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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자각몽
게시물ID : panic_972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할매검
추천 : 16
조회수 : 110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12/10 02: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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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3번째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던 날.


더이상 어머니의 한숨소리에도 죄송하거나 답답한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살기 싫다는 생각만이었다.



더이상 우리집에는 내 학원비등등을 감당할 여유가 없음을 알면서도, 아마 난 4번째 도전해보라고 하는 말에 또 못이긴 척 알겠다고 할 것이다.



그래. 이런 병신이다 내가.



때마침 학원 친구들과의 단톡방때문에 핸드폰이 불나듯 울리기 시작한다.






" 다들 합격 축하한다. "



병신같이 쿨한척 하려 나와버렸다. 거지같은 술자리.


쿨한 척 하느라 먼저 합격 축하 인사를 건냈지만, 친구들의 눈빛은 안타까움 반 동정 반이다.


어느 쪽도 난 받아들일 기분이 아니다.





말없이 술만 퍼먹은 탓인지, 잔뜩 취했지만 정신은 오히려 맑다. 이상하다.


불이 꺼진지 한참 된듯한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어머니가 주무시는 안방 반대편 내 방에 들어간다.


모르겠다. .. 뭘 모르겠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잠이나 자자.






그날 난 꿈을 꾸었다. 너무 생생하다.


난 부자가 되어있었고,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떨어지는 디테일 때문에 이것이 꿈임을 깨달았다.


꿈에서도 술기운이 있었는지 용기가 생겼다.


하늘을 날아보려 시도했고 몇번의 시도 끝에 빌딩과 빌딩 사이를 오갈 수 있었다.


환호성을 지르다 갑자기 떨어지며 꿈에서 깼다.


어느새 아침이었고, 머리는 멍했지만 기분은 개운했다.


열심히 검색을 해보았다.


자각몽. 루시드 드림


어쩌면 이건 내가 원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뭘 해도 괜찮지 않은가.


항상 이도 저도 않게 살아오며 남 눈치는 참 더럽게 많이 살펴서 한번도 해보고 싶은대로 해보지 못한게 큰 한이었다.


결국 4번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나는 자각몽 훈련에 푹 빠졌다.


난 재능이 있어보였다.


내가 원하는 모든 형태의 행동이나 생성이 가능했고 훈련을 거듭할수록 꿈이 뚜렷해져갔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은 점점 뒷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합격이 희미해지고 있다.


그러다 모의평가를 치루던 날, 형편없는 점수 - 거의 꼴등에 가까운 점수였다. 당연할지도 모른다. 꿈이 뚜렷해질수록 잠은 더욱 더 부족해지는 기분이었고, 학원에서 거의 졸며 하루를 보냈으니


" 지금 슬럼프인것 같은데, 정신차리고 해야하지 않겠나. 이번엔 합격해야지."


학원 원장이 우수고객에게 립서비스를 하기 위해 친히 불러 커피 한잔을 타주었다.


듣는둥 마는둥 했지만 내속의 분노와 오만은 점점 커져만 갔다. 꿈속의 나는 무적인데,


그날 꿈에서 나는 날아서 학원 건물로 향하였다.


군대에서 쏴봤던 K2를 떠올리며 손에 총을 쥐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내가 아는 얼굴들을 모두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그리고 학원원장은 주먹으로 얼굴이 박살날때까지 때려주었다.


그리곤 아주 개운한 기분으로 기상하였다. 더없이 개운하였다.



그 이후 난 수시로 꿈속에서 학원 건물로 향했다.


온갖 방법을 이용해서 그 안의 모든 이들을 죽이고, 강간하고 고문하였다.


꿈속에서는 죄의식도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나 뚜렷한 꿈에서 얼굴만 아는 이들의 본 적 조차 없는 표정과 비명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져갔다.


깨어있어도 꿈인가 싶을 때가 많아졌다.



" 혹시 지난번, 괜한 참견했다면 미안하네. 혹시 화가났다거나 했다면 사과합세."


자판기 커피를 뽑아마시는 나에게 갑자기 원장이 다가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당황하며 오랫만에 그의 얼굴을 보았는데, 매우 피곤해보이고 힘들어보이는 안색이었다.


그리고 날 두려워하는 듯한 눈빛, 내가 그를 꿈속에서 죽일 때 그가 보여준 눈빛이었다.



아리송해 하며 겨우 수업은 마저 들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져 온다. 아니, 이건 어쩌면 불안일 것이다.


최근 나를 보는 주변 고시생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음이 더이상 나의 착각이 아닌 것 같다.


화장실에서 들은 이야기는 분명히 나에 대한 것이었다.


"너도 어제 그 꿈 꿨냐 ? "


"하... X발 진짜. 숨어있었는 데 끝끝내 찾아내서 죽이던데. 넌 어제 어디있었어"


"몰라. 끝부분만 기억나지.. 보통 그렇듯이. 그냥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갑자기 칼로 찌르거나 하잖아. 어제도 교실에 앉아있었지 뭐. 죽고나서야 꿈인줄 알았지 뭐."


"그 새끼 4반에 있는 새끼같던 데 얼굴도 음침하고 친구도 없던데.. "


"어 걔 4반 맞아. 유명인임 아주.. ㅋㅋ"


등줄기가 서늘하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 한가지는 그들도 내 꿈속에 있었다는 것.


차라리 죽이기만 했던 남자들은 나앗다.


꿈에서 강간했던 여자들은 노골적으로 나를 피했고,  반을 바꿔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짐을 옮기면서 항상 나를 응시하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보기 싫은 것을 보는 눈빛으로.













4번째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던 날.


더이상 어머니의 한숨소리에도 죄송하거나 답답한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살기 싫다는 생각만이었다.



이젠 도망칠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 희망에 걸어보기로 하였다.


이것 역시 나의 자각몽일지도 모른다. 더이상 난 꿈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했다.


이 학원 옥상에서 저 반대편 빌딩에 착지 할수 있다면 꿈에서 깨어 마지막으로 시험에 도전해야지.


그리고 난 반대편 빌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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