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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박수정)명랑한 호엔촐레른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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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두부한모주소
추천 : 10
조회수 : 1980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7/11/12 00: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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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 새로운 세상에 눈뜨다.


독일 황제인 카이저 빌헬름2세가 왼팔에 장애가 있었던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카이저의 가족인 호엔촐레른가 사람들은 앞으로 군주가 될 카이저의 풍채와 명예를 생각해 왼팔을 낫게 하기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방법중에는 신경계또는 왼팔을 전기로 지저버리는 것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무슨 고문이냐고 생각했겠지만 그때로서는 이사람들 나름 진지하게 생각한 방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탈리아 과학자 갈바니가 전기 실험으로 죽은 개구리뒷다리를 움직이자, 전기가 무슨 생명에너진줄 아는 붐이 일었고, 일부학자들이 전기자극으로 죽은 시체의 일부를 움직이자 이런붐은 더해져, 아플때는 무조건 전기로 지진다는 생각이 몇세기동안 나돌았다.

결국 카이저는 어린시절, 왼팔장애를 낮게 한다는 이유로 거의 고문에 가까운 전기지짐을 당했다. 그러나 그의 왼팔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결국 카이저의 마음속에는 한가지 감정이 싹터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통 끝에, 고통을 쾌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고통끝에 얻은 진리를 그는 어른이 되자, 본격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1885년,아직 그가 황태자였던 시절, 그는 알사스지방에서 군사훈련도중 에밀리에 클롭이란 창녀와 성관계를 가졌는데, 거기서 그는 비단스타킹으로 자신을 묶은뒤, 가죽 채찍으로 때릴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성관계를 환회당 100마르크를 주고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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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와 에밀리에의 관계는 카이저가 보위에 오르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1889년, 비스마르크 수상의 아들인 비스마르크백작에게 에밀리에가 찾아온다. 그녀는 카이저가 즉위하고 나서 자신을 외면한것에 관해서 분노를 표했고, 만약 2만마르크를 주지 않으면 자신과 카이저간에 오간 편지를 프랑스언론에 폭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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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옹, 많이 섬뜩하셨을듯.

결국 비스마르크는 이 건방진 매춘부에게 2만5천마르크라는 거금을 쥐어주고 입을 다물겠다는 서약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편지들을 "카이저의 명령에 따라 일급기밀로 봉함"이라고 철해 문서보관서에 깊숙히 감춰 두었다.

그러나 카이저는 (한때 자신의 우상이었지만)노쇠하고 허약한 정치인이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것을 못마땅하게 느꼈고, 그다음해에 그를 해고 시키고 말았다. -물론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따로 있지만.



카이저 당하는 것을 넘어서 가하는 기쁨을 깨닫다.

본격적으로 보위에 오른 카이저는 이제 당하는 것을 넘어서 가하는 것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먼저 자신들의 신료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1908년의 어느날, 카이저의 외교보좌관 푸르스텐베르크의 자택에서 파티가 열렸다. 파티의 물이 오르자, 카이저는 군사대신인 훌센 헤슬러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 나가서 발레 좀 춰보게."

 카이저의 명령이니 까라면 까야지 어떠겠는가? 헤슬러는 핑크색 발레복과 토우슈즈를 신고 정부관료들과 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레를 췄다. 파티 참석자들은 카이저가 제공한 이 여흥거리에 웃음을 참기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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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남따위에게 여장을 시키다니...


그러나 어느 순간, 헤슬러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갑작스럽게 쓰러졌다. 비대한 몸집으로 무리하게 발레를 춘 나머지, 심장마비가 온 것이다. 헤슬러는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을 혼신의 힘을 다한 무대(...)로 마무리 지었다. 

카이저가 괴롭힌것은 비단 자신의 부하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타국의 국왕들에게 정신적인 모멸감을 주려고 했다. 그는 이탈리아국왕 엠마누엘3세가 키150cm밖에 안되는것을 비웃었으며, 그에게 모멸감을 주기위해 일부러 장신으로 구성된 의장대를 마련해, 엠마누엘3세의 방문행사에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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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학살의 현장, 벨기에국왕 알베르트 1세(左)와 이탈리아 국왕 엠마누엘레 3세(右)

또한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2세를 니키라는 애칭으로 부르면서 사촌형이 사촌동생을 타이르고 지시하는 자세를 고집했다.

결국 이탈리아와 러시아는 1차대전이 터지자, 연합군에 줄섰다.




부부는 닮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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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 빌헬름2세의 왕후, 아우구스타 빅토리아는 카이저와 함게 그시대의 교양있는 왕족으로 불렸다. 그러나 적어도 다른 문화권에 대한 이해라는 면에서 봤을때, 카이저부부는 정말 무지했다.

 
투르크를 방문했을때의 일이다. 카이저가 이 미래의 동맹국의 관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동안, 황후는 술탄의 하램을 방문하고 있었다. 이 이국적인 궁전을 둘러보는 동안 황후는 자신의 안내자가 환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화거리를 찾던 황후는 그 안내자에게 물었다.

"이나라에서 환관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면서요?"

"예 그렇습니다."

환관은 황후의질문에 대답했다. 황후는 이어 다른 질문을 했다.
"당신의 아버지도 환관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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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할렘의 분위기는 싸하게 가라앉았다.
황후는 자기가 해선 안될 질문이라도 했느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렸고 안내자는 조용히 터키어로 중얼거렸다.

"ㅄ같은... 환관이 애를 낳을리가 없잖아..."




카이저의 영국에 대한 달콤쌉싸름한 감정


카이저의 영국에 대한 감정만큼 복잡미묘하고 정의 내리기힘든 것도 없다.

카이저는 항상, 자신의 삼촌이자 영국국왕인 에드워드를 '교활하고 멍청한 뚱보'로 폄하했고, 에드워드 역시 그를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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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말해서 미안한데, 나 삼촌 좀 많이 싫어함요.
-나는 뭐 너 이뻐하는 줄 알아?

카이저는 영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은것을 두고, 영국이 백인종을 배신하고, 황인종과 손잡았다고 매도했고-오죽하면 그의 환상에서 영국을 상징하는 빌키리가 남에 손에 이끌리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겠는가?-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자기가 왜 영국을 싫어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도 했다.-루즈벨트가 그걸 듣고 싶어했는지는 별게의 문제다.하지만  카이저는 루즈벨트앞에서 그렇게 영국을 매도하고 나서 "나는 영국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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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각하, 이제부터 내가 놀라운 이야기를...
-아, 고만하라고요. 폐하.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카이저는 자신의 어머니의 나라, 영국이 자신을 천박한 사람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했다고 한다. 

카이저는 영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은것에 대해 매우 분노했고, 그로인해 영국을 경멸했지만, 정작 자신이 꿈꾸던 인종전쟁이 발발하면 '영국이 고귀한 주님의 품으로 돌아와 백인종의 편에서 싸울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1914년, 사라예보에서 세상을 바꿔버린 살인사건의 소식을 들었을때, 카이저는 사촌인 조지5세와 함께, 기마퍼레이드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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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카이저는 영국과의 전쟁도 불사할것'처럼' 보였다. 1908년에, "향후1~2년사이에 영국은 일본과의 동맹의 대가로 독일과 전쟁을 치룰것"이라고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고, 주변의 만류와 영국과의 충돌 위험에도 불구하고 해군력을 증강시켰다. 그러나 1914년, 정작 영국이 선전포고하자 그가 했던말은 "영국을 이길 수 있다거나 이런저런 사소한 방법으로 달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였다. 

도대체 카이저의 이 애증으로 가득한 혹은 (츤데레적인?)영국에 대한 태도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개인적은 추측이지만 이건 카이저의 가정사에서 그문제의 원인을 찾을수있을것같다.


카이저의 출생의 비밀

사실 카이저는 그출생부터 기대받는 존재였다. 

그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3세는황태자시절 영국을 방문했을때, 영국은 빅토리아시대로 최고의 전성기에 이르렀다. 프리드리히는 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에 매료되었고, 자기와 같은 독일출신으로 빅토리아여제의 남편인 앨버트공에게서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을 찾았다. 공과 사, 양면으로 빅토리아를 뒷받침해주는 앨버트공은 충분히 그럴자격이 있어보였다. 프리드리히는 앨버트와 친분을 쌓았고, 자신이 독일을 영국처럼, 입헌군주제로 만들 희망이 있음을 밝혔다. 앨버트로서도 유럽대륙의 강국으로 부상하는 독일이 영국과 같은 정치체제를 갖춘 동맹국이 된다는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프리드리히는 빅토리아의 딸, 빅토리카공주와 결혼했다. 빅토리카 역시, 그아버지와 남편처럼,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왕족에 독일에 입헌군주제를 정착시킨다는것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빅토리카는 프리드리히처럼, 앨버트공을 이상적인 군주의 표본으로 보았고, 남편과 자식을 아버지처럼 이상적인 군주로 만드는게 독일제국의 미래의 황후의 역할이라고 확신했다. 영국의 앨버트공 역시, 자신의 딸이 낳은 아이가 영국과 대륙을 이어주는 대제(大帝)가 되주길 바랬다.

그러나 카이저는 탄생부터, 이들 부처의 희망을 배신했다. 그의 한쪽팔에는 장애가 있었고, 빅토리카는 카이저가 뛰놀때마다 왼팔이 덜렁대며 흔들리는 모습을 차마 볼수없다고 어머니 빅토리아 여제에게 편지를 썻다. 그래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라고 생각했던 전기지짐을 감행했던것이다. 

카이저가 성장하면서, 프리드리히부처의 실망감은 더욱 커졌다. 카이저는 모든과목에서 수석을 차지하지못했던 것이다. 빅토리카는 "니가 수학을 못한다는 사실이 매우 실망스럽구나. 하지만 니가 더욱 노력한다면 잘하게 될거야. 너는 하면 드는 애니까. 안그러니?"라며 카이저에게 격려와 압박을 동시에 주었다. 뭐 순수한 격려일수도 있지만, 신체적인 특징으로 열등감에 시달리던 카이저에게 어떻게 들렸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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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너는 커서 이 아버지처럼 영국을 좋아하는 훌륭한 독일황제가 되어야 한단다.

결국 카이저는 삐딱선을 타기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좋아하는 게몽적인 입헌군주를 지향하기보단 할아버지같은 절대적인 전제군주의 모습을 이상으로 받아들였고, 전쟁영웅 비스마르크를 존경했다. 프리드리히부처는 아들의 반항에 골머리를 썩혔다. 빅토리카는 어머니에게 보냈던 편지에서 그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빌리가 점점 더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렇다고 제가 그아이의 길을 강제로 교정해선 안되겠죠. 그아이가 가고 싶은 길을 가게 냅둬야죠. 그렇죠. 어머니?"

유감스럽게도 빅토리카의 생각이 틀렸던거같다. 빅토리카가 카이저가 원하는 길로 가게 냅둔 덕에, 그녀의 모국은 전쟁을 겪어야했으니 말이다.

암튼 정리하자면, 그에 대한 영국인 어머니와 예하 친척들의 과도한 기대가 카이저가 영국에 대해 삐딱선을 타는 계기를 마련해준것이 아닌가 싶다.
출처 http://flager8.egloos.com/2769589#comment_2769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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