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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번도 유행을 따라 본 적이 없다.
게시물ID : gomin_17349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내시랑진기
추천 : 8
조회수 : 40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2/10 15:17:53
나는 내가 살아 생전 한번이라도 유행을 따라 본 적이 있나 싶다. 학교다닐 때 유행했던 노스페이스나 구스다운 요즘의 롱패딩 같은 것들 말이다.

신발도 마찬가지 에어맥스 슈퍼스타 퓨리 일년에도 수두룩하게 바뀌는 유행들 다 내겐 먼 얘기다.

나는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척. 의연해 하는데에 달인이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내 자체적인 패션 성향이 있는게 아니다. 지금 내 또래 20대가 그렇듯 나도 시시각각 바뀌는 유행을 발빠르게 맞추고 싶다. 봄엔 트렌치 코트를 입고 커피 한 잔 들고 거리를 거닐고 싶고 여름엔 예쁜 패치달린 테셔츠에 테니스치마 입고 놀고싶었고 가을엔 체크자켓을 어깨에 걸치고 싶었으며 겨울엔 롱패딩을 입고 따뜻하고 싶다.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해 이걸 안입으면 뒤쳐질까 두려운게 아니다. 그냥 이건 내 자격지심이다. 가난에 대한 자격지심이 유행에 대한 동경으로 바꼈다.

한창 노스페이스가 유행하던 중학교 시절 반에 절반 이상이 그 패딩이나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고 그게 아닌 이상 그와 비슷한 브랜드를 걸치고 있었다. 나는 시장에서 만 오천원 주고 산 기모 후드집업을 입었다. 차가운 칼바람을 이겨내긴 힘들어서 추위에 덜덜 떨었으나 추워도 옷 못사입는 애로 비춰질까 두려워 추위를 잘 안탄다며 거짓말했다. 

흔히들 말하는 등골브레이커는 아니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엄마와 아버지가 내가 이런걸로 고민한다는 걸 아는게 더 힘들었던 눈치쟁이였다. 한 번은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친구들이 입는거 입고싶지 않냐고 물었다. 엄마 친구 누구누구한테 들었나보다 싶었는데 어디서 극단적이게 이 옷을 입지 않으면 왕따를 당한다는 식으로 들었는지 답지않게 진지해서 긴장했었다. 나는 엄마한테 나는 살쪄서 바람이 뼈까지 통하질 않는다며 오히려 그런거 입으면 몸에서 땀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 

나는 그렇듯 여름보다 겨울이 두려운 사람이었고 누가 뭘 입는지 여기저기 눈여겨 보는 사람들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물론 거기에 눈치보는 나도 마찬가지. 나는 성인이 되었고 이제 나를 지켜줄 이 하나 없는 고독과 마주했다. 내가 느끼는 기쁨이나 슬픔 힘듦은 공유할 수 없는 완전한 나의것이 되었다. 나는 당연히 대학이라는 문턱을 밟지도 못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을하기 시작했다. 내 통장에 100만원이 넘는 돈이 찍혔다. 세상에... 돈이다 내가 돈을 벌었다! 이제는 대학을 다니며 용돈받는 친구들 보다는 내가 더 돈이 많을거야 하는 기쁨이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로지 혼자가 된 나는 버는 족족  집세 보험비 핸드폰비 생활비 교통비를 마주하게 됐다. 부모님은 중학교 시절 돌아가셔서 어느정도 정말 밥먹으러 학교를 가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더이상 누군가에게 원조를 요청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못살정도는 아니었다. 이런거 저런거 다 내고 손에 남는 알량한 돈이 있다. 친구들보다 많은 여유가 되는건 아니지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진짜 내돈이다. 맛있는걸 먹을 수도 있고 예쁜신발도 살 수 있고 머리도 볶을 수 있다. 즐겁다. 하지만 지금은 돈을 모아야지. 나중에 돈이 더 필요한 곳이 있을거야. 주말에도 일해야지 그럼 돈이 더 잘 모일거야. 일하고 돈을 벌었다. 돈이 조금 모였다. 짜릿했다. 이렇게 살다보면 이 징글징글한 가난이랑 이별 할 수 있을거고 나도 맨날은 아니더라도 백화점이서 옷 한 벌 사입을 수 있을터였다. 좋아하는 가수 씨디 100장도 사고 싶고 미슐랭에서 별받은 식당을 찾아다니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다. 그렇게 일을 했다. 주말에도 일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돈이 없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절연한 오빠가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음주운전이었다. 병원비가 많이 나왔다. 오빠병원비는 내가 납부했다 그러나 병원비 수술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재활치료뿐만 아니라 음주운전에 대한 벌금과 그에대한 피해보상금액이 뒤이어 덮쳤다. 감당을 못할 정도러고 하자 오빠는 내게 보증을 요구했다. 우습구나. 차라리 죽었으면 끝나는 일 내가 괜한사람을 살려냈구나

나는 이젠 정말 모르겠다. 오빠랑 연을 끊었다. 하지만 이미 빠져나간 내 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오로지 빚진 은행만이 나를 마주했다. 지독한 가난의 시작이다. 제 더이상 난 돈을 모으지 않는다. 내 멋대로 살고 있다. 내 몇년의 시간이 단 한순간 사라진 느낌. 그 공백이 메워지지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난 버는 족족 소비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하고자 할려면 의 식 주 중에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가끔은 두가질 포기해야 할때도 있다. 나는 의복을 포기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스타일도 추구하는게 아닌 혹은 유행을 따르는 것도 아닌 유행지난 이월상품을 몸에 두른다.

그게 부끄럽거나 한 건 아니다. 취미를 포기하면 한번은 살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걸 계속 따르고자 한다면 결국 가랑이가 찢어질 뱁새같은 나이기에 차라리 따르지 않겠다 마음먹었다. 혹은 도망쳤다거나.  

그런데 가끔은 정말 가끔은 이런 내가 비참해 비기도 하는 현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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