전쟁으로 인해 반북 정서를 가진 노인들을 현혹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삼고 꾸준히 악행을 일삼아 온 바,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여 모두 의원을 그만 두게 했습니다. 또한 자유한국일당 의원들의 재산은 모두 부정축재한 것으로 판단하여 일가와 친척들 재산까지 모두 몰수할 것이며 부정축재가 아닌 부분에 대하여 재산으로서의 소유를 인정하여 향후에 돌려줄 것입니다.”

자유한국일당 의원들의 집은 진작에 초상집 분위기였지만 이 발표로 인해 집집마다 곡성이 끊이지 않게 되었고, 국민들은 지독하게 오랜 세월 동안 꿈 꿔 왔던 부정축재한 재산 환수발표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뻐했다. 대한민국이 울음바다였다.

뒤늦게 상황이 절대 예전같지 않음을 알아챈 일부 사람들이 해외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연관된 인물은 이미 출국금지가 내려진지 오래였다. 오랜 세월 권력을 독점하고, 성상납을 받고 마약파티를 벌여도 구속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오만하게 살아온 그들은 너무나 많은 증거를 남겨두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XXX 성접대 리스트만 검색해도 나오는 이름들은 그 동안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단지 인터넷 상의 범죄자로 살고 있었으나 이제는 말 그대로 바람 앞의 등불에 불과했다.

일사천리로 의원들과 그 집안을 처분해버리자 난리가 난 것은 남아있는 권력자들이었다. 국회의원이 아니라도 이 땅에는 치워야 할 쓰레기가 넘쳐났다. 그 중에서도 진광이 두 번째 목표로 삼은 것은 소위 조중동으로 불려온 극우신문들, 그리고 한경오로 불려온 입진보신문들이었다.

바퀴벌레만큼 질긴 생명력을 가진 이들답게 이들은 이미 진광의 행적을 찬양하는 기사를 열심히 쏟아내고 있었다. 아무런 배경도 없는 대통령에게 조중동이 찬양을 하는 일도 처음이었고, 아무런 배경도 없는 대통령에게 한경오가 중립적 스탠스라며 비수를 들이대지 않는 일도 처음이었다. 한때 대통령의 부인은 로 칭하는 게 맞다면서 목에 핏대를 바락바락 세웠던 한 신문은 진광을 키워낸 어머니를 두고 국모로 칭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오는 세월 동안 이들의 이중적인 잣대와 구역질나는 아첨, 그리고 틈만 나면 꺼내들던 비수를 신물 나게 보아온 진광이었다. 뻔질나게 측근들에게 자신을 연결시켜 달라며 진상할 게 있다고 연락을 취해오는 것 같았지만 가차없이 한날한시에 잡아야 할 자들을 잡아들였다. 조센일보의 방 사장과 성접대에 연루되었던 모든 이들은 진광이 직접 쏘는 총을 맞고 죽었다. 진광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 동안 숱하게 많은 질문과 심문에도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던 이들이었다. 이제 와서 반성할 리도 없거니와 반성한다고 해서 살려줄 생각도 없었다. 돼지에게 너는 왜 먹는 걸 좋아하느냐고 묻느니 죽여서 땅에 묻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쉬운 처벌이었다.

일부는 죽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각자 진광이 생각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벌을 받았고, 신문사로 돌아가서는 다시는 펜을 잡지 않았다. 그들은 좋은 말도 나쁜 말도 쓰지 못했다. 여태까지 해 오던 대로 그들이 주장하는 중립적 스탠스의 글도 쓰지 못했다. 애초에 타이슨과 어린 아이가 싸워서 한 대씩 치고받았는데 타이슨과 어린 아이, 둘 다 잘못 있어라는 글을 중립적이라고 쓰던 작자들이었다. 어린 아이가 타이슨이 되자 그들은 더 이상 중립을 지키지 못했다.

국회의원들과 신문사 주필, 사장들이 사라졌다. 국정에 대단한 공백이 생길 것 같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이 두 세력을 최단시간에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처단해 버리고 나자 삼척동자까지도 진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태까지 많은 사람들이 염원해 오던 적폐청산이 바로 진광의 꿈이자 목표였다. 그래서 남은 국회의원들은 그들의 탈모를 유발하던 자유한국일당이 죽었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고 민생 안정과 국가 발전을 위한 법안들을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만들고 통과시키려 애썼다. 평소 같으면 죽은 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며 드러누웠을 정의일당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진보적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며 통과가 안 될 줄 알면서도 지지 기반을 다지기 위해 들이밀었을 말도 안 되는 극좌정책도 꺼내지 않았다. 모두가 진광을 두려워하고, 진광이 생각하는 목표를 벗어나지 못 하고 있었다.

남은 언론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부패방지법으로 인해 민생이 죽어간다며 난리를 치고, 진보대통령을 뽑아놓으니 북한과 중국은 신이 나고 미국이 뿔이 나서 우리나라가 큰일났다며 난리를 치던 쓰레기들이 모두 논조를 바꾸어 기사 쓰기에 바빴다. 원래 없는 사실도 지어내 기정사실인 양 퍼뜨리는 게 직업인 양반들이라 그런 일에는 아주 대응이 빨랐다. 그러나 진광은 없는 사실을 만들어 아부하는 언론인들도 체포해 징역을 살게 했다.

국회와 언론이 무자비한 담금질을 당하는 동안 나머지 업계에서도 빠른 변화가 일어났다. 법조계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져 오던 비밀 사모임의 회동이 사라졌다. 피해자를 만나 재판에 영향을 주는 대가로 성관계나 금전을 요구하던 판사들은 총알 한 방을 맞고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그들의 집에 남은 것은 그렇게 더럽게 축적한 재산이 아니라 군인들의 발자국이었다. 진광은 그들의 재산도 부정축재로 단정하고 모두 몰수했다. 군대는 진광이 가장 먼저 확실하게 장악한 조직이었지만 그 안에는 쓰레기가 넘치고 넘쳐났다. 그 동안 이게 방산비리가 아니면 뭐냐, 저들은 왜 처벌받지 않는 것이냐고 인터넷에 수십 수백번이나 올라왔던 의혹들을 진광은 모두 정리해서 군대 앞에 들이밀었고 그와 연관된 사람들이 모두 옷을 벗고 재산을 몰수당했다. 군인의 생명, 국가의 방위와 직결되는 것에 연관된 부정을 저지른 자들은 그들이 평생 다뤄온 총알에 의해 역시 세상을 하직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고 행방불명으로 만들어 버려도 대한민국이 돌아가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도리어 전보다 눈에 띄게 사회가 투명해지고 나아진다는 것이 모두의 눈에 보일 정도로 나라가 빨리 바뀌었다. 그건 긍정적 변화를 가로막고 있던 모든 훼방꾼을 처리해 버린 덕도 있지만 그보다 오래 전, 아주 오래 전부터 최루탄을 맞고 촛불을 들었던 많은 시민들이 염원해 온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부정이 있으면 신고해 깨끗하게 했고, 개선할 것이 있으면 보고해 발전시켰다. 시민들은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게 없었다.

나라를 쥐고 흔들던 이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가고 세상이 뒤집어지는데 반응하지 않을 이들은 없었고, 그건 남자가 잘못이다 여자가 잘못이다 전라도가 미개하다 따위의 발언을 일삼던 인터넷 상의 쓰레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법의 집행이 예전처럼 느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눈치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혐오가 혐오를 낳는 장이었던 만큼 이용자와 게시글이 단숨에 줄어들자 혐오를 파생시키는 사이트는 곧바로 그 힘을 잃었다. 그러나 진광은 역시 그들이 오랫동안 사회에 혐오를 낳았고 그 혐오로 인해 국가발전에 제동이 있었으며 온갖 쓸데없는 논의로 건전한 생산을 방해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일베와 메갈리아와 워마드와 소라넷과 모든 불법사이트의 운영자들을 잡아들였다. 해외에 있는 자들은 잡기 힘들었으나 서버만 해외에 있고 운영자가 국내에 있는 형태가 대부분이라 거의 모든 이들이 잡혀왔다.

진광은 이 사이트들의 운영자와 분위기를 주도한 헤비업로더의 신상을 전국에 공개했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면 가장 첫 화면에 이들의 신상 목록이 뜨게 했고, 뉴스에서도 몇날며칠을 꼭지로 내보내도록 했다. 이들에 대한 재산 몰수가 주머니 속 동전 한 푼까지 이뤄졌음은 물론이고, 구속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진광이 국회와 언론, 검찰과 군대에 이어 인터넷까지 정리를 하고 나니 시간이 꽤 많이 흘러 있었다. 오래 전부터 모든 것을 준비 해 왔고 그것을 계획대로 실행해 왔음에도 건드릴 것이 많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노동력 착취를 일삼고 불공정 거래를 하는 기업들을 건드리려고 보니 이미 기업들은 내부적으로 환골탈태를 위해 무던히도 노력을 하고 있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여태까지 목욕 한 번 안 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돈 내고 목욕탕에 가서 샴푸와 린스, 때 타월까지 모두 산 뒤 뜨거운 물에서 70분을 버틴 후 때를 밀고 있는 광경에 진광은 실소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노동부도 어떤 당근과 채찍으로도 다룰 수 없던 이들이 진광이 쏜 총알 몇 발에 대경실색해 그러고 있었다.

다음으로 진광은 자신이 스무 살 때 촛불을 들던 시절부터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갈망해 왔던 두 가지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첫 번째는 5·18 민주화운동의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이었다. 발포 명령을 내린 사람을 처벌했다고 하나 사람들은 그 딴 건 관심도 없었다. 명령을 따른 군인이 아니라 명령을 내린 통수권자가 범인인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이었던, 그리고 추후 내란수괴임이 인정되어 대통령의 칭호가 박탈된 전두일은 이미 죽은 몸이었다. 진광은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전두일의 묘를 열도록 했다. 백골이 된 전두일의 시체를 꺼내놓고 검고 두꺼운 채찍으로 삼백 번을 두들겨 박살을 냈다. 그리고 그 잔해를 모아 쓰레기봉투에 넣은 뒤 그대로 쓰레기 처분하는 곳으로 보냈다. 잔해를 남겨두면 그 일부라도 모아서 장군님이 원통해 하시니 어쩌니 하고 받드는 정신이상자들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가 빼돌린 국고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여 그 가족과 친척 모두에게서 빼앗았다. 먼 친척들은 자신들의 죄가 아니라며 항변했지만 진광은 무시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누구도 전두일이 범죄자임을 시원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입 다물고 호의호식하며 잘 살아놓고 이제 와서 자기들이 무관하다고 하는 꼴을, 진광은 가만히 지켜보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게 전씨 일가는 풍비박산이 났다.

다음은 이씨였다. 멀쩡한 강을 뒤집어엎어 오염시키고 그 뒤집는 비용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채웠으며 자원외교를 한답시고 농협 등을 거쳐 외국에 돈을 보낸 후 대부분을 또다시 자신의 주머니로 털어넣고, 심지어는 방산비리에까지 관여한 명실공히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이명일이었다. 이미 출국금지를 당한 그는 심지어 국내의 자택에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자유한국일당 의원의 청산과 동시에 위험을 감지한 그는 그 순간에 이미 자택과 자주 가던 곳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가장 거대한 적인 그를 허술하게 상대할 진광이 아니었다. 이미 그와 연결된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와 연결된 사람들의 휴대폰 카메라는 모든 영상을 청와대로 송출했고, 휴대폰 마이크는 모든 음성을 청와대로 송출했다. 그야말로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 진광은 이명일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의 곳간을 털고 손발을 묶었다. 그들은 단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서민이 되었고 거기다 금융거래 제한까지 걸렸다. 정상적으로 일해서 버는 돈을 예금 통장에 두는 것 외에 모든 거래가 금지되었다. 신용카드는 물론이고 체크카드도 발급을 받을 수 없었고 휴대폰은 본인의 동의하에 모든 정보를 국가에서 감시하게 되었다. 사실 자유한국일당의 의원을 한 번이라도 지낸 사람은 선출이든 비례든 모두 숙청을 당했기 때문에 남아있는 사람이 그리 많은 건 아니었다. 대부분이 비서나 보좌진 급의 인물이었다.

이명일은 모든 것을 빼앗겼다. 그의 수중에는 현물과 현금으로 들고 나간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대포폰으로 측근에게 연락을 취해도 신통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의 측근들은 모든 재산을 몰수당했기 때문이었다. 이명일은 칠곡의 한 면에서 숨어 있었는데 그 곳에 숨겨두었던 현금으로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복수나 그와 연관된 어떠한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부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중간 관리자나 말단들은 그와 관련되면 이용당한 후 마티즈로 자살을 당한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빼앗겨도 그는 쉽사리 죽음을 택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자신이 살아날 길을 궁리했다. 그러나 여러 번의 고비를 꾀로 극복해 온 그에게도 이번만큼은 답이 없었다. 그도 오래 살며 많은 고비를 넘겨온 만큼 그의 수법이 대부분 다 노출되어 있었고, 진광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그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돈과 권력으로 편안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존재와 범죄가 거대했던 만큼 자취도 거대했던 것이다.

항상 호의호식하며 살아온 이명일은 항상 나야말로 흙수저’, ‘나는 안 해 본 게 없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으나 진짜 시골 골방에서 살아야 하는 쥐새끼 신세가 되자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동안 누렸던 호사들이 쉬지 않고 그의 목을 졸랐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옆에 새로운 미녀가 누워 있어야 하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부하들이 진수성찬을 차려 가져오며, 밥을 먹고 나면 커다란 테니스장을 통째로 빌려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과 테니스를 치던 시절이었다. 지금 그가 눈을 뜨면 세 평 남짓한 골방의 사방 벽만이 그를 짓눌러왔고, 밥은 스스로 지어 맛없는 반찬과 먹어야 했으며, 미녀는커녕 누구도 곁에 없고 누구와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결국 안 해 본 게 없는이명일은 고독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 그는 더 이상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자수했으며, 그의 측근들과 그간 벌린 일에 대해 자백했다. 그리고 그의 측근들이 그의 공범자로서 함께 수감되길 원했다. 절대로 혼자서 감옥에 가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진광은 그를 감옥에 넣어주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도 변호사 접견과 교도소장 면담 혹은 병을 핑계로 잘만 지냈던 인사들을 숱하게 많이 봐 왔다. 그 때와는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만 잔꾀로 살아온 이명일이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그래서 진광은 이명일의 자백만 받고 그대로 시골에 살도록 했다. 그의 집 사방을 감시하게 해 외출하지 못 하게 했고 군인을 거치지 않고는 어떠한 외부와의 연락도 취할 수 없도록 했다.

진광이 이명일과 전두일을 비롯해 부정으로 축재한 모든 이들의 재산을 몰수한 것은 상상 외로 엄청난 양이었다. 여태까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을 정도로 분명한 것을 위주로 몰수했는데도 그러했다. 아무도 그 동안 이 많은 국민의, 국가의 돈을 찾아오지 못했다는 것에 진광은 분노했다. 그 동안의 대통령들이 모두의 힘으로 힘들게 대통령이 되어 놓고도 이런 일 하나 처리하지 못한 것에 분노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분노가 진광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었다.

진광은 거둔 재산이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법적으로 몰수를 공표하고 그 액수와 앞으로의 사용처까지 모두 공개했다. 박씨 일가가 빼앗아간 장학회와 대학교를 비롯해 모든 것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갔고 전씨 일가의 재산은 5·18 유족에게 돌아갔으며, 이씨 일가의 재산은 그 기간에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에게 나누어졌다.

모든 일이 정리된 후, 진광은 대변혁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급진적으로 일을 추진한 만큼 어느 정도의 시간은 필요했다. 그는 적폐청산이 끝난 후에는 국회나 법조계 등에 별다른 관여를 하지 않았다. 이미 확실하게 그의 뜻을 보여준 덕에 별다른 잡음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종종 티끌처럼 문제가 생기고 그것이 크게 자랄 수 있는 악의 싹처럼 보이더라도 진광은 개입하지 않았다. 작은 것까지 하나하나 다 다룰 수도 없거니와 이미 목표한 청산이 끝났는데 계속해서 뭔가를 정리하려고 하면 심한 압제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그는조기에 차기 대통령을 선출한 후 물러나고 싶었으나 변화가 고착되기 전에 그렇게 하면 다음을 보장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사회변혁을 이룬 진광이 마지막으로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것은 교과서 개편이었다. 교과서란 백지 상태의 학생들이 배우는 교재로서 처음 배우는 모든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되는 아주 중요한 책이었다. 그런데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고 의도적으로 왜곡한 정보가 들어가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어떤 교과서는 출처로 포털사이트를 적어두기까지 했다.

진광은 근현대사의 비중을 늘리고 특히 그 안에서 민주주의를 이룩하기까지의 민중 투쟁에 관하여 자세히 기술하게 했다. 그리고 이전까지 거의 다루지 않았던 노동법,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문이과를 가리지 않고 모든 학생이 배우도록 했다.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이 돈을 버는 것인데 노동자로서 어떤 권리를 누릴 수 있는지 아는 대학생이 거의 없고 그로 인해 사회 초년생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친일 행적이나 국고의 사유화, 무능한 외교 등에 대한 사실도 한 점 반론의 여지없이 모두 구체적으로 기술되었다.

세월이 지나 변화는 굳어져 이전으로 돌리기 힘든 상태가 되고, 그 시점에서 진광은 차기 대통령 선출 후 은퇴를 선언했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인수인계를 끝낸 후 진광은 자기 집으로 돌아와 독서등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있던 오십 권 남짓한 위인전 중에는 전 대통령에 관한 것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임신했을 때 아이를 지우기 위해 간장을 들이키고 절구로 배를 찧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질긴 생명력을 증명하듯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 아이는 체구가 작지만 똘똘하기로 유명했고,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으나 온갖 노력을 다한 끝에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 그 대통령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을 세워 나라를 발전시키는데 일조했으나 반대세력으로 인해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이것이 내가 어릴 때 읽은 위인전의 내용이고, 나는 이 내용을 철썩같이 믿었으며, 심지어는 중학교에 갈 때까지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 이 사람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바보 같던 시절은 어느 한 순간에 끝났다. 내가 알게 된 진실은 그 대통령이 애국자는커녕 남로당과 일본군에서 일한 전적이 있는 변절자이자 기회주의자이며 유부녀를 포함한 온갖 여자들을 강제로 불러다 성상납을 받고 국고까지 개인의 재산으로 빼 돌린 희대의 쓰레기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나를 속인 세상에 진심으로 화가 났다.

나처럼 어릴 때 잘못된 정보에 속아서 그 사람을 믿었거나 혹은 아직까지도 믿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한 번 진실을 알게 된 이후로 그 충격으로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나온 책을 의심하고 국내에서 들려주는 뉴스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었다. 내가 순순히 보고 들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은 힘을 가진 자들이, 이 나라의 역사를 가지고 놀아온 역적들이 민중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자료였다.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힘들게 찾아내야만 볼 수 있었고 그 내용을 대중들 앞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미 세뇌될 대로 세뇌된 사람들은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고 거짓말쟁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억울함 속에서도 나는 이 나라가 바뀔 수 있는 길을 생각했다. 이미 대한민국이 잘 되기 위해 언론을 개혁하고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꼬이기 시작한 지점은 친일파 청산의 실패였다. 친일파는 국가가 타국에 지배당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타개하여 국권을 수복하기보다 그 상황에서 자신들이 잘 사는 길을 찾아 헤맸고, 그 결과 민중을 착취하여 막대한 이득을 취득했으며, 한 번 축적된 자산을 기반으로 광복 후에도 계속해서 대한민국의 부를 잠식하고 지배세력으로 군림해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정의가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모두가 굶주림을 벗어나 기득권이 되고자 부끄러운 짓을 하길 마다하지 않았다. 깨끗하고 바른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면 그게 밥 먹여주냐!’고 외치는 서민들의 악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다. 군중 대다수가 정의보다 돈을 원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나라가 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자유한국일당 의원들부터 숙청한 이유다.

자유한국일당은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짓만 골라서 해 왔지만 그들이 정말 악인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수많은 악행을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 혹은 향상을 위해서 모든 것을 의도적으로 행해왔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이 될 정도의 배경이 있는 사람들이 자유한국일당이 친일파로부터 시작해 그 명맥을 이어온 부패기득권 세력이라는 점을 알지 못할 리가 없다. 알면서도 그들은 자신들도 그 기득권이 되고 싶어 자유한국일당의 이름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들의 일원이 된 뒤에는 로열패밀리로 인정받고자 더더욱 앞서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로 인해 피눈물 흘린 이들, 죽어간 이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들로 인해 탕진된 국고는 고된 노동으로 손이 부르트고 관절이 썩은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가 그들의 금고를 채우는데 사용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친일파 재산을 환수하자고 했을 때 반대했고, 세월호 사고를 한 점 의혹없이 조사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을 때 반대했고, 기업의 법인세를 인상하자고 했을 때도 반대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들을 뽑아주는 서민들을 우롱했다. 말로는 애국이고 보수고 서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십년 칠십년 평생을 책 한 줄 읽을 시간없이 국가의 동량들을 길러낸 노인들을 어찌 탓할 수 있겠는가. 노인연금을 주겠다는 말에 표를 던지고 노인연금이 그들에 의해 사라져도 알지 못하는 무지를 어찌 탓할 수 있겠는가. 오직 무지를 이용한 세력만이 비판과 처벌을 받아야 할 대상이다. 이것이 내가 자유한국일당을 불러 한 마디의 말도 건네지 않고 제거한 이유다.

그리고 나머지 전반에 관해서 말하자면 내가 태어난 때부터 대통령이 될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고 최루탄을 맞고 분신을 하고 촛불을 들었다. 변화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호숫가에 서서 손바닥으로 파도를 일으키려고 하는 격이었다. 그 변화를 변화라고 불러도 좋을 것인가 회의가 들 만큼 작은 변화였고, 이 변화를 위해서 수천만 양초를 태웠단 말인가 후회될 정도로 많은 노력이 들었다. 이후 이어지는 변화를 보면서 나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를 파괴한 자들은 총칼로 사람들을 죽이고 겁주고 재산을 빼앗고 마음대로 법을 만들고 집행했다. 그 자들에게 맞서는 사람들은 총에 맞고 칼에 찔리고 재산을 빼앗기면서 촛불을 들고 일인시위를 했다.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사냥개가 작정하고 물어뜯는데 한글부터 가르쳐 대화를 하려고 드는 꼴이었다. 같이 개가 되어 물어뜯자고 하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같이 개가 되면 저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하는 이들이 너무 많았고 한때는 나도 그 말에 동의했었다. 그러나 참고 참고 또 참으면서 민주주의를 위한다고 당선된 대통령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보며 나는 더없이 좌절했다. 개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고 매질도 부족했다. 혹시 배 고플까봐 밥 챙겨주고 혹시 추울까봐 집 지어주며 가르쳤지만 개들은 말귀를 알아들을 생각조차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개들을 두들겨 팼다. 배가 고프든가 말든가 말을 안 들으면 밥을 뺏었고, 행동을 고치지 않으면 집도 뺏었다. 그렇게 총칼을 앞세우고 두들겨 패자 개들은 말을 잘 듣게 되었다. 나중에 다시 성격 좋은 주인이 돌아오면 그 동안 굶주리고 추위에 떨었던 개들이 예전의 대접을 잊지 못하고 주인에게 대들며 물어뜯을까 싶어 이빨과 발톱을 모조리 뽑아 맷돌에 간 뒤 불로 태워버렸다. 지금 내게 잡힌 개들은 다시는 이빨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대통령이 되어 하고자 한 일이었고, 해낸 일이다.

그러나 비단 술을 많이 마셨을 때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인간이 본래부터 선한가 악한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누구도 선인이 될 수 있고 누구도 악인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악인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가 없으며, 사형을 시키든 무기징역을 선고하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만큼 선하고 화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짓누르고 조종하려고 드는 악인이 생겨나게 되어 있는 것이 세상의 질서인 것이다.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선은 선으로 악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악을 발견하면 온 힘을 다해 짓밟고 무찔러 이 세상에 설 자리가 없게 만들어야 한다. 선이 선이라 하여 악을 선으로 대하고 쓰다듬고 안아서 바꾸려 하면 그렇게 안은 틈에 악이 불쑥 내미는 비수에 찔려 힘을 잃고 죽게 된다.

내가 행한 것은 악을 악으로 무찌르는 행위다. 나는 자유한국일당의 의원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온갖 사회의 적폐와 관련된 이들을 처벌했다. 기존의 법대로라면 몇 년에 걸쳐 대법원까지 재판이 진행됐을 거고 그간 수많은 사람들을 총으로 펜으로 죽여온 이들은 증거부족과 정상참작 등을 이유로 겨우 5년에서 10년 형이나 받았을 것이다. 그마저도 감옥에 들어가 변호사들과 시간을 보내며 호의호식 했을 테고, 결국 특사 등으로 일찍 출소해서는 재소도 좋은 경험이지.’라며 다시금 마약을 하고 성접대를 받고 서민들에게 매값이라며 수표를 던져주고는 야구방망이질을 했을 것이다. 나는 그 꼴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대통령이 된 사람이고, 내가 대통령이 된 이유를 잊지 않고 행등으로 옮겼을 뿐이다.

하지만 나의 행위가 악행으로 분류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나는 살인을 저질렀고 법에 따라 심판 받아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법을 어기고 사사로이 권력을 남용하거나 복수를 하는 일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이자 계속해서 칼을 휘둘러왔던 나를 심판하는 일은 또다시 이 사회에 혼란을 불러올 것이다. 사람들이 찬반으로 나뉘고, 판사들도 찬반으로 나뉘고, 내가 감옥에 가더라도 계속해서 사회가 시끄러울 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내가 한 일은 범법이고, 나를 심판하는 데에 사회적으로 많은 인력과 심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나는 이 자리에서 내 손으로 목숨을 끊을 것이다.

이제 죽음을 앞두고서 한 가지 떳떳한 것은 나는 사는 동안 그 적폐들이 해 온 어떠한 일에도 관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뇌물을 받지도 않았고, 성접대를 받지도 않았고, 약자를 위하는 척 하며 강자의 앞에서 손 비비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는 정말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약자이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정직하고 청렴한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고이고 고인 썩은 물에 불을 질러 더 이상 사람들이 그 썩은 물에 가까이 가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했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괜찮은 것 같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다만 큰 청산이 한 번 이뤄진 만큼 전보다 나으리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분명 나의 방법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며 동기도 방법도 결과도 모두 글렀다고 말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오랜 세월을 기다려왔다. 그대들은 칼바람이 볼살을 에는 겨울밤의 촛불을 기억하는가? 그 촛불이 전두일과 이명일을 처단했는가? 버스정류장에서 5분 뒤에 버스가 온다고 했는데 50분 동안 오지 않았다면 이제는 택시를 찾아 떠날 때가 아닌가?”

진광은 볼펜을 내려놓고 자신이 쓴 글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글이라 두 번 세 번 훑어볼 필요도 없었다. 진광은 숨을 크게 들이쉰 뒤 눈을 감고 방아쇠를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촌각의 시간 후, 총성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진광의 편지 끝에 짧은 추신이 있었다.

총알 앞에선 부자도 한 방, 빈자도 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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