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부터 말편자를만들어 파는 일에 종사하시다가
가까운 벗들 과 함께 독립운동 단체인 ‘혁신단’을 조직한후
광복단ㆍ의열단 등 의 단체에 가입해 중국과 조선을 오가며 군자금 모금, 일제 기관 파괴 등 의 임무를 수행하셨던 분입니다.
(
조선조에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리던 왕족이나 양반을 비롯한 상층 계급에 서 무력 독립운동의 투사들이 거의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민족사의 슬픈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누리는 사람들은 늘 누리기만 했고, 고생한 사람들은 늘 고생만 했다는 뜻인데...
IMF때 금모으기 운동할때도 돈많은 부자님들은 금한 푼 안내는데 가난뱅이들만 막대한 금을 모아내었다며 외신들이 한국의 애국심 넘치는 가난뱅이들에 비해 자기속만 챙기는 못난 한국의 개같은 부자분들을 비웃던것이 갑자기 기억이..^^; 암튼암튼)
1923년
서울에서
당시 독립운동탄압하기로 악명높았던 ... 야인시대같은 드라마나 장군의아들같은 영화에서도 악명높은
일제 경찰력의 중심부이자 독립운동가 검거와 탄압의 상징이었던 종로경찰서...
그 악의 심장에
1923년 1월 12일 밤 8시경 폭탄을 던져 폭파시킨후 덤으로 수많은 일본경찰들도 같이 죽인후
피신했다가
친일앞잡이인 동대문서 한인순사 조용수의 밀고에 의해 은신처가 탐지되어 도망가시면서도
열에 아홉 발을 명중시킨다는 정확한 사격술을 갖췄다는 평대로
총으로 종로경찰서 유도사범 전촌장칠(田村長七)을 사살하고 금뢰와 매전에게 중상을 입힌 후 포위망을 탈출, 일경의 집요한 추적을 따돌린 후 눈 덮인 남산을 맨발로 넘어 왕십리 근방 안장사(安藏寺)에서 승복을 입고 변장하고 도망갔으나
은신처를 탐지한 일경이 경찰부장의 총지휘 아래 시내 4개 경찰서에서 차출한 천 여명의 무장경찰을 동원하여 은신처를 겹겹이 포위한 상황에서
양손에 권총을 들고 인근 5채의 가옥을 지붕을 타고 넘나들며 권총과 장총으로 무장한 천 여명의 일경과 접전을 벌이며
일기당천(一騎當千)의 기세로 수많은 일본경찰들을 죽이고 몸에 열한발의 총상을 입은상태에서
마지막 남은 1발로 자결하셨습니다.
아마 잡혀서 왜놈들이나 친일파들에게 악직 불령선인 내지는 테러범으로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하고 병신되는니 차라리 깨끗하게 자결하신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친일파기준이나 대일본제국 관점에서 金相玉
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서를 폭파하고 수많은 경찰을 죽인
악질 테러범이겠지만
일제에 독립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제입장에선 존경하는 독립운동가이십니다.
비록 2014년...21C 대한민국은 친일파들 후손들이 곳곳을 장악하고 나라는 개판이지만
그래도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우시다 결국은 일본경찰1000명과 접전중 최 후의 일발로 자결하신 金相玉님에게 그를 기억하는 후손들이 있다는 사실 을 알리고 싶어 글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