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꿨던 꿈 이야기.
-시작하기 전에-
1.이 이야기는 재미없고 긴 "군대에 가는 꿈" 얘기다.
2.이 이야기의 시점은 "통진당 해산"즈음이다.
3.이 이야기는 92%가 진짜 내 꿈 이야기다.
#1
전쟁이 났다.
나는 동원도 끝났고 향방도 끝나서 다행히 전방으로 차출되진 않았다.
민방위의 신분이지만 인원이 없어서 동네에서 총 들고 보초를 서야 했다.
우리집 아파트 놀이터에 모래주머니를 대충대충 쌓아서 초소를 만든 곳이었다.
초소라고는 하지만 구식 모스부호를 주고받는 통신 장비가 전부였다.
여느때 처럼 다음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 군복 입은 아저씨 2명이 걸어온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는 개뿔. 암구호 뭐에요? 까먹었네. 아흐 지겨워~"
"다음 근무자입니다. 여기 제 것과 동료의 신분증입니다."
말투가 이상하다.
'...뭐지? 이상하네 이 아저씨들..신분증은 왜 보여줘?'
라고 생각하면서 옆을 바라보니 옆 아저씨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나 보다.
능글능글한 예비역 말투로 재빨리 모스부호기를 두드린다.
"2번 상황 알리면 오늘 근무 끝이네~ 근데 오늘 저녁 메뉴 뭐에요? 오늘도 똥국인가?"
우리가 모스부호를 알 리가 없다.
1번 상황 : .ㅡㅡ.ㅡ..ㅡ..ㅡㅡ.ㅡ.ㅡ..ㅡ.
2번 상황 : ㅡㅡ.ㅡㅡ..ㅡ.
이렇게 간단히 적힌 메모대로 통신할 뿐이다. (건너편에서 알아서 해석하겠지 뭐.)
같은 근무조인 아저씨와 나는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이상한 두 명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이 이상했는지 그 두 명의 거동수상자는 도망가기 시작했다.
혹시 우리 집 근처로 가지는 않는지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왜 여기까지 저런 놈들이 오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2
여기는 강원도 어느 시가지.
전쟁이 길어지면서 나도 결국엔 강원도로 와야만 했다.
우리의 막사는 상가건물 2층에 자리잡은 다방이었다.
주민들이 대피하면서 버려진 곳을 군대가 간단히 정비하여 8명이 임시 막사로 쓰고 있었
다.
침대도 없이 소파를 붙여서 잠을 자는 곳이지만 아직까진 수돗물도 잘 나왔고 간간이 티
비에서 뉴스도 볼 수 있었다.
이 지역은 직접적인 교전도 없고 나름 조용한 곳이지만 긴장하면서 종일 3교대로 수색을
하는 곳이다.
피곤한 저녁 8시쯤, 느닷없이 민간인 한 명이 우리 막사로 들어왔다.
"아이고 수고하십니다 군인 여러분~"
군복 야상을 입은 60대 아저씨였다.
"여긴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임시 군부대입니다. 민간인은 들어오시면 안 돼요"
"어허이~ 알고 온겁니다. 빨갱이시키들은 좀 잡으셨습니까?"
"어르신 들어오시면 안됩니다. 어서 나가주세요. 여긴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이에요"
우리가 다그치자 이 아저씨 조금씩 열 받는다.
"아니 대한민국 사람이 군인도 볼 수 있고 그런 거지! 뭐 그리 깐깐해!? 니네 빨갱이야? 어!?"
피곤함 반, 홧김 반.
아저씨를 찬찬히 훑어보는데 이 아저씨 군복이 이상하다.
'일병마크...? 전역 했거나..죽었거나...이 아저씨 아들 옷인가..'
왠지 모르게 슬픔이 전해여 온다.
최대한 공손히 말해야겠다.
"어르신. 여기는 민간인 통제구역입니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통제에 따라주세요"
결국 이 아저씨 폭발했다.
"이 새키들 봐라? 경례한 번 해봐 그럼 내가 나갈게. 이 새키들 진짜 군인인지 아닌지
내가 경례하는 거 보면 알아. 해봐"
옆 동료가 못 참고 같이 폭발했다.
"아 이 아저씨 말 드럽게 못 알아듣네! 나가시라고!! 아저씨 군대재판에 넘어가요!
아 시발 빨리 나가라고~!!"
"이거이거 다 뒤져봐야 정신 차리지 이새키들이거 어!?
야 며칠 전에 빨갱이들 삼팔선 다 넘어왔어 이새키들아!
니네 같은 새키들은 빨갱이들한테 다 뒤질거야 이새키들아!!"
아까운 휴식시간에 내가 왜 욕을 듣고 있지? 나도 결국 폭발했다.
"오!호!라~! 아저씨 지금 적국 고무 찬양하신 거에요? 그것도 전시에!?
이 아저씨 안 되겠네? 지금 즉결 한 번 땡길까? 어?"
씩씩거리면서 아저씨는 나가버렸다.
나도 털썩 주저앉았다.
피곤하다. 가족이 보고 싶다.
이 전쟁...언제 끝이 날까...
#3
이곳은 군부대 비행장이다.
각 지역에 보낼 비품과 물건들이 곳곳에 쌓여있고 차량과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트럭에서 상 하차 작업을 하는데 옆 동료가 툭 툭치며 말한다.
"저기 봐요. 짚차 또 왔네..아 저 방독면 새끼들 재수 없어 죽겠어 그냥."
짚차.
대통령 직속 군부대 소속으로 군부대에 침투한 남파간첩을 색출하는 일을 하는 놈들이다.
간첩잡는건 뻔한 거짓말이고, 개인기록 샅샅이 뒤져서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아무나 잡아가는 놈들이다.
게다가 비상상황도 아닌데 왜 하루종일 방독면을 쓰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더러운 정치군인 새끼들.
우리는 그놈들을 짚차라고 불렀다.
근데 그놈들이 우리 부대 중령이랑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뭐? 탈영? 얘가 왜 탈영병이야~ 나랑 두달 동안 자재분류하고 있구만!"
"1983년생 박ㅇㅇ 병장. 서울출생. 맞습니까? 당신을 복귀명령 위반자로 체포합니다.
중령님은 여기 싸인하세요."
박ㅇㅇ병장은 대기업 창고관리 경력 10년 차로 중령이랑 손발이 잘 맞아서 일 잘하는 아저씨다.
저 아저씨 아니었으면 우리일도 3배쯤은 힘들었을 거다.
"왜 저 아저씨가 탈영이래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에효, 탈영이겠어요? 저 아저씨 통진당 당원이라던데...시발 그것 때메 데려가려나 본데?
전에 회사에서도 노조활동 빡시게 했다 그러드만.."
중령이 버럭버럭 화를 내면서 말한다.
"야!! 내가 이 사람 처음부터 영장 받고 나랑 같이 일하고 있는데 뭔 탈영이야!!
지랄하고 자빠지시네 진짜...얘는 좀 빼 줍시다. 어?? 이 사람 없으면 부대 일 안돌아가!! 얘는 좀 빼줘!!"
그 방독면들이 갑자기 차에서 우루루 내리더니 권총을 빼어들었다.
"김ㅇㅇ중령! 공무집행 방해로 당신도 바로 끌려갈 수 있어! 무릎 꿇고 손 머리! 무릎 꿇고 손머리!
무릎 꿇어 이 새끼야!"
분위기가 단박에 심각해졌다.
박ㅇㅇ 병장은 채념한듯 짚차에 올라타서 끌려가 버렸다.
"전쟁이 한창인데..이런 상황에서도 정치질을 해야 되나? 시팔새끼들 진짜..."
이 전쟁...언제 끝이 날까? 가족이 너무 보고싶다.
#4
"오우예아~!! 나왔어! 나왔어! 오늘이야~~!!"
나랑 친한 행정병이 춤추면서 나한테 다가온다. 오늘이 내 전역날이다.
"아 졸라 부럽습니다 선배님~!! 딸 보러 가시는 겁니까?"
미안한 마음에 살짝 미소를 보낼 뿐이다. 전쟁이 한창인데 나만 집에 가는게 너무 미안하다 모두한테...
하지만 내 손은 짐 싸는데 정신이 없다. 나도 정말 집에 가고 싶다.
어색하게 웃으며 내가 말했다.
"곧 끝나겠지. 너도 빨리 나와라."
"크게 한잔 쏘십니까? 아 진짜 부럽습니다 선배님~ 나가면 연락 바로 드리겠습니다."
"그래 꼭 찾아와~ 늙은 형 먼저 간다!"
가방매고 위병소로 달려간다.
위병소만 지나면 바로 우리 집이 있을 것 같다.
간다. 집에 간다. 우리 집에 간다!!
위병소에 도착하니 근무자가 형식적인 질문을 한다.
"전역 축하합니다. 전역증이랑 군번줄 반납 부탁드립니다."
나는 웃으면서 주머니를 뒤진다.
'......어?'
"내 전역증 어디 갔지? 분명히 여기 넣었는데??"
위병소 근무자가 재빨리 내 머리에 총을 겨눈다.
다른 병사가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운다.
"2번 위병소! 탈영병 긴급체포한다!!
2번 위병소! 탈영병 긴급체포한다!!"
"어?? 아닌데??? 나 전역인데???"
그리곤 꿈에서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