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니고 책을 읽어가면서 번역에 대한 흥미가 있습니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일 뿐이고 또 단지 노예일 뿐이어야만 하며 정념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직무를 탐내어서도 안 된다.
라고한 데이비드 흄의말에서 "노예일 뿐이어야한다"는 필연성이 아닌 당위성을 논하는 번역이 과연 제대로 된 번역이 맞을까 하는 의문부터
vulnerabillity 의 번역 취약성과 관련하여, 취약하다의 말에서 취가 받아들일 취가 아닌 무를 취가 쓰인다는 점과
취약하다가 언제부터 쓰인 말인지, vulner 라틴어 상처와 ability의 합성어가 단지 weakness와 의미를 같이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해가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상처받을가능성이곧 약함과 같은뜻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내가 상처받을 가능성이 있음을 안다는것은 오히려 나를 유연하게 대처하게하고, 구부러지지않고 부러질것이냐, 부러지지않고 구부러질것이냐의 문제에서 각자의 '약함'의 정의는 다르다고 생각하게됏어요. 린네 브라운이라는 사람의 생각에 공감하게된걸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사람들이 잘된번역, 초월번역, 의역 오역을 이야기하며 떠드는것들을, 위대한 개츠비의 13개정도? 한글번역본의 차이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흥미를인공지능이 메꿔줄수 있을까.. 싶기도하고..
빠른소통은 가능하게 하지만 그 맛을 곱씹고 즐긴다는것에 있어서 인공지능이 그걸 흉내낼수가 있을까요?
정말 4차산업혁명이 오고나서 번역가들은 자리를 잃게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