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시골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랐다.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자란 아빠 또한 이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닮았다.
나의 어린 기억에서 아빠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자식 교육의 일환인지 엄마와 아빠는 어린 우리 남매를 대한민국 이곳저곳 많이 데리고 다녔다.
분명 즐거운 기억도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흐릿한 기억보다 더욱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싸울 때마다 꼭 하나씩은 부서지던 집안 물건과
아빠가 집을 나간 뒤 소파에서 울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평소에는 평범하고 장난스러운 아빠는 쉽게 화를 냈고, 화가 나면 무섭게 변했다.
그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그저 성격 때문인진 몰라도 나는 어릴 때부터 아빠가 낯설었고 어려웠다.
지금도 나는 아빠와 둘만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나는 엄마의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외할아버지가 어릴 적 돌아가셨다는 엄마는 옛날의 일을 거의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외할머니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정말 독하게 살아오셨던 것 같다.
그런 엄마에게 결혼을 후회하는, 어찌 보면 나의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듯한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심 슬프다.
그런 엄마의 인생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동시에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가끔, 나는 내 인생에도 의문을 가진다.
나는 어째서 다정한 가정에 태어나지 못했을까.
친구네 부모님이 아직도 데이트를 하신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놀랐다.
나는 원래 부부라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애정이나 사랑이란 것 없이, 그저 지금까지 같이 살았기에 그저 살아가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네 가족을 보면서 우리 집을 생각한다.
모두가 따로따로 말 없이 존재하는 우리 집을.
얼마 전 아빠에 의해 패인 자국이 남은 벽을.
요즘은 유독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