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월요일 저녁마다 동네 탁구 모임에 가요.
동네 모임이라고 우습게 보고 갔다가는, '발리고 온다'고 해요.
우리 동네에는 중국인 인구가 많은데, 추리닝 입은 할아버지라고
얕봤다가는 돌상에서부터 탁구채를 잡으신 무림의 고수들이 공을 휜 방향으로 서브를 넣으며 한 바퀴의 랠리도 허용치 않으신대요.
옛날 초등학교 앞 동네 오락실처럼, 치고 싶은 상대방이 있는 테이블 앞에 탁구채를 순서대로 쌓아놓고 대전을 하여 지는 사람은 빠지고 다음 도전자가 밀려드는 식이랍니다.
제 생일 선물로 뭐가 가지고 싶냐고 남편이 묻기에, "당신이 일주일에 두 번씩 운동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어요.
그리하여 가벼운 몸이 되고 싶은 남편은 바나나 하나만 먹고 두 시간동안 탁구를 치고 왔지요.
그동안 저는 뒷마당에 본격적으로 솥을 걸어놓고 육개장을 끓여요.
인스턴트 팟에 고사리와 토란대를 삶으면 금방 야들야들해지기 때문에, 잘 익는 나머지 재료는 아까 익힌 고사리 토란대와 함께 곰솥에 때려넣고 애 셋과 씨름하는 동안 육개장은 저절로 끓어요.
애 셋 중 둘을 재우고 나니 남편이 왔어요.
두 시간동안 컴컴한 데서 안 자고 있던 한놈은 노력이 가상하여 방생해 주고, 땀 흘리고 온 남편과 함께 먹으려고 밥상을 차렸어요.
하얀 쌀밥에 뜨거운 육개장을 훌훌 끼얹어요.
친구가 사과를 갈아넣고 담가준 새콤하니 톡 쏘는 무 석박지를 꺼내 둘이 마주 앉았어요.
아쉬운 놈이 우물 판다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 열심히 끓여대다 보니 제 육개장은 점점 더 맛이 좋아져서 어렸을 때 초가집인 외갓집 마루에서 곤로에다 끓여먹던 외할머니표 육개장 맛이 나기 시작해요.
원래 양지머리를 통으로 삶아 찢어서 그 육수에 끓이곤 했는데, 애 셋 낳고 시간이 없어서 그냥 썬 쇠고기를 해동도 시키지 않고 봉지채로 국에다 투하를 해서 그런가 적당히 촌스럽고 투박한 맛이 나고 아주 좋아서 밤 9시에 두 그릇이나 먹고 말았어요.
남편은 건강한 돼지가 되어가고, 저는 그냥 돼지가 되어간다. ㅠㅠ 아... 젖소 돼지인가요? ㅠㅠ
출처 | http://foodiechicago.tistory.com |