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리뷰 : 미국은 그것밖에 안 되는 나라
* 두 번째 리뷰 : 베트남이 필요한 미국, 미국이 필요없는 베트남
* 번 외 리뷰 : <풀 메탈 패닉>이 <풀 메탈 자켓>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1. 영상리뷰
2. 활자리뷰
- 조커는 어떤 인물인가?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조커는 방관자입니다.
그래서 조커는 영화 끝자락까지 철저하게 방관자 역할을 맡습니다.
이 방관자 역할은 앞선 리뷰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대다수의 미군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고,
베트남 전쟁을 먼발치에서 바라봤던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당시 <풀 메탈 자켓>을 관람하는 관객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베트남 전쟁이 '국가’라는 거대집단의 사업이었기에 '국민'들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국가의 달콤한 말에 현혹됐었죠.
하지만 은연 중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전쟁은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이다.’
결국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조커’라는 인물을 통해
베트남전쟁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모순을 방탄헬멧에 쓴 글귀와 뱃지를 통해 꼬집었습니다.
그가 이러한 모순덩어리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서
전쟁을 바라보기만 했던 사람들, 더 나아가 미국의 정치인들의 반성까지도 촉구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조커는 과연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풀 메탈 자켓> 로렌스 사건으로
젊은 청년들을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전쟁광으로 개조시켰는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전쟁에 참전하는 조커의 에피소드에서는
국가가 중립적인 모습을 보이던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전쟁의 가담자로 만들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풀 메탈 자켓>은 ‘사람들의 반성을 촉구’ 시키려는 의도를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기막힌 연출력이었다 생각합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시종일관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라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이와 같은 메시지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들며 숙연해지게 만듭니다.
그런데 조커의 발자취를 따라 가다보면 이러한 사태를 만든 모든 원흉을 국가로 변모시킵니다.
영화는 우리가 전쟁의 승리를 바랐던 이유가
국가의 폭력, 강압, 억압, 그리고 언론 통제를 통해서 일어났던 것이고
이 때문에 마음 속 깊은 곳에 누구나 알고 있는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라는 메시지를 외부로 표출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이렇게 흉측하게 괴물로 변한 이유는 국가 때문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이를 통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베트남 전쟁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사람들과 베트남 전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사람들.
이 두 집단을 모두를 개몽시키려는 시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유는
영화를 보는 관객은 반전시위에 참여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사람도 있을 것이며,
전쟁을 찬성한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허나, 누군가 베트남전쟁에 찬성했든 반대했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전쟁을 일으킨 원흉이 미국의 수뇌부이며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다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가 <풀 메탈 자켓>이라 생각합니다.
- 패러디를 통한 비난과 비판 -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어떤 영화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비판했습니다.
<풀 메탈 자켓> 중후반부를 보면 X자로 총알을 메고.
M60을 한 손으로 들고 다니는 덩치 큰 백인병사가 하나 보입니다.
그의 이름은 ‘애니멀 머더’
‘애니멀 머더’는 인간성 하나는 끝내주는 인물입니다.
미국의 승리를 위해 기여함을 자랑스러워하고 동료의 죽음에 분을 숨기지 못하는 열혈미국군인입니다.
하지만 내면속에는 전쟁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외형과 모습을 보여준 인물이 영화사에 한 명 있습니다.
‘람보’입니다.
<람보 1>은 수작으로 꼽힙니다.
베트남전쟁을 겪은 뒤,
전쟁영웅으로 칭송받던 람보가 PTSD라는 정신병으로 인해 파멸되어가는 모습을 그린 영화입니다.
즉 <람보>라는 영화는 ‘반전’을 위해 태어난 영화이자 인물입니다.
하지만 람보는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단순한 ‘전쟁영웅의 대서사시’로 변모하게 됩니다.
물론 <람보 2>에서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어느 정도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람보의 탄생은 ‘미국의 영광’을 위해 태어난 인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람보와 같은 인물을 자신의 영화 속에 넣고
또 그의 캐릭터를 잘 살려냄으로서 '람보'라는 캐릭터가 어떤 이득을 위해 초심을 잃고 변질되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이야기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더 나아가 1988년에 개봉예정인 <람보 3>를 얼마나 우습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애니멀 마더’는 동료의 죽음 앞에서
“내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다. 내가 힘을 써야 할 것은 여자와의 잠자리뿐이다.”
라는 대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 음악 (O.S.T) -
<풀 메탈 자켓> 속 OST는 대부분 굉장히 신나는 음악을 차용했습니다.
대부분의 전쟁 영화는 어둡거나 무거운 음악을 통해 전쟁의 참혹상을 말합니다.
하지만 <풀 메탈 자켓>은 신나고 유쾌한 노래가 상당히 많이 흘러나옵니다.
베트콩의 시체로 인증사진을 찍는 장면이나 전쟁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장면에서 특히 그러합니다.
왜 이런 연출을 했을까?
(바쁘신 분들은 2분 40초부터 보세요)
저는 전쟁의 참혹함을 미화시키는 언론을 비판하는 것을 경쾌한 OST로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이 카메라를 통해 보여주는 세상은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실제로 겪는 감정과는 상반됩니다.
모든 군인들이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전쟁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하기 때문입니다.
동료의 죽음 앞에서
“베트남 전쟁은 학살이다.”
라고 말한 ‘애니멀 마더’는 현장을 찍는 카메라 앞에서는 얼빠진 바보처럼 미소를 보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학살’을 말하던 그들이 어떻게 카메라 앞에서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결국 군인들이 실제로 생각하는 것과 외부에 보여줘야 하는 모습에 굉장히 큰 궤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장면입니다.
아울러 이를 통해 조커만이 아니라, 전쟁에 나가있는 모든 구성원들이
이 부조리함을 알고 있음에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점점 파멸해 나가는 모습을
스탠리 큐브릭감독이 <풀 메탈 자켓>을 통해 고발했다고 저는 바라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왜곡과 미화를 경쾌한 음악을 통해 비판하고 풍자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조커의 선택과 그가 해병의 노래를 부르며 진군하는 장면은
우리 모두가 전쟁을 잊고 싶고 또 빠져나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결국 수뇌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젊은이들이 지옥속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고도 생각하는바입니다.
<풀 메탈 자켓 > 리뷰가 이제 모두 끝났습니다.
그 동안 재밌게 봐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
저는 더 재밌는 영화로 찾아뵙겠습니다.
* 첫 번째 리뷰 : 미국은 그것밖에 안 되는 나라
* 두 번째 리뷰 : 베트남이 필요한 미국, 미국이 필요없는 베트남
* 번 외 리뷰 : <풀 메탈 패닉>이 <풀 메탈 자켓>에게 보내는 러브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