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방금 '더 놀거야'라는 외마디 비명을 끝으로 장렬히 낮잠에 빠져든 우리집 둘째에대한 이야기이다.
사내아이치고는 빠른 편인 첫 돌 무렵부터 말을 하기 시작한 둘 째는 두 돌이 지나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저씨에게 '아저씨 지하 가요? 아가는 1층 가요.'
정도의 고급 회화를 구사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초등 교사 출신이신 애들 할머니는 워낙 평소에도 말씀을 점잖게 하시는 편인데
가끔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하시던 대로 '우리 ㅇㅇ씨,~했어요?' 하실때가 있다.
이 것이 이제 경어와 평어를 구분하기 시작하는 둘째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하, 이름 뒤에 '씨'를 붙이면 좋은 거구나. 이거 나도 써봐야겠다. 했겠지만..
극히 제한된 자신의 인맥에서 만나는 몇 안되는 사람들에게 적용하기 시작하니..
엄마씨~ 우유 주세요~
아빠씨~ 어디 가요?
여기까지도 괜찮았는데(아닌가 나만 괜찮은건가)
지 형은 형이니까 형씨...
자기는 아가니까 아가씨...
그렇게 우리집은 어쩌다보니 엄마씨, 아빠씨, 형씨와 아가씨가 사는 집이 돼버렸다.
지 동생이 “형씨~” 이러면
큰 녀석은 “왜요, 아가씨?” 이런 식이었다ㅋㅋ
그러던 어느 날.
꼬마가 응가를 하고 나서 변기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응가씨~ 잘가요~” 라고 실로 해맑게 인사를ㅋㅋㅋㅋㅋㅋ
귀여움에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지면서도 이건 아니다 싶었던 내가
“아가야, 응가는 응가씨라고 하는거 아니야~” 라고 간신히 이야기하자
고사리같은 두 손을 앞으로 곱게 모아 맞잡고는 동그랗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우리 아가씨가 날린 최후의 일격.
응가씨 아니야? 구럼 똥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