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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에 대하여 (김한겸시인의 시모음)
게시물ID : lovestory_840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살면서한번도
추천 : 1
조회수 : 49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1/26 04: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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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리
 
별은
지독히도 멀어
바다별 하나 따다 주려
망망대해보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었지
 
눈이 멀었다
 
네게
처음 들어갔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만일
저 먼 바다별 찾아
하늘에 붙이면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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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배의 읍소
 

신이시여
당신 손을 떠난 나는
단 한 번도
무던히 흐르지 않았습니다
 
익숙한 듯 나를 막는 수초와
제 한 몸 단단히 얼려 나를 멈추는 물과
넘어서기엔 미끄러운 돌들뿐
 
이미 나는 흐름의 의미를 잃었습니다
 
무르고 물러
부서지는 것조차
쉬이 허락하지 않는 신이시여
 
그럼에도 나는 왜 흘러가야 합니까
 
신이시여
혹여 흘렀다 한들
그곳에 도착할 수는 있는 겁니까
그곳엔 당최 무엇이 있습니까
이렇게 막을 거라면
나는 왜 이겨내야 합니까
 
신이시여, 오 신이시여
의미는 진즉 강으로 흘러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달빛을 등불 삼아
물길을 밝히고 있습니다
 
신이시여
헌데 당신이 준 것이
한갓 이 달빛 하나뿐이라면
정녕 이것뿐이라면
 
이제 그만
없는 닻이라도 내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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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

곧이곧대로
다시
돌고 돌아올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신망
미욱한 그대
 
아스라이 사라진 압흔
유장한 기다림의
표목은 나였고
돌아올 거란
당신의 말이 맞았다
 
거연한 전회
제자리로의 회귀
다시를 향한 찬란한 비행
 
이미 네가 보낸
순애의 화답은
손앞에 다가왔고
새로 시작할
오래된 사랑 앞
 
재회의 순간에는
미워할 겨를이 없으므로
 
늦었다는
서먹한 인사는
하지 맙시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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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어귀
    
어둠이 골목골목 젖어들
태양과의 교대시간
시작된 불빛장사
몰려드는 나방손님들
그림자에 내려앉은 고양이는
쌍 라이트를 켜며 밤을 자랑한다
 
손님이 왔다
연인이 되기로 약속하는 남녀
사랑이다
삶이다
시작이다
수줍은 입맞춤에 행여 누가 볼까
한 줌, 어둠을 내린다
 
손님이 왔다
백주부터 모여들었던 폐지
구겨진 노파에게는
구원이다
삶이다
연장이다
노파대신 폐지에게
이 무거운 불빛을
중량에 더해본다
 
손님이 왔다
고주망태가 된 중년가장의
중압감은 웃음도 집어삼켰다
한탄뿐인 인생 아래
삶은 무엇인가? 하고
너를 잡고 묻다가
내뿜는 부담감들
검뿌연 타령의 한풀이
 
가로등 밑 사연은
속속들이 다르다
매일매일 암야의 나날에
삶이란 무엇일까라고 고뇌하니
네가 물음표 모양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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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봉
 
청년(靑年)들이여
젊음의 중추인 시기
고개를 들라
 
벼도 아닌 것이
무르익은 시기에
왜 자꾸
고개를 숙이는가
 
망울 맺힌
청년(靑年)들이여
꽃봉오리처럼
안다미로 피어날
꽃들일 터이니
고개를 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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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귀(同歸)
 
빨갛게 물든 단풍마냥
뻔하고 빨간 거짓말
만연한 고독
고독의 계절, 가을
 
행여 다른 계절로 새어나갈까
그 뻔한 말
낙엽소리 벗 삼아
금추에만 풀었던 고독
 
서느런 바람
눈 이불 덮는 차디찬 세한
똑똑, 하는 노크도 없이
허락되지 않은 너는
나를 찾아왔다
 
얼어버린 세상 속
사랑도
설렘도
눈물도
꽁꽁 얼었다
 
계절을 가리지 않는 고독이여
돌아가라
고독으로 숨어온 그리움이여
돌아가라
 
부디 돌아가라
아직 얼지 못한
내 연정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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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봄비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곰팡이처럼 상해버린
왜청빛 하늘
허공을 적시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애정의 이력들은
검은 물감 머금고
찢어지고
번져가고
 
방향도 모르는
도착지도 모르는
정처 없는 나침반을 들고
너는 저기로
나는 여기로
 
함께
천 리 길 걸었던 신 사이로
새어드는 춘수의 향연
 
뒤돌아보지 못하는
미련 없는 빠른 발걸음에
잿물처럼 번져가는
바지의 말미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나는


c.jpg



멈춰버린 그날
   
불타버린 청춘은
산새들 재잘거림에
힘없는 눈송이처럼
아니 온 듯
사라져 버렸소
 
물은 흐르고 흘러
철쭉 스산히 낙화하는
봄에
스며들고
 
계절은 흐르고 흘러
다시 봄이
다시 여름이
또 다시 가을이 오는데
 
흐르지 못한
겨울에 멈춰
나는 생각했소
 
목련 같던 설원 위를
발자국도 없이 떠난
너는
왜 돌아오지 않는가 하고

d.jpg


희생양
    
오라이 가라이 하는
사냥꾼은
화살 줍는 법 몰랐다
짐승 잡는 법도 몰랐다
 
하소연을 듣는 말귀는
칠흑같이 어둡고
수 만 가지 잣대로
그들만의 형평성을 유지했다
 
비명치지 않으면
아픔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살려 달라
숨만 쉴 수 있게 해 달라 비는
파리 같은 두 손은
자유처럼 묶인 채
과녁이 돼버렸으며
 
허공에 쏘아 올린
의미 없는 화살은
썩어문드러진
심장을 관통했다
 
귀머거리 듣지 못하는
짧은 비명은
짐승들끼리만 들리기에
 
부디
활을 거두소서
화살 스치는 바람에도
오소소 소름이 끼치니



e.jpg

 
사랑니
 
예쁜 이름을 가지고
어찌 그리 큰 고통을 주는지
 
짝도 없이
금테 한번 못 두르고
떠났는가
 
이젠
나의 혀가 말한다
빈자리가 휑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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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에 대하여
    

많은 걸 가진 것이 아니라
많은 걸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깃털처럼 가벼운 진리를 알면서도
정답을 적지 못하고
 
검지와 중지사이
녹록치 못한 펜은
고민하는 시곗바늘처럼 돌기만 하네
 
여생의 종소리는
녹이 떨어지며 울려가는데
 
내 답안지는 아직도 하얗다



출처 https://www.instiz.net/pt/4510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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